좋은 노동법을 만들려면[청계광장/이정식]

법은 현실과 기존법체계와 맞아야

노봉법 모호성으로 노사 분쟁 폭증

노사간 균형,세대간 형평 고려해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주체들이 한 사회 안에서 지속가능하게 더불어 살아가려면, 법과 제도의 정밀한 설계가 필수적이다. 법이 현실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담아내지 못하고 겉돌게 되면,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새로운 분쟁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낳게 된다. 좋은 노동법은 결코 선의나 당위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반드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현실 적합성'과 기존 법체계와 어우러지는 '제도 정합성'을 갖추어야 한다. 책상 위 논리나 이념적 지향이 아닌, 현장 중심의 실사구시가 입법의 확고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균형,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기회 균등, 그리고 목적과 수단 간의 비례성이 엄격하게 담보되어야 한다.

과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16.4%)이 초래했던 현장의 혼선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시행된 노동조합법 제2조·제3조 개정(노란봉투법) 역시 동일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원·하청 구조 속에서 실제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를 바로잡고 대화와 협상을 제도화하여 이중구조를 완화하자는 입법 취지 자체는 이해된다. 그러나 교섭 상대방의 명확한 범위, 노동쟁의 대상의 한계, 창구 단일화 절차 등 현장에서 준수해야 할 구체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입법 단계에서 법률규범의 명확성이 결여되면 그 후과(後果)는 고스란히 현장의 몫이 된다. 모호한 법조문은 노사 간 자율적 해결 능력을 마비시키고, 결국 부당노동행위 고소·고발이나 구제신청 등 노동위원회 사건의 폭증으로 직결된다. 실제 노동위원회 복수노조 접수건수는 2026년 7월말 현재 850건으로 전년 동기의 148건 대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노사관계의 불확실성을 증대시켜 갈등을 장기화할 뿐만 아니라, 분쟁 해결에 소요되는 시간과 경제적 비용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고 국가 행정·사법 인력에도 막대한 부담을 전가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근본적인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입법의 원칙이 있다. 행정부의 '가이드라인'이나 '시행지침'에 모호한 법안의 책임을 미루는 편의주의적 입법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법률 자체를 최대한 명확하게 규정하고, 위임이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한정하는 것이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행정지침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하며, 오히려 또 다른 행정소송과 혼란만 부추길 따름이다.

앞으로 우리가 맞닥뜨릴 초고령사회의 정년 문제 또한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정년 문제는 단순히 '몇 살까지 일하게 할 것인가'라는 단편적 접근으로 풀 수 없다. 정년 연장이 세대간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임금체계 개편과 직무 재설계가 하나의 패키지로 정교하게 맞물려야 한다. 연공급 임금체계를 유지한 채 정년만 법적으로 연장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여 청년층의 채용 여력이 심각하게 위축된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전환, 고령자의 숙련도를 활용하는 재고용 체계 확립, 생산성 향상을 위한 직무 교육 및 배치전환 프로그램 지원 등이 동시에 설계되어야 한다. 근로자 대표제 정비와 취업규칙 변경 절차의 개선 등도 정합성 확보 쟁점이다.

좋은 노동법에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현실에 맞고, 다른 제도와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노사 간 권리와 책임 및 힘의 균형도 갖춰야 하며, 세대 간 부담과 혜택의 형평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누구나 법의 내용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해야 한다. 노동법은 선의(善意)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이라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거나, 다른 법과 충돌하거나, 어느 한쪽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지우면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노동개혁의 출발점은 더 많은 법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좋은 법, 제대로 작동하는 법을 만드는 데 있다. 법이 갈등을 만드는 규칙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규칙이 되도록, 입법의 과정부터 현실과 균형, 그리고 예측 가능성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가 좋은 해결책일 수 있다.

이정식 전 고용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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