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지진 사망자 1430명…골든타임 지났지만 여전히 7만명 실종

지진으로 폐허가 된 베네수엘라 북부 라과이라의 건물 잔해에서 27일 구조대원들이 숨을 고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베네수엘라의 7.2, 7.5 규모 두 차례 강진에 따른 사망자가 1430명으로 늘었다. 잔해에 갇힌 사람을 살릴 골든타임인 72시간이 지난 가운데, 여전히 약 7만명이 실종 상태다.

아에프페(AFP) 통신·시엔엔(CNN) 방송 등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각) 호르헤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지난 24일 발생한 강진으로 1430명이 숨지고, 3238명이 다쳤으며 3142가구가 집을 잃었다고 밝혔다. 전날 집계된 사망자(920명)보다 510명 늘어난 숫자다. 그는 전날에는 “이번 지진으로 최소 383채의 건물, 13개의 병원, 25개의 쇼핑센터, 1002개의 구조물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네수엘라에서는 지난 24일 오후 6시께 규모 7.2, 7.5 지진이 39초 간격으로 북서부 모론 일대를 강타했다.

실종자가 많아 인명 피해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에 따르면 27일 오전 기준 6만8900명이 실종 신고됐다. 미 지질조사국(USGS)은 1만∼10만명의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을 경고한 상태다.

베네수엘 구조대와 미국·영국·프랑스·튀르키예·브라질·멕시코 등 21개 수색·구조팀이 나섰지만 작업이 더디다. 베네수엘라 정부에 따르면 26일 기준 소방·경찰·민방위 등이 구한 사람은 243명에 그쳤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구조의 ‘결정적 시간’인 72시간이 27일 오후 6시 경과했지만 아직 수만명이 실종 상태다. 수도 카라카스에서 활동 중인 멕시코 구조팀의 다비드 에마누엘 비야 테헤다는 시엔엔에 “상황이 어렵다”며 “지진이 연달아 왔고, 진원도 그리 깊지 않아 많은 건물이 붕괴됐다”고 전했다.

열악한 장비도 발목을 잡는다. 고층 건물이 무너진 잔해를 치우려면 유압식 굴착기, 크레인, 생존자 탐지 장비 등이 필요하지만, 상당수 지역에선 주민들이 콘크리트 덩어리에 밧줄을 묶어 맨손으로 잡아당기고 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현지 매체 기자 로만 카마초는 26일 엑스(X)에 게시한 영상에서 “(잔해 아래) 땅속에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가족이 있어도 잔해를 치울 기계도, (다룰) 팀도 없다”고 했다.

27일 베네수엘라 라과이다주의 카라바예다에서 구조대원들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를 비집고 들어가 생존자를 찾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수십년의 철권 통치와 정국 혼란으로 부실해진 베네수엘라의 행정 능력이 이번 재난으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인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집권하며 ‘위대한 주택 미션’으로 500만채 넘는 아파트를 지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인권 변호사 마리안 다실바 파라는 27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독립된 기관의 2024년 추산으로는 (실제 건설 실적은) 13만4771채뿐이었다”며 “이중 상당수는 적절한 도시계획 없이 지어져 균열 가고 물이 새거나, 불안정한 지질 단층 위에 세워졌다”고 비판했다. 이어 “베네수엘라는 현대적 주택 대신 196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단지로 가득하다. 기술자들은 이 건물들이 향후 예상되는 대지진을 견딜 수 없다고 경고해왔다”고 덧붙였다.

차베스 뒤를 이어 2013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재임 때도 서방의 경제 제재와 경제난으로 800만명의 시민이 나라를 떠났다. 국제위기그룹의 필 건슨 선임연구원은 르몽드에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대응 능력이 크게 악화됐다. 공공보건, 교육, 기본 서비스만큼이나 민방위, 소방 분야의 모든 것이 최저 수준”이라고 짚었다.

현 지도자인 델시 로드리게스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한 여론 역시 험악해지고 있다. 그는 마두로 정권에서 부통령을 맡다가 1월 미국의 마두로 납치·축출 이후 임시 대통령에 올랐다. 로드리게스 대행은 26일 카라카스 구조 현장을 방문했다가 “정부는 국민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한다”, “우리 비극을 무대로 벌이는 정치 캠페인을 멈추라”는 시민들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여기에 유력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가 미국에서 귀국할 채비를 하고 있어, 지진이 정국까지 뒤흔들 조짐이 보인다. 그는 지난해 10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정치 혼란을 피해 국외에 머물러왔다. 그러나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지진 발생 뒤 마차도가 “가능한 한 빨리 귀국할 계획”이라고 그의 측근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건슨 선임연구원은 “지진 전부터 이 나라에는 좌절과 조급함의 분위기가 만연했다. (정부 등을 향한) 분노의 끓는점이 언제 올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고 전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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