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창화 | 괴산 숲속작은책방 대표
제주도 일년서가에 거문도 주민들이 단체 방문을 오기로 했다. 선진지 견학의 일환으로 평대리 마을 투어를 예약했는데 그 출발점이 책방이기 때문이다. 마을 투어를 진행하는 부석희 삼촌은 일년서가가 있는 구좌읍 평대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주민. 대학 다닐 때만 잠시 섬을 벗어나 있었을 뿐, 곧장 섬으로 돌아와 마을을 돌보고 있다. 마을 구석구석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그의 말은 투박하고 거칠지만, 머리와 가슴엔 어릴 적부터 보고 듣고 새겨온 섬의 이야기가 붙박여 있다.
책방 창문 밖으로 바라보이는 빨간 등대와 포구에는 스페인 상선이 침몰하며 쏟아놓았던 보물섬의 전설이 어려있고 둥글게 쌓아놓은 돌담 기도터에는 부디 우리 자식들 이 섬 밖으로 나가 성공해 돌아오지 말라고 애끓이던 늙은 부모의 한이 서렸다. 삼촌을 따라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이곳을 잠시 지나는 ‘행인 1’에 불과한 나의 제주살이도 역사가 된다. 외지인인 내가 평대리를 마음의 고향으로 품게 되는 순간이다.
마을 투어 프로그램은 잊히고 소멸해 가는 지역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기도 하다. 생활 인구가 줄고 있고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60대 이상인 초고령 사회 거문도 주민들은 섬을 찾는 이들에게 어떻게 마을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해답을 찾아보기 위해 제주 섬을 방문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방문은 한 차례 연기되었다. 강풍으로 배가 뜨지 않아 며칠 동안 섬을 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놀랍게도 이런 일은 섬에서 일상이라 할 만큼 매우 흔하다. 육지 사람들 입장에서는 섬이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일기가 안 좋으면 배가 운항을 못 할 수밖에,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거문도나 울릉도 같은 제법 규모가 있는 섬도 배가 뜨지 않는 날이 일년에 백일이 넘을 정도로 다반사라는 걸 알고 나면 일상이 제대로 유지될까 하는 의아함이 남는다. 이렇게 배가 뜨지 않는 건 단순히 날씨 탓만은 아니다. 손님이 적으면 선사가 배를 띄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객 선사들의 60% 이상이 영세업체여서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신간 시집을 들고 일년서가에 강연을 온 섬 활동가 강제윤 작가는 그동안 기존 민간 위탁 방식의 국가 보조항로를 공공기관이 운영하도록 하는 ‘여객선 공영제’를 주장해왔다. 섬 주민의 해상교통 기본권을 보장하고 의료, 교육, 생필품 이동을 지원하는 필수 공공 교통수단으로서 안전성을 높여달라는 얘기다. 또 수익성 낮은 항로에서 민간 선사가 운항을 기피하거나 의도적으로 결항하는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해상 교통의 공공성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4천여개 섬 가운데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대략 480여곳. 2026년 한국섬진흥원 통계에 따르면 주민들의 수는 80만명이 넘는다. 이들 섬 가운데 93개만이 육지와 연결돼 육상 교통으로 접근할 수 있어 해상 교통의 해결은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섬의 목소리는 육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도시에서는 폭우와 사고 등으로 하루만 대중교통이 마비되어도 비판의 목소리가 전국을 뒤덮는데 일상을 살아야 하는 섬사람들의 이동은 일년에 백일씩 막혀있어도 무관심의 벽에 갇혀있을 뿐이다.
풍랑이 지나간 날, 배 타고 육지로 넘어와 다시 비행기로 제주 섬까지 먼 길 떠나온 거문도 주민들은 감귤 주스 한잔씩을 손에 들고 책방 서가를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이런 섬에서 책이 팔리는가?”
애틋한 표정으로 묻던 아주머니 한분이 손주에게 선물한다면서 섬에서 구할 수 없는 그림책 한권을 골랐다. 아주 오랜만에 현금을 받아든 시골 책방지기와 섬에 사는 이의 마음이 짠하게 부딪쳤다. 앞으론 조금 더 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리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