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수도는 서울'이라던 북한, '민족' 내던진 속셈은

'수도 변심' 반세기 만에 '영토 축소'…대북전략 다시 짜야

북한 헌법절 기념 의식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만수대의사당에서 북한 헌법절기념 국기게양 및 선서의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2025.12.28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한반도는 해방 이후 좌우로 갈려 대립하다가 1948년 남한과 북한이 따로따로 정부를 수립하고 각자 헌법을 제정했다. 이때 북한은 헌법에 수도를 서울로 명시했다. 당시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했던 평양 대신 서울로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북한 제헌헌법 제9장(국장, 국기 및 수부) 제103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부는 서울시다"고 명시했다. 수도를 의미하는 '수부'를 평양이 아닌 서울로 규정한 것은 상징적 의미만 띠었던 것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에 서울을 점령해 정부를 이전한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실제로 북한 정부는 평양에서 운영됐지만 평양을 공식 수도로 보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서울이 미국과 남한에 점령당한 상태'이고 '언젠가 해방되면 수도 기능을 회복할 것'이라는 논리로 평양을 사실상 임시 행정 중심지로 여겼다.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연합뉴스DB]

이런 사고방식은 2차대전 이후 분단된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서독은 초기에 분단 상황을 임시 상태로 간주하며 정부는 본에 뒀지만, 수도를 동독 안에 있는 베를린으로 규정했다. 동독도 서독을 '미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낮춰보면서 합법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회주의 정부 수립 직후 북한 지도부는 무력 통일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 아래 남한을 단기에 점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1950년 남한을 침략한 6·25전쟁을 일으켜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

이에 반해 남한의 제헌헌법에는 수도에 관한 규정은 따로 두지 않았고, 관습 헌법에 따라 서울을 수도로 인정해 왔다. 조선 태조의 한양(지금의 서울) 천도 이후 줄곧 수도였던 서울은 북한 헌법상 북한의 수도이기도 했지만 현실이 되지는 않았다.

북한은 1953년 정전 이후 분단이 장기화하자 서울이 수도라는 규정이 현실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을 새로 제정하면서 수도를 서울 대신 평양으로 바꿨다. 서울 탈환을 전제로 한 '임시 체제'에서 평양 중심의 '독자 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김정은, 남부국경요새화공사 완결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22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추진 중인 남부국경요새화공사를 질적으로 완결하고 해군 함대들에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2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6.6.23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

북한은 헌법의 수도 규정을 바꿔 평양 체제로 전환한 지 반세기가 지난 올해 3월 헌법 개정을 통해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두 국가 노선을 공식화한 것이다.

북한은 개헌을 통해 헌법 제2조에 '북쪽으로 중국과 러시아,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이라고 규정했다. 그러고는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MDL)을 '남부 국경'으로 만들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헌법에 영토 조항을 따로 두지는 않았지만, '조국의 통일'을 국가의 최고 과업으로 삼거나 남한 주민을 '남조선 인민'이라고 표현하는 등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여겨왔다. 남한은 언젠가 되찾아야 할 '미해방 지역'으로 남겨뒀다.

그런데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말 선언한 '두 국가론'을 반영하면서 북한 영토를 한반도 '전체'에서 '북반부'로 축소했다. 북한이 영토 범위를 실질적인 '북한 땅'으로 자진해서 줄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런 결정에는 반드시 속셈이 있기 마련이다. 북한의 영토 조항 신설은 '수도 서울'을 포기한 것처럼 통일 조국 건설이라는 이상보다 3대 세습 체제 공고화와 정상 국가 이미지 제고라는 현실적 목표를 추구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동안 강조하던 '민족'을 내던지고 남북관계를 더 이상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내부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 관계라고 규정했다. 북한이 선제적인 '마이 웨이' 선언으로 공을 넘긴 상황이라서 이제는 대북전략 얼개를 다시 짜야 할 판이다.

'민족 통일'을 전제로 한 접근과 '두 국가' 현실을 인정하는 접근 가운데 무엇이 한반도 평화에 유리한지 공개적이고 냉정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h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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