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을 지나 천백만 고지까지 가뿐히 넘었다. 지난 6일 누적 관객 수 천만명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33일째인 8일 낮 1100만명을 넘겼다. 역대 한국 개봉작 가운데 22번째 흥행 기록이다. 신학기 극장 비수기가 시작됐으며 개봉 5주차 주말을 맞은 7일에도 75만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는 등 흥행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왕과 사는 남자’에 대한 관심은 엔(n)차 관람을 넘어 도서, 관광 등 관련 분야로까지 확대되며 신드롬급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8일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4일 개봉 이후 한달 동안 ‘단종’을 열쇳말로 하는 도서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2565%나 껑충 뛰었다. 춘원 이광수가 쓴 소설 ‘단종애사’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0배, 조선왕조실록은 9배로 판매가 급증했고, 어린이 역사서의 매출도 늘었다. 가족 영화로 관객 연령층이 10대부터 60대까지 고르게 분포되면서 도서시장에도 어린이책부터 성인용까지 폭넓게 훈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곳으로 지난 설 연휴부터 방문객이 줄을 잇기 시작한 강원도 영월은 이 지역에 없다시피 했던 차량 정체로 최근 몸살을 앓을 정도다. 특히 배를 타고 들어가는 청령포는 관광객이 예년보다 5배 늘며 나루에서 대기 시간만 3시간에 이를 정도로 붐비자, 강원도는 청령포 나루를 대상으로 특별안전점검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세조에 의해 영월 청령포로 유배를 온 단종이 이곳에서 죽임을 당하기까지 보낸 짧은 여생을 그렸다.
영화의 인기가 이처럼 영화 밖으로까지 확대되는 이유로 김형호 영화시장분석가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 역사극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김 분석가는 “첫 천만 영화인 ‘실미도’(2003)와 11월 비수기의 판도를 바꾼 ‘서울의 봄’(2023) 등 천만 흥행을 기록하며 영화시장의 분기점을 만든 작품들은 주로 실화 바탕 역사극”이라며 “영화를 보고 단순히 극적 재미만 즐기는 게 아니라, 알고는 있지만 정확히는 몰랐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자각하면서 그 호기심이 연관 분야나 산업으로 뻗어나가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서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화제가 되는 영화인 만큼 새 학기 비수기를 뚫고 누적 관객 수 1300만명 이상 동원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과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천만 흥행을 축하할 정도로 오랜만에 극장에 활기를 가져온 이 작품이 얼어붙은 제작 환경을 녹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왕과 사는 남자’의 순제작비는 100억원 정도다. 200억원을 훌쩍 넘어가는 최근 대작 규모에 견주면 중예산급 영화에 속한다. ‘왕과 사는 남자’의 성공은 천만이라는 수치보다 씨가 말랐던 중예산 영화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에서도 이 영화의 성공이 언급되며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중예산 영화 제작지원금 200억원이 증액 편성된 건 다행이지만 더 확대되기 위해서 문화체육관광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한편의 대작보다 다양한 중예산 영화 제작이 더 절실하다는 영화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해 100억원 규모의 중예산 한국영화제작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는 지원금 규모를 두배로 늘렸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