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와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이 마무리된 지 석 달이 지난 가운데 국내 금융지주들이 즉시 소각과 환원 계획 이행을 선택하며 자본배분 방식을 전환하고 있다.
4대 금융지주의 올해 1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제도적 변화가 과거 건전성 관리에 밀려나던 주주환원을 이사회의 주요 의사결정 과제로 끌어올리는 촉매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 지배구조 관련 입법은 세 차례에 걸쳐 완성됐다. 지난해 7월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골자로 한 1차 개정에 이어 9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담은 2차 개정 그리고 올해 2월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사주 의무 소각 중심의 3차 개정까지 마무리됐다.
특히 3차 개정안은 자사주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을 원칙으로 규정하되 기존 직접 취득해 보유 중이던 자사주에 대해서는 시행 후 6개월의 준비 기간과 1년의 유예기간을 더해 총 1년 6개월의 소각 시한을 부여했다.
이러한 법적 변화는 금융지주 이사회의 자본배분 기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에는 당국의 건전성 가이드라인과 상생금융 압박이 우선시되면서 주주환원은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상법 개정 이후 주주 환원을 정당한 사유 없이 지연하거나 자사주를 장기 보유할 경우 이사회의 법적 책임 부담이 커지게 됐다. 이로 인해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 가치를 최우선 검토 과제로 삼게 됐다.
21일 자본시장업계에 따르면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 통과를 기점으로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정책 흐름이 반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기준 자사주 처분 137건, 소각 33건으로 처분 기조가 우세했으나 3차 개정안 통과 이후 반전된 결과가 나타났다. 통계 취합 결과 올해 3월 이후 자사주 소각 공시는 154건을 기록하며 처분 공시 111건을 추월했다.
금융지주사들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법이 보장한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활용해 관망세를 취하는 대신 각 사의 계획에 따른 소각 절차를 밟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KB금융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시점에 기존 보유 자사주 전량인 발행주식의 3.8% 수준(2조3000억 원 규모)에 대해 유예기간 없이 즉각적인 소각을 결정했다. 자사주를 장기 보유하며 자산 방어막으로 활용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법적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신한·하나·우리금융은 기수립된 자본 환원 로드맵을 상반기까지 이행한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지난 2월 초 기존 신탁 물량 1084만주를 소각한데 이어 오는 7월 종료되는 5000억원 규모의 2차 신탁 계약을 통해 추가 소각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했다. 하나금융은 연초 발표한 상반기 중 4000억원 소각 계획에 따라 1분기 2000억원을 결의한 후 2분기 중 잔여 물량을 처리할 예정이며 우리금융 역시 연간 2000억원 규모의 계획을 오는 6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국내 금융권이 상법이라는 법률적 강제력 마주했다면 일본은 거래소를 통한 시장 압박으로 지배구조 변화를 이끌어냈다. 현재 일본 3대 은행(MUFG·SMFG·미즈호)은 주가순자산비율(PBR) 1.5배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 2023년 도쿄증권거래소(TSE)가 도입한 개선 조치의 결과다.
당시 TSE는 PBR 1배 미만 기업들에게 자본 효율성 제고 계획 공시를 요구하며 이를 미이행할 경우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경고하는 등 사실상의 강제 규제를 단행했다. 이에 일본 은행권 이사회는 퇴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자율적인 자본 재배분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을 9%대 위로 끌어올렸다.
한국 역시 상법 개정을 통해 금융지주의 변화를 유도했으나 지배구조 개선 기조가 장기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국 모두 강력한 규제책을 동원했지만 일본이 저평가를 해소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투자자와 기업의 참여를 이끈 세제 인센티브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권의 밸류업 기조가 이어지기 위해서도 제도적 규제를 넘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세제 개편 등이 병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의 자본배분 변화는 향후 대외 환경과의 균형 관리라는 시험대를 마주하고 있다. 최근 고환율 지속과 기업대출 증가에 따른 위험가중자산(RWA) 확대로 4대 지주의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전년 말 대비 0.2~0.3%p 하락하는 등 건전성 방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오는 7월 상반기 실적 시즌은 금융지주들이 대외적 건전성 압박 속에서 상법 개정 취지에 맞춘 주주환원 기조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는지 가릴 실질적인 검증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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