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르비아 총선에서 지도자가 없는 탈중앙 정치세력인 ‘학생명단’이 승리하면서 향후 통치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쏠린다.
학생 주도 정치 세력인 학생명단은 25일(현지시각) 치러진 총선에서 52.7% 득표율로, 의회 250석 중 과반인 139석을 차지해 단독 집권을 앞두고 있다. 학생명단은 의회가 소집되면 90일 이내에 총리와 각료 등을 지정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세르비아의 새로운 집권 세력인 학생명단 앞에는 친러·친중 정책을 펴온 보수 성향의 알렉산다르 부치치 전 대통령의 12년 통치를 마감하고, 반부패·균형 외교를 기조로 한 안정적 국정 운영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이들은 국내 공약으로 △특별검찰·경찰 창설 △불법축재 몰수 및 인적 쇄신 △공공부문 비당파화 △국가계약 및 수주 투명화 △언론자유 복원 등 개혁 정책을 내세웠다. 대외정책으로는 △군사적 중립 △러시아와 관계 유지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가입 결정 △코소보 독립 반대 등 기존 노선을 유지하자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문제는 학생명단이 지도자가 없는 탈중앙형 운동 세력에서 국정을 책임질 집권세력으로 진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학생명단은 2024년 11월 세르비아 북부 도시 노비사드 기차역의 지붕 붕괴로 16명이 사망한 참사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의 산물이다. 학생들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 총회라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후보를 검증했고, 지난 9월9일 선거명부를 확정해 학생명단을 출범시켰다. 기존 정치인들이 모두 배제됐고, 의사와 교수, 법조인, 예술가, 청년 창업가, 농민 등 시민사회에서 신망받는 비정치인 전문가 250명이 후보가 됐다. 이름은 학생명단이지만 정작 학생은 한 명도 후보 명단에 올리지 않았다.
기존 정치권과 관련 없는 새로운 세력이라는 점이 강점이지만, 관료 행정이나 입법 활동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은 약점이 될 수 있다. 아직 누구를 총리로 내세워 내각을 이끌지도 정하지 못했다. 학생명단은 전날 총선 승리 직후 누가 대표로서 승리 연설을 할지도 정하지 못했다. 베오그라드대의 카타리나 포포비치 교수는 로이터에 “학생명단은 세르비아 문화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어냈으나,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기존 체제를 해체할 수 있을 만큼 이들을 오랫동안 결속시켜 줄 거대한 목표가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는 외교력도 관건이다. 학생명단은 서방의 대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고 러시아와 기존 관계를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에는 친서방 세력이 적지 않다. 러시아의 국영기업 가스프롬은 세르비아 최대 가스 공급 업체로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가스를 제공해오는 등 러시아가 세르비아에 가진 지렛대도 무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는 학생명단의 집권을 인정하면서도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와의 협력은 세르비아에 이익이 된다”며 “새로운 정치 세력이 이 점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