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위의 집’을 내세워 세계 일주 항해에 나섰던 미국 크루즈선이 연료비 급등 등에 따른 자금난을 이유로 캄보디아에서 운항을 중단했다. 선상에 장기간 거주하려던 승객 200여명은 갑작스럽게 배에서 내려야 했다.
28일(현지시각) 에이피(AP)·아에프페(AFP) 통신 등 보도를 보면, 미국 플로리다주에 소재한 크루즈선 운영사 ‘빌라 비 레지던스’는 전날 성명을 내어 크루즈선 ‘빌라 비 오디세이’의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캄보디아 남서부 태국만 연안의 프레아 시아누크주 당국에 따르면, 오디세이는 지난 23일 주도이자 항구도시인 시아누크빌에 도착했다. 이후 승객들은 7시간 안에 짐을 싸 배에서 내리라는 통보를 받았다. 당시 배에는 승객 203명과 승무원 156명이 타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승객 가운데 일부는 항공편으로 출국했고, 나머지는 시아누크빌에 머물고 있다.
오디세이는 2024년 10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7개 대륙을 도는 3년 6개월짜리 세계 일주 항해를 시작했다. 운영사는 “오디세이를 당신의 영구적인 집으로 삼으라”고 홍보하며, 선실의 장기 거주권을 판매하거나 임대했다. 영구 거주권은 약 13만∼44만달러(1억7400만∼5억9000만원)였고, 선실 유형과 인원에 따라 월 2000∼1만달러(약 268만∼1340만원)의 비용이 별도로 들었다. 승객 203명은 대부분 미국인으로 은퇴자와 원격근무자가 많았다. 일부는 선상 거주 비용을 마련하려고 부동산 재산을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운영사는 더 이상 운영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어 승객들에게 하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 운항이 제한되면서 연료비가 급등했다는 것이다. 객실당 월평균 연료비는 1800달러(약 240만원)였으나,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는 6000∼8000달러(약 804만∼1072만원) 수준으로 뛰었다. 회사는 항해 속도를 늦추고 항구 체류 시간을 늘려 연료 사용량을 줄이려 했으나 급증한 비용을 상쇄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60일 동안 구조 조정과 자본 확충을 추진하는 동시에 거주 승객과 승무원, 직원 지원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배에서 내린 승객들은 회사로부터 충분한 지원 없이 스스로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은 최근 회사가 연료비 등을 이유로 추가 부담금을 거듭 요구했고, 항로 변경과 인터넷 접속 불량, 식사 품질 저하 등이 이어지면서 이미 배를 떠나고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승객 캐럴 라슨은 아페프페 통신에 “책임의 대부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만, 재정 운영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래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가치있었고, 주거형 크루즈라는 실험의 일부가 될 수 있어 정말 행운이었다”고 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