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의 재탄생] 흉물서 농촌의 힘이 된 빈집…폐교 막고 마을 웃게 했다

익산 웅포면 빈집들 현대식 개조 '농촌 유학' 가정에 싼값 제공

10가구 31명 새 둥지…폐교 극복 웅포초, 전교생 70% 외지인

농촌유학 학부모 "학교 가까워 안전·깨끗한 주거지·생태교육 만족"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익산 웅포 진소마을 농촌 유학 거주시설
[촬영 김진방]

(익산=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몇 년 전만 해도 애들이 없어서 학교를 폐교하느니 마느니 했는데 이제는 농촌 유학 온 아이들과 가족들로 동네에 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게 됐습니다."

3년째 익산시 웅포면에서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진소마을 김회중(64) 이장은 지난 27일 다시 활기를 띠는 마을에 대한 소회를 이같이 전했다.

진소마을, 곰개마을, 판포마을 등 웅포초등학교 인근 마을들은 불과 4∼5년 전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 소멸을 겪는 초고령화 지역이었다.

어르신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하거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마을 곳곳에는 시나브로 빈집들이 흉물스럽게 늘어났다.

쇠퇴일로를 걷던 지역을 살려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흉물 같던' 빈집이었다.

시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를 극복하기 위해 웅포초를 농촌 유학 거점학교로 지정하고, 교육발전특구 사업을 통해 방치된 빈집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깨끗하고 편리한 주거지를 제공한다면 폐교 위기에 놓인 학교도 살리고, 지역 소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복안에서다.

익산 웅포면 농촌 유학생 거주시설
[촬영 김진방]

130㎡(약 40평)인 농촌 유학 거주시설은 보증금 없이 월세(40만원)를 내야 하지만, 농촌 유학생에게 지급되는 지원금(1인당 50만원)이면 사실상 무상이나 다름없다.

리모델링으로 산뜻해지고 가구와 생활용품까지 갖춰지자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빈집들은 도시에서 온 가족들의 훌륭한 보금자리로 재탄생했다.

시행 초기에는 한두 집이던 유학생 가정은 어느새 입소문을 타면서 10가구 31명으로 불어났다.

이에 고령화로 생기를 잃어 가던 시골 마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칠 새 없는 활기찬 공간으로 거듭났다.

지역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던 웅포초 폐교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새롭게 이주해 온 학생들이 늘면서 전교생 10명 중 7명이 농촌 유학생으로 채워져 폐교를 모면했다.

인터뷰하는 농촌 유학생 학부모 홍영미씨
[촬영 김진방]

지난해 농촌 유학을 온 학생의 어머니인 홍영미(44)씨는 "농촌 유학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학교가 가까워 (아이가) 안전하고, 깨끗한 주거지 제공이었다"면서 "아이가 학업도 즐겁게 하며 농촌 생활을 너무 좋아해 유학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을 분들도 혹시 불편한 점이 없는지 늘 살펴 주시고, 학교에서도 아이의 학습 활동에 많은 관심을 주고 있다"면서 "마을 문화센터 등을 활용한 방과 후 활동에도 아이와 함께 참여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익산형 농촌유학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 주민과 이주민이 자연스럽게 융화하는 데 있다.

단순히 농촌 체험을 위해 유학을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에 스며드는 생활 중심형 체류가 핵심이다.

웅포 벚꽃 축제 참여한 농촌 유학생들
[홍영미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마을 주민들은 유학생들에게 농작물 재배와 수확 같은 체험활동을 제공하고,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자연 친화적 교육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웅포초 학생들은 농작물의 생장 과정을 관찰해 기록하며 먹거리와 생태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시는 지속적인 농촌유학생 유입을 위한 가족형 농촌체험캠프도 운영하고 있다.

근대 유산 투어나 목공 체험, 가을 앨범 제작 등 체험을 제공해 자연스럽게 낯선 지역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김 이장은 "농촌 유학을 온 학생과 가족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마을 차원에서 전기세나 수도세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며 "주민들도 아이들이 늘어나니 동네에 활기가 돌고, 학교 폐교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돼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인터뷰하는 김회중 진소마을 이장
[촬영 김진방]

전북도와 도교육청도 농촌 유학을 온 가정에 체재비를 지급하면서 장기 체류를 유도하고, 최종적으로 정착으로까지 이어지도록 지원하고 있다.

도와 시는 가족 체류형 농촌 유학 가정에 학생 1인당 월 20만원씩 최대 3년간 지원금을 지급한다. 도교육청 역시 가구당 학생 1인 30만원, 2인 40만원, 3인 50만원씩을 최대 9년간(초1∼중3) 매달 지원한다.

지자체의 빈집 리모델링 등 정주 여건 개선과 마을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어우러지면서 익산형 농촌 유학 프로그램은 지역 소멸을 해결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방치된 농촌 빈집이 도시 가족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로 재탄생하면서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고, 시골 마을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순한 단기 체험을 넘어 이주 가정들이 익산의 따뜻한 공동체에 완벽히 정착할 수 있도록 맞춤형 주거 지원과 차별화된 교육 인프라 구축에 행정적 역량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chin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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