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앞에 유리 철문? 계단 오르며 저항할 테다 [.txt]

아파트 엘리베이터 ‘외부인 금지’ 유감

‘안전’ 내세우지만 ‘불신’이 빚은 시스템

감시·통제가 만든 편리한 디스토피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고지대 주택가에 설치된 경사형 엘리베이터. ‘2023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공모전에서 대상(국무총리상)으로 선정됐다. (이 사진은 칼럼의 특정 내용과 상관없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김도훈의 삐딱

문이 달렸다. 아파트 옥외 엘리베이터에 유리 철문이 달렸다. 이 아파트는 고지대에 지어졌다. 서울 마포대로에서 아파트로 오려면 상당히 긴 계단을 이용하거나 옥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누구나 탈 수 있었다. 아파트는 열린 공간이다. 모든 구멍을 막고 요새처럼 살 수는 없다. 옆 아파트 아이들이 조금 더 넓은 여기 놀이터를 쓰고 싶을 수도 있다. 가벼운 물건을 전달하는 사람들도 쉽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로 들어올 수 있다. 처음 외부 공간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것도 그런 전략, 아니 마음이었을 것이다. 닫혀 있지만 열려 있는 주거 공간을 만드는 자의 마음 말이다.

갑자기 투표를 한다고 했다. 옥외 엘리베이터 앞에 유리와 철로 된 담과 자동문을 설치한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들만 비밀번호나 키 카드로 출입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했다. 외부 사람들도 쓰다 보니 종종 고장이 나곤 했다. 사람 많이 쓰는 엘리베이터는 종종 고장이 난다. 엘리베이터 안에 쓰레기를 버리는 외부인도 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편의점이 있다. 학원을 마치고 나와 거기서 라면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꽤 있긴 하다. 얌전한 애들이다. 서울 마포가 무슨 파리 방리외도 아니고, 공공기물을 부러 파손하거나 그라피티를 그리는 아이들은 없다. 투표 공고문은 이상하게 그 학생들이 죄인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 주민 투표에서 반대를 던졌다.

반대가 당연히 적으리라고는 예상했다. 결국 공사가 강행됐다. 겨우 몇주 만에 문이 달렸다. 문 따위를 달 거라고 예측하지 않은 건축물이라, 보기에도 참 뜬금없었다. 게다가 불편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 엘리베이터는 마포대로에서 스윽 타고 아파트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일종의 공공 엘리베이터다. 가장 많은 주민들이 쓰는 입구다. 비밀번호 누르는 방식도 복잡했다. 속도가 심지어 나보다 느린 어르신이 먼저 비밀번호를 누르고 계실 때는 겁이 났다. 어르신들은 버튼으로 눌러야 하는 모든 것 앞에서 두뇌가 작동을 잠깐 멈춘다. 내 두뇌도 똑같기 때문에 잘 안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게 되기까지는 적어도 다섯 번의 시도를 거쳐야 할 것이다. 항상 그렇다.

나는 화가 났다. 아무 의미도 없는 엘리베이터 앞 자동문을 만드느라 괜한 관리비만 썼다고 투덜거렸다. 몇주가 지났다. 이젠 누구도 더는 투덜거리지 않는 것 같다. 필요 없는 것이라도 막상 생기면 그냥 ‘뉴 노멀’이 된다. 나는 어차피 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니 투표에서 진 것이다. 다른 주민들은 안전을 원했을 것이다. 문이 생기기 전에도 충분히 안전했다. 어떤 사람들은 더 높은 수준의 안전을 원했다. 이러다가 외부에서 아파트로 올라오는 거대한 계단마저 공항처럼 무슨 엑스레이 시스템이라도 만들까 걱정이다. 아니, 만들 수만 있다면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주민들의 투표 성향을 이제는 잘 안다.

독일인 모녀 관광객이 한국의 밤 거리를 처음 걸어보며 치안에 감탄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릴스를 보다가 또 ‘국뽕 쇼츠’에 말려들었다. 사실 나는 국뽕 쇼츠를 좀 즐기는 편이다. 이런 쇼츠는 대개는 서구나 남미 등에서 놀러 온 외국인들이 서울의 첨단 시스템과 안전 시스템에 감탄하는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 한 독일인이 “한국은 안전에 있어서는 이미 유럽을 넘어선 상호 신뢰 사회!”라고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쇼츠를 보다가 댓글 창을 열었다. 다른 외국인이 이렇게 썼다. “한국이 신뢰 사회라서가 아니야. 불신 사회라서지. 역사 때문에 서로를 오랫동안 불신한 탓에 서로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든 거야.”

나는 무릎을 쳤다. 그거였다. 나는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토록 호들갑스럽게 ‘안전국가’로 통하게 된 것은 규율을 잘 지키는 시민들의 준법정신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한국 소셜미디어를 자동 번역으로 본 외국인들이 말하듯이, 한국인은 겉으로는 믿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서로를 불신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우리를 안다.

다만 그게 뭔 상관인가 싶다. 안전한 사회는 안전한 사회다.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 압도적 안전은 장점이지 단점이 될 순 없다. 한국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일랜드 남자가 올린 쇼츠를 봤다. 그는 밤 11시에 조깅을 하면서 말했다. “이 시간에 뛸 수 있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어요. 너무 희한한 느낌이에요. 유럽이나 미국 사는 분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거예요.”

지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숲길에서 시민들이 휴일 산책을 즐기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나는 요즘 밤에 걷는다. 경의선 숲길 공원을 끝에서 끝까지 걷는다. 밤 11시가 넘어도 사람이 많다. 열려 있는 가게도 많다. 24시간 작동하는 카메라도 많다. 나는 귀에 이어폰을 낀 채 큰 소리로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불신 사회가 만든 안전 사회를 마음껏 밤바람과 함께 누린다. 다만 여기에도 한계는 있어야 할 것이다. 전 국민 얼굴을 스캐닝해 인공지능으로 모든 행적을 추적하고, 지하철을 탈 때마다 짐 검사를 받아야 하는 지경까지 가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조지 오웰은 ‘1984’를 썼다. 테크놀로지에 감화된 요즘 국가들은 오웰 소설을 무슨 미래학 교과서처럼 참고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놈의 아파트 옥외 엘리베이터 앞 자동문도 얼굴 스캔 기능으로 열리게 할 것이다. 더 빠르고 편리해질 것이다. 몸도 자동으로 수색해 무기나 불법적인 뭔가를 지닌 사람의 입장을 차단하는 기능도 달릴 것이다. 더 안전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뭔가 거슬리던 것도 빠르고 편해지면 그냥 받아들인다. 그게 안전을 담보한다면 더 편히 받아들인다.

나는 그냥 계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당뇨 때문에 걷는 것이라 어차피 엘리베이터 따위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경의선 숲길을 끝에서 끝까지 두시간 걷고 나면 너무나도 엘리베이터가 타고 싶다만,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도 모르는데 혼자서 계단으로 저항 중이다. ‘아파트 단지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새로운 공고에도 저항해야 하니, 고양이 탈이라도 사서 쓰고 계단을 오르면 어떨까도 싶다. 땀은 잘 빠질 테니 당뇨에는 좋겠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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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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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일짱#OoMT
    2026.06.2809:07
    반대가 많은게 당연한듯.. 공유하는게 별거 아닌것 같은건 저기소유자나 입주민이 아니고 외부인들임.. 내재산 내공간이 침해당하는데 고작 그런걸로 난리냐는 생각은 무슨심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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