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에스트로’로 일컬어지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이 22일(현지시각)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엔비시(NBC)뉴스가 이날 전했다. 향년 100.
그린스펀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 연준 의장에 오른 뒤 2006년 은퇴할 때까지 18년 동안 자리를 유지했다. 미 연준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재직 기간이다. 임기 동안 거친 대통령이 조지 더블유(W) 부시까지 4명이었다.
그의 재임 기간 미국 경제는 이례적인 경제 호황을 달성하는 바람에 그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경제 대통령 또는 세계 경제의 지휘자라는 뜻에서 ‘마에스트로’라는 찬사를 받았다. 뉴욕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공직 입문 전 32년가량 경제 컨설팅 회사를 경영하며 시장의 생리를 체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취임 직후 발생한 1897년의 ‘블랙 먼데이’ 주가 폭락 사태를 시작으로,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2000년대 닷컴 버블 붕괴, 2001년 9·11 테러까지 숱한 글로벌 경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금융시장을 상대로 한 소통에서 그는 극도로 모호하고 난해한 표현을 사용해 정확한 의도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는 유행어를 낳을 정도였다.
화려한 업적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재임 후반기에 단행했던 지나친 초저금리 기조와 파생금융상품 규제 완화 중심의 통화 정책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하고 세계 금융시스템을 망가뜨렸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 또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시장 능력을 과신했던 규제 완화 신념에서 비롯된 오류라고 인정했다.
미 연준에서 선임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김진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공과 과가 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김 위원은 “금융위기를 잉태했다는 비판을 받고 본인도 솔직히 사과했고, 임기 마지막에는 더 일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그만 둔 것도 마에스트로다웠다”고 말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