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종전 합의 9일만에 두차례 충돌 왜?…모호한 양해각서 분쟁 불러

27일(현지시각) 쿠웨이트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 ‘리카’(왼쪽)와 ‘야르무크’(오른쪽)가 항해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9일만에 호르무즈해협에서 잇달아 충돌하면서 종전 후속협상이 위태로워졌다. 해협 관리권과 관련한 모호한 양해각서 내용이 양국 간 분쟁을 불러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국 발표와 외신 보도 등을 종합하면, 미국과 이란은 최근 두 차례 충돌했다. 이란이 지난 25일(현지시각) 오만 쪽 항로를 따라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가던 싱가포르 선적 화물선 ‘에버러블리’를 무인기로 공격했다. 이에 미 중부사령부는 다음날 이란의 미사일·무인기 저장 시설과 해안 레이더 기지를 타격했고, 이란은 보복으로 미 해군 제5함대가 주둔한 바레인의 미군 기지를 무인기로 공격했다. 미군은 이 공격이 실제 미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곧 이어진 두 번째 유조선 피격 이후 양국은 더 강하게 충돌했다. 27일 이란은 200만배럴의 원유를 실은 파나마 국적 유조선 ‘키쿠’를 무인기로 공격했다. 이에 미국은 공격 대상을 늘려 호르무즈해협 인근의 이란 감시 시설과 통신 시스템, 방공 기지, 무인기 저장소, 기뢰 관련 시설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란 혁명수비대도 다음날 새벽 쿠웨이트 알리 알살렘 기지의 미군 시설 8개와 바레인 미 해군 제5함대를 무인기와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양해각서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통제 권한은 이란에 있다”며 미국이 계속 합의를 위반할 경우 “모든 외교 절차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양국은 위협 강도를 높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 트루스소셜에 “이란이 또다시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언젠가는 우리가 더는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시점이 올지도 모른다”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란의 이슬람 공화국은 더는 존재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권 붕괴를 경고한 이 발언은 지난 4월 휴전 직전 이란을 향한 ‘문명 파괴’ 발언 이후 가장 강도가 세다. 이란 혁명수비대 해군 사령부는 “중동 지역의 미군 기지들은 앞으로 며칠 동안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응수했다.

이란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을 공격한 것은 자신들이 지정한 항로와 절차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첫 번째 선박을 공격하기 수시간 전 이란 혁명수비대는 “어떤 선박이든 우리의 허가 없이, 또는 지정된 항로를 벗어나 해협을 통과하려 시도할 경우 그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해당 선박에 있다”고 경고했다. 에브라힘 아지지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위원장은 선박 피격 이후 연 기자회견에서 “호르무즈해협은 혁명수비대 해군의 관리 아래 있으며 지침과 규정된 경로를 위반하는 그 어떠한 행위도 단호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충돌은 호르무즈해협에서 선박 통행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던 상황에 찬물을 끼얹었다. 영국 해상무역운영국(MTAO)은 이날 호르무즈해협의 위협 수준을 5단계 중 3단계인 ‘상당함’으로 상향했다. 앞서 양국의 협상 대표들이 첫번째 후속 협상으로 양국 사이에 소통 채널을 개설했다고 밝혔으나,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양국이 모호한 종전 양해각서로 인해 생긴 ‘회색 지대’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하기 위해 충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양해각서로 이란의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묵인하는 듯한 모호한 조항이 명문화되면서 충돌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지정학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그레고리 브루 선임분석가는 “(이란은) 최소한의 군사 행동으로 선박들을 오만 항로에서 이란 통제 항로로 오게 할 수 있다”며 “미국도 충돌을 확대하려 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이란으로선 공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김지훈 기자,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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