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 23일 열린 온라인 기자설명회에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될 경우 공공기관 개방형 시장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연금이 기금형 퇴직연금을 운용하면 민간 금융사보다 3분의1 정도로 수수료를 낮추는 동시에 3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면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금융사와 개별 계약을 맺는 현행 계약형과 달리 기업별로 흩어진 퇴직연금을 하나로 묶어 전문 조직이 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방식이다. 김 이사장은 기금형 퇴직연금 시장 진출 시 민간 금융사와의 마찰을 최소화할 방안으로 전체 기업의 0.2%에 불과한 국내 공공기관(342개) 퇴직연금 운용을 맡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공공기관 퇴직연금만 운용하겠다는 계획에도 민간 금융사의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면 계약형 퇴직연금 시장의 일부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은행·증권·보험사 등 기존 사업자 입장에선 시장이 쪼개질 수밖에 없어서다. 공공기관 퇴직연금도 민간 금융사가 현재 활발하게 영업하는 시장이다.
이에 대해 A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에서는 공공기관 퇴직연금의 파이가 작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저희는 지금도 공공기관에 대한 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퇴직연금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데 국민연금이 시장 참여자가 되면 기존 사업자 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공공기관 퇴직연금으로 시작해도 나중에는 일반 기업 시장까지 잠식하게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B 시중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공공기관 개방형만 참여한다고 해도 정부 정책에 따라 공공기관 퇴직연금의 대부분이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며 "국민연금이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인 점을 감안하면 추후에는 대기업도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이동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 시장에 엄청난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작 국민연금이 민간 금융사보다 뚜렷한 운용 경쟁력을 보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이 1500조원에 육박하는 기금을 굴리고 있지만 자산 운용의 약 60%는 외부 위탁 방식으로 이뤄져서다. 국민연금이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을 맡더라도 결국 민간 자산운용사에 다시 자금을 맡길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C 증권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기금의 대부분을 위탁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금형 퇴직연금에 대한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이 반드시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민간 금융사의 생각"이라고 했다.
D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건비·전산비 등 고정비와 시스템 개발 비용을 고려했을 때 적립금이 최소 3조원, 안정적 운영까지 생각하면 10조원 이하에서는 사업의 손익분기점을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기금형 퇴직연금 수탁법인이 손익분기점 이상의 적립금 규모를 달성하기 전 5~7년 동안은 출자한 자본금으로 적자를 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우려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공적연금 운용에 영향이 없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실제로 그럴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아직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을 두고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긴밀하게 협의하는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도 "국민연금은 민간 금융시장에 영향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기금형 퇴직연금을 진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며 "현재 뚜렷하게 결정된 사안은 없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