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둥, 두웅~, 두우우웅~.’
은은하고 묵직한 종소리의 여운이 고도 경주의 가을밤을 수놓았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종소리는 맥놀이를 하며 길게 이어졌다.
15일 오후 7시부터 1시간여 동안 경북 경주시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국보) 종각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신종 타음 조사 공개 행사 ‘모두를 위한 울림’이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시각장애인 전통음악 연주단체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관현악곡 ‘생소병주―수룡음’과 합창곡 ‘모두의 노래 아리랑’을 들려주는 공연으로 시작됐다. 뒤이어 국가무형유산 주철장 이수자 원천수씨와 박물관 직원 이재권씨가 종 치는 당목을 잡고 종 몸체 중심 부분(당좌)을 들이쳐 ‘원음의 소리’를 내는 과정을 12차례 되풀이하는 타종 의식이 펼쳐졌다.
‘에밀레종’이란 별칭으로 유명한 이 종은 지난해 9월24일 22년 만에 시민들 앞에서 몸을 울려 소리를 낸 바 있다. 약 1년 뒤인 이날 다시 종을 울리면서 타종 행사가 사실상 정례화했음을 알렸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장,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 주보돈 경북대 명예교수, 강봉원 전 국가문화유산위원장, 주낙영 경주시장 등 내빈과 행사장을 메운 시민들은 시종 엄숙한 분위기 속에 종이 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행사의 핵심 목적은 신종의 음향·진동 특성을 확인하는 타음조사에 있다. 지난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추진하는 5개년 정기 타음 조사 계획의 두번째 해 조사에 해당한다. 박물관 쪽은 신종이 완성된 771년을 상징해 지난해처럼 사전 신청을 받아 선정한 771명의 시민들과 함께했다. 올해는 ‘모두를 위한 울림’으로 행사 제목을 정하고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다문화가정 청소년 등을 따로 초청했고, 청각장애인에겐 종소리를 느끼도록 히어링루프란 보조 기구와 수어통역도 제공했다. 현장에 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 유튜브 생중계도 했다.

신종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재위 742~765)이 부친 성덕왕(재위 702~737)을 추모하며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아들 혜공왕(재위 765~780)이 대를 이어 완성했다. 높이 3.66m, 무게 18.9톤으로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고대 범종이다. 몸체엔 구름 타고 날아오르는 비천상과 당대 문신 김필오가 쓴 1천여자 명문이 새겨졌다. ‘무릇 지극한 도는 형상의 바깥까지 포함하기에 봐도 근원을 볼 수 없고, 큰 소리는 천지 사이에 진동하므로 들어도 울림을 들을 수 없다’는 글귀로 시작하는 종의 명문은 당대 신라인의 사상과 신앙을 압축한 뛰어난 금석문으로 첫손 꼽힌다. 종 자체도 소리와 크기, 예술성 등에서 한반도 고대 불교공예를 대표하는 최고 명작으로 유명하다.
박물관은 1992년 유물 안전을 위해 연말 정기 타종을 중단하고, 1996년, 2001∼2003년, 2020∼2022년 종 표면과 내부 안정성을 파악하기 위한 타음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해부터 5개년 계획으로 다시 시작한 정기 타음 조사는 현재까지 양호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고유 주파수는 과거 측정 수치와 비교해 차이값이 ±0.1% 이내의 미소한 수준이며, 맥놀이도 과거 주기와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 표면도 초고해상도 촬영 결과 특별한 손상이 드러나지 않아 1996년 이후 30년간 구조 안정성이 유지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박물관 쪽은 타음 행사를 열면서 온습도가 조절되고 실내·실외 전시가 모두 가능한 ‘신종관’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올해 조사에서도 별다른 이상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신종관 건립과 정기 타종 행사 지속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윤상덕 관장은 “신종 타음 조사는 종의 상태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앞으로의 보존 관리와 활용 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며 “올해도 조사 현장을 국민에 공개하고 울림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는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2029년까지 진동 주파수 측정을 위한 타음 조사 외에 여러 조사를 진행한다. 타종 전후의 외형 변화, 표면 부식도를 파악하기 위한 고해상도 촬영, 종각 공간 음향 분석, 온습도 변화와 해충·조류 배설물 피해도 계측 등이다. 조사 결과는 학술 행사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