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방한 외국인 1천만…명동이 '지구촌'으로
200m 노점상 거리서 다양한 외국어 뒤섞여
매운 음식도 땀 뻘뻘 흘리며 맛봐…"기대 이상"
"무슬림·비건도 안심하게…원재료 표시도 필요"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지난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노점상. 2026.6.28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오후 4시께 요란한 바퀴 소리와 함께 노점상 수레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수레의 철제 브레이크 패드를 힘껏 밟아 내리는 "철컥, 탁!" 소리가 메들리처럼 이어졌다.
순식간에 200m 길이 '노점상 행렬'이 펼쳐졌다.
상인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산더미 같은 식재료를 쌓아 올린 뒤, 다국어 메뉴판을 행인들 동선에 맞춰 휙 돌려세우며 영업을 개시했다.
기다렸다는 듯 외국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동서양 구분은 무의미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가 뒤섞이며 200m 거리는 이내 작은 '지구촌'이 됐다. 해가 저물고 오후 7시께가 되자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수요일인 지난 24일 오후 중구 명동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초로 1천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전통의 '관광 1번지' 명동 노점상 거리의 모습도 한층 다이내믹해졌다.
여기가 바로 국경 없는 '길거리 미식 특구'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지난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노점상. 2026.6.28
◇ 불닭 소스 닭꼬치·새빨간 떡볶이 거침없이 베어 물어
불닭 소스를 듬뿍 바른 닭꼬치부터 새빨간 떡볶이, 탕후루, 치즈 가리비구이, 과일 주스까지 최근 한국의 트렌드를 반영한 메뉴들이 호객에 나섰다.
커다란 철판 위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진득한 고추장 양념, 지글지글 익어가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두툼한 모차렐라 치즈의 향연이 오감을 자극했다.
매운맛에 연신 "쓰읍, 하"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손에서 떡볶이가 담긴 컵을 놓지 못하거나, 끝없이 늘어나는 핫도그 속 치즈를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하며 입안 가득 베어 물었다. 외국인들이.
이날 최고의 씬스틸러는 '치즈 닭꼬치' 매대.
상인이 가스 토치를 집어 들고 고기 위로 시뻘건 불기둥을 쏘아 올리자 "와우!" 탄성이 터져 나왔다.
너도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홀린 듯 스마트폰 카메라로 '불쇼'를 담기 바빴다.
카메라들을 향해 여유롭게 브이(V) 자를 그린 상인이 닭꼬치를 건네며 "비 케어풀, 베리 핫!"(Be careful, very hot)이라고 능청스럽게 영어를 '발사'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지난 24일 명동 길거리 음식을 먹는 브라질 크리스티아니 씨. 2026.6.28
이강수 명동 복지회 총무는 "코로나19 전과 달리 최근에는 K-콘텐츠의 영향으로 미국, 유럽, 남미까지 관광객의 국적 폭이 넓어졌다"며 "K-팝 공연이 있는 주말이면 팬들이 미리 입국해 명동 투어를 즐긴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이구동성 방탄소년단(BTS)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를 언급했다.
명동에서 15년째 분식 노점을 운영 중인 박정수(37) 사장은 "예전에는 중국인이 많았다면 지금은 동남아 관광객이나 BTS 팬들이 단체로 굿즈를 맞춰 입고 많이 방문한다"고 말했다.
떡볶이 노점상 직원은 "예전에는 유럽 사람들이 떡볶이가 뭔지도 몰랐고 손님도 거의 동양인뿐이었는데 작년부터는 BTS 영향 때문인지 유럽 사람들도 거리낌 없이 떡볶이를 찾고 즐겨 먹는다"고 밝혔다.
핫도그 노점을 운영하는 김모 씨도 "'케데헌'에서 핫도그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고 하던데 확실히 작년부터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며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지난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노점상. 2026.6.28
외국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뉴욕에서 온 아자데 씨는 "진짜 한국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고 아름다운 동네인 것 같다"며 "문어꼬치와 미니 김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브라질인 크리스티아니 씨는 "이번 여행의 목표를 '다양한 길거리 음식 맛보기'로 정했다"며 "전복구이, 작은 게 요리, 구운 새우, 새우 꼬치, 구운 치즈, 군고구마, 한국식 옥수수, 붕어빵, 모찌, 탕후루, 석류 주스를 먹었다"고 자랑했다.
그는 "특히 K드라마에서만 보던 전복을 실제로 먹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며 "제주도의 해녀가 떠올라 한국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브라질 옥수수와 완전히 다른 식감의 한국식 옥수수도 신선한 충격이었다"며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서 '덜 맵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고 했다.
폴란드인 파트리치아 씨는 커다란 마시멜로 겉면을 가스 토치로 굽는 상인의 손길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폴란드에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문화가 없는데 이곳에선 상인들의 현란한 솜씨를 직접 볼 수 있어 정말 좋다"며 웃었다.
또 프랑스인 엠마 씨는 "BTS 멤버들이 먹었던 '소떡소떡'을 먹다가 다른 아미(BTS 팬덤명)를 만나 인사도 했다"며 웃었고, 튀니지에서 온 사하르 씨는 "말로만 들었던 어묵과 닭꼬치, 십원빵을 먹어보니 마치 축제에 온 것처럼 신난다"고 감탄했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지난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노점상에 붙어있는 가격표. 2026.6.28
◇ 외국어 메뉴·공식 가격표·쓰레기 제로…"깨끗해"
명동 노점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가지요금 근절'과 '소통'이다.
노점상 매대 전면에는 대부분 메뉴 이름과 가격이 영어 등으로 명확하게 표기돼 있었다.
아자데 씨는 "메뉴판에 가격이 확실하게 표시되어 있어서 얼마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어 편리했다"며 "미국에서는 접하기 힘든 진짜 한국 길거리 음식을 가족들에게 안심하고 소개해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아니 씨 역시 "표지판에 가격이 명확히 표시돼 있어 환율을 계산하기 편했고 궁금한 점은 스마트폰 번역 앱을 켜서 보여주면 상인들이 친절하게 다 알려줬다"며 미소 지었다.
명동 복지회 이 총무는 "코로나19 이후 다른 전통시장 등에서 바가지 문제가 불거졌을 때 명동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며 "처음에는 상인들이 각자 가격표를 붙이다 보니 통일성이 없었는데, 중구청에서 품목별로 디자인을 통일한 공식 가격표를 제작해 배포하면서 가격 소통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지난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노점상. 2026.6.28
바닥에 쓰레기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노점상에서 관광객 쓰레기를 전부 받아주는 덕분이다.
이 총무는 "노점상마다 50~60리터 규격 봉투를 비치해 놓고, 다른 카페나 외부에서 나온 쓰레기라도 누구 것인지 따지지 않고 다 받아주자는 취지로 안내문도 붙여놨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 전에는 곳곳에 쓰레기통이 있었지만 각종 생활 쓰레기까지 너무 많이 버려져 위생상 좋지 않았다"며 "중구청과 협의해 우리가 직접 쓰레기를 수거하기로 한 결과 거리가 훨씬 깨끗해졌다"고 자부했다.
브라질인 카밀라 씨는 "탕후루를 다 먹었는데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렸을 때 근처 노점 상인이 손짓을 하며 '여기에 주면 버려주겠다'고 쓰레기를 받아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덕분에 쾌적하게 여행을 이어갈 수 있어서 정말 감동적이었고, 한국에 다시 오면 꼭 명동을 재방문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티아니 씨도 "명동처럼 엄청나게 붐비는 세계적인 관광 중심지에서 거리에 쓰레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며 "음식을 구매한 노점마다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줘서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장소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상인들과 시민들의 높은 책임감이 매우 인상 깊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명동을 추천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깨끗함"이라고 했다.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지난 24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노점상 매대에 붙어있는 '쓰레기 버려드리겠습니다' 안내문. 2026.6.28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명동 노점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인의 일상을 체험하는 매력적인 관광상품"이라며 "K-드라마와 영화 속 장면을 직접 경험하려는 수요가 커지면서 노점상의 인기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가격표와 음식 사진 공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원재료 표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무슬림과 비건,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관광객들이 안심하고 길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minj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