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지로 | 클리프(Climate in Fact) 대표
우리 동네 지하철역 앞에는 한 대기업 본사가 있다. 사명은 귀에 익지만 정작 뭐하는 회사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 그런데도 큰 회사인 걸 보면 ‘아마 일반 소비자는 만날 일 없는 기계나 산업용 장비를 만드는가 보다’ 싶은 정도의 느낌이 드는, 그런 회사다.
매일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그 회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그 회사 이름이 툭 튀어나오면서부터다. 요즘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주식 이야기를 한창 나누고 있는데, 1년 전만 해도 50만원이었던 그 회사 주가가 지금 400만원까지 뛰었다는 얘기였다.
‘아니 그럼, 100만원으로 700만원을 벌 수 있었다는 거잖아.’
만시지탄의 쓰라린 심정으로 챗지피티(GPT)에 뭐하는 회사냐고 물어봤다. 산업의 기초 재료와 인프라를 만드는 회사라는 설명과 함께 따라 나온 핵심 사업 영역 중에 전력·에너지라는 글자가 쿡, 하고 심장을 찔렀다. 송배전 인프라와 초고압 직류송전, 에너지저장장치 등을 만든단다. 에너지전환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노래를 불렀던 바로 그 품목 말이다. 목 뒤로 쓴 침이 넘어갔다.
우리는 전기 없이 몇시간도 견디기 어렵지만, 전력 산업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전기로 가동되는 수많은 기기로 전기를 ‘느낄 뿐’, 전기 그 자체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전력 상품을 비교하거나 선택하지도 않는다(가능한 나라도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그저 세금 내듯 다달이 전기요금을 내면 그뿐이다. 그렇다 보니 전력 산업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아니라 원전 수출, 중국산 태양광 같은 단편적 이슈로 소비되곤 한다. 하지만 전력 산업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 발전에서 송전과 배전, 전력 거래와 전력 서비스 산업이 긴 밸류 체인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에너지전환과 인공지능(AI) 시대에 우리 전력 산업의 수출 규모는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란 생각처럼 간단치 않다.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와 한국에너지공단이 관련 데이터를 집계하고는 있지만 아우르는 전력산업 범위가 너무 좁거나 무역통계 시스템상 전력과 무관한 것까지 섞여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서다. 아쉬운 대로 오랫동안 전기산업 수출입 통계를 작성해 온 한국전기산업진흥회의 자료를 받았다. ‘전기산업’ 진흥회이기 때문에 풍력발전기 하부 구조물이나 산업 분류상 ‘전기기기’에 포함되지 않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등이 빠져 있지만, 전력 생산부터 송배전까지 그나마 가장 폭넓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태양광 모듈, 변압기 등 13대 품목에서 지난해 자그마치 167억달러(약 26조원)를 수출했다. 전기차, 디스플레이, 바이오헬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다.
전력 기자재로 범위를 좁혀도 126억달러에 이른다. 5년 전보다 77% 늘어 4년째 매해 신기록을 쓰는 중이다. 변압기 수출은 344% 증가했고, ‘별것 아닌 것 같은’ 전선 수출액도 46억달러(약 7조원)가 넘는다.
재생에너지가 늘면서 분산된 발전 자원을 연결하고, 전력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시장이 열렸고, 한국 기업은 조용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하지만 전력 산업은 좀체 산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지난해 초 출범한 ‘케이(K)-그리드 수출 얼라이언스’는 흐지부지됐고, 전력 산업 통계는 여러 기관에 조각조각 흩어져 있어 퍼즐 맞추듯 이어 붙여야 한다.
전력도 하나의 산업이라는 인식이 없으면 에너지전환과 전력망 투자는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만드는 성장동력이 아니라 전기요금만 올리는 ‘비용’으로 비치기 쉽다. ‘원전 수출 대박’과 ‘중국산 태양광 공세’만 얘기하면 정작 더 큰 시장을 놓칠 수 있다. 전력 산업을 체계화하는 작업이 시급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