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파워 대신 완성도로 승부…안방극장 뒤흔든 '언더독'

'신입사원 강회장', '참교육', '멋진 신세계' 등 예상 넘는 흥행

신선한 소재·탄탄한 대본 중심 시청 늘어…"신예·조연 연기력 중요 변수"

JTBC '신입사원 강회장' 장면 일부
[JTB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안방극장에 '언더독'(이길 확률이 낮은 약자)들의 반란이 계속되고 있다.

화려한 스타 출연진과 수백억원대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보다, 높은 완성도와 신예의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다크호스'의 약진이 계속되면서 콘텐츠 업계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JTBC 토일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은 지난 21일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시청률 11%로 두 자릿수를 돌파하며 올 상반기 최고의 반전 흥행작이란 반응이 나왔다.

이 작품은 방영 전까지만 해도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방송이 시작되자 평가가 뒤집혔다. 70대 대기업 회장이 20대 청년의 몸에 빙의해 다시 신입사원으로 입사한다는 독특한 설정과 인생 2회차 주인공의 통쾌한 히어로 서사, 몰입감 높은 전개가 입소문을 탔다. 여기에 1인 2역의 열연을 펼친 주연 배우 이준영을 비롯해 진구·전혜진의 실감 나는 악역 연기 등이 힘을 더했다.

넷플릭스 '참교육' 장면 일부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 세계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도 이변은 이어졌다. 무너진 공교육 현실을 조명한 김무열·이성민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은 공개 전만 해도 원작 웹툰의 인종차별·성차별 논란과 체벌을 옹호한다는 지적으로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무너진 교권을 바로잡기 위해 창설한 가상의 기관 교권보호국을 기반으로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와 주연 배우들의 시원한 액션, 세련된 연출로 정면 돌파에 성공했다. 이 작품은 3주 연속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1위를 차지하며 국내외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에서도 신선한 기획을 내세운 작품이 대작들 사이에서 알찬 결실을 봤다.

이달 20일 최고 시청률 11.8%(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종영한 SBS '멋진 신세계'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 문법을 완전히 비튼 '악역들의 로코'라는 신선한 설정과 조선시대 복식 등 역사 고증, 개성있는 캐릭터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주연 배우 허남준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마스크와 캐릭터 소화력으로 '올해의 재발견'이란 평가를 받으며 단숨에 대세 배우로 발돋움했다.

SBS '멋진 신세계' 속 허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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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ENA '허수아비' 역시 대형 방송사와 OTT의 쟁쟁한 기대작들 틈바구니에서 치밀하게 짜인 플롯과 높은 완성도로 웰메이드 장르물이란 호평을 받았다.

박해수·이희준 등 연기파 배우들과 다양한 조연의 열연에 힘입어 조용한 돌풍을 일으킨 이 작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ENA 역대 시청률 2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취사병 전설이 되다'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 박지훈과 더불어 다양한 조연 배우들의 B급 코미디 연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형성하며 작품 화제성을 끌어 올렸다.

반전 흥행의 밑바탕에는 탄탄한 대본과 섬세한 연출 등 작품의 높은 완성도와 기존 스타 배우들의 아성을 위협하는 신예와 조연의 눈부신 호연이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선순환'이라고 분석한다. 기존 스타 배우들이 보장하던 '스타 파워'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면서, 스타 대신 신예를 발굴하고 스토리에 더 힘을 쏟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ENA '허수아비' 장면 일부
[EN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최근에는 드라마 시청을 결정하는 요인 중 배우의 스타성보다는 서사적 구조와 캐릭터 구성의 중요성이 훨씬 높아졌다"며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는 스타 파워가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배우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스토리 지식재산권(IP) 중심'의 작품들이 많이 제작·유통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이 바뀐 점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대중이 'n차 시청'을 통해 작품 한 장면 한 장면을 쪼개 보고, 2차 창작을 통해 SNS에서 재소비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대본의 개연성과 섬세한 고증, 연기력을 세밀하게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대중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이름값이나 막대한 자본보다는 신선한 소재와 탄탄한 대본, 섬세한 연출 등 콘텐츠 본연의 '질적 완성도'가 흥행을 가르는 핵심 지표가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교수는 "콘텐츠 경쟁이 점점 심해지면서 대중의 드라마 소비 목적도 단순히 배우의 얼굴을 보는 것을 넘어 작품의 질적 완성도 중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며 "시청자 평가 기준이 높아지면서 배우의 연기력 등 요소가 중요한 변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gahye_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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