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승화한 恨…예인의 길에 관객 몰입시킨 뮤지컬 '서편제'

광림아트센터서 6번째 시즌…북장단에 맞춰 창처럼 부르는 넘버

한지로 표현한 남도의 산자락…상두꾼 무용수들의 군무도 눈길

뮤지컬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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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내 눈이 대체 왜 이러오. 차라리 죽이시오. 그 망할 한(恨)이 뭐라고."

소리에 집중해 경지에 이르라고 딸의 눈을 멀게 해버린 아버지의 집착에 딸은 절규한다.

예인의 길은 무엇인가.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며 진정한 예술은 고통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니체는 예술이 추함과 고통까지 긍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8일 서울 광림아트센터에서 상연한 창작뮤지컬 '서편제'는 이렇듯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며 예인의 길을 걸어가는 소리꾼의 한 서린 여정을 그렸다. 2010년 초연했으며 이번에 6번째 시즌을 맞았다.

작품은 이청준의 동명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유봉과 송화 부녀는 득음을 목표로 유랑하며 살아간다. 송화의 의붓동생인 동호도 이들을 따라 떠돌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원망과 궁핍한 생활에 지쳐 이들 부녀에게서 달아난다. 두 남매가 각자의 '소리의 길'을 걸은 뒤 재회하는 것이 큰 줄거리다.

원작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뮤지컬은 예술 완성의 바탕이 되는 한의 정서를 강조한다.

1막에서 송화는 더 깊은 소리를 요구하는 아버지 유봉에게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고 소리친다. 그러다가 막 후반부에 유봉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하자 원한에 사무쳐 "차라리 죽이라"며 통곡한다.

송화 역의 배우 이봄소리는 이 대목의 넘버 '원망'에서 직전 부분과는 다른, 확연하게 깊은 소리와 부르짖음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사랑하는 동생을 떠나보내고 판소리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견디면서 전국을 떠돌던 송화가 눈까지 멀면서 쌓인 한이 배어나는 소리다.

남매가 마침내 재회해 함께 '심청가'를 부르는 장면은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렇게도 소리를 싫어하던 동호가 다시 북을 잡고, 송화가 응축된 감정을 눌러 담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역경을 딛고 예술의 경지에 가까이 간 예인의 경지를 오롯이 보여줬다.

뮤지컬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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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와 대조적인 길을 걷는 동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각색한 장면도 눈길을 끈다.

부녀를 떠난 뒤 서양 음악 그룹 '스프링 보이즈'에서 활동하게 된 동호는 작곡의 영감을 얻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댄다. 동호가 환각 상태에서 누이의 소리를 듣는 장면은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자청해 한과 고통을 예술로 승화하는 송화와 모습과 명확히 대비된다.

뮤지컬이라는 장르 특성상 판소리를 많이 활용하진 않았지만, 작품 곳곳에 국악 요소와 전통적 느낌을 살린 부분이 눈에 띄었다.

송화, 동호, 유봉 역의 배우들은 판소리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도 국악의 창(唱)을 부르는 느낌을 살려 구성지게 노래한다. 또한 다수의 넘버에서 북을 사용해 국악의 장단을 더했다.

연출 면에서는 무대에 별다른 장치를 설치하지는 않았지만, 한지를 사용해 남도의 산자락을 표현한 배경이나 디지털 그래픽으로 우리나라 춘하추동 풍경을 그린 전통화를 표출한 부분이 한국적 정서를 느끼게 했다.

유봉이 사망하는 장면에서는 상여와 상두꾼(상여를 메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흰 의상의 무용수들이 등장해 전통 무용이 느껴지는 군무로 관객을 압도한다.

뮤지컬 '서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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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살아진다". 작품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이 넘버는 한으로 가득한 삶을 견디는 것 그 자체가 소리의 완성임을 의미한다. 제작진은 '소리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견뎌낸 시간의 다른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서편제'는 오는 7월 19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이어진다.

fa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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