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위험 직무순직 연평균 3.5명…암·자살 등은 2.5배 많아
발암물질·교대근무 등으로 소방관 업무는 1급 발암요인
정신건강 위험에 폭언·폭행까지…질병 공상 승인율은 50% 안돼

2025년 12월 제주의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벌이는 모습[제주도 소방안전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그리운 아빠, 나중에 꼭 다시 만나요. 그땐 제가 아마 어른이 됐을 때일 거예요."(부천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의 7세 딸이 쓴 편지 중에서)
소방관 순직 사고를 계기로 소방관들이 직면하는 위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소방관의 순직에도 사회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난·재해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는 '위험직무 순직'보다 이외의 상황으로 숨지는 '일반 순직'이 몇 배나 많다는 점에서다.
이는 소방관의 죽음이 화마 속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소방관에게 재난·재해 현장보다 더 큰 위험을 주는 요인은 무엇일까.
소방관 순직 통계 분석과 함께 전·현직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연합뉴스) 경기 부천 화재로 순직한 고(故) 김진석 소방위의 어린 딸이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10월 18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인천 연수갑)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사진에는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김 소방위의 딸이 쓴 편지글이 담겼다.[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페이스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최근 10년간 '위험직무 순직' 35명…암·자살 등 '일반순직'은 2.5배
소방청이 운영하는 순직소방관추모관 홈페이지에 게시된 '2015~2024년 소방공무원 공사상자 등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위험직무 순직' 인원은 모두 35명으로, 연평균 3.5명 꼴이다.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3조는 위험직무 순직에 대해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돼 숨진 경우'로 규정한다.
소방공무원법 제14조는 '화재 진압, 구조구급 및 교육훈련 중 사망한 경우'를 기준으로 제시한다.
앞서 자료에서 10년간 소방공무원 위험직무 순직 인원을 유형별로 보면 화재 14명, 구조 6명, 생활안전 5명, 항공 5명, 교육훈련 2명 등이다. 대부분 시민의 목숨을 구하려다 숨진 경우다.
연도별로는 2019년이 9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해 10월 독도 인근 해상에서 손가락 절단 환자 이송을 위한 소방청 헬기가 바다에 추락하면서 당시 헬기에 탑승했던 구급대원 5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위험직무가 아닌 업무로 사망할 경우 '일반 순직'으로 분류된다.
같은 집계 기간 소방공무원의 일반 순직은 86명이다. 위험직무 순직보다 2.5 배가량 많다.
유형별로는 암이 28명으로 가장 많고, 자살 27명, 심뇌혈관질환 21명 등이다.
특히 자살의 경우 순직으로 인정받지 않은 인원을 포함하면 2015~2024년 총 134명, 연평균 13.4명으로 집계됐다.

[순직소방관추모관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부상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공상 승인자 수는 2015년 409명, 2016년 511명, 2017년 657명, 2018년 823명, 2019년 818명, 2020년 1천4명, 2021년 933명, 2022년 1천80명, 2023년 1천334명, 2024년 1천445명 등 총 9천14명이다.
구급 활동 중에 발생한 부상을 인정받은 경우가 1천975명으로 가장 많고, 화재 1천788명, 일상업무(교대·장비 점검, 출장, 행정업무, 당직 등 포함) 중 발생한 인원은 1천195명이다.
공상 승인자 수는 2022년부터 3년 연속 1천명을 웃돌고 있다.
소방공무원의 공상 승인율이 50%가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부상자는 이보다 2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순직소방관추모관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 소방공무원 업무 발암 요인 '최고 등급'…정신건강도 위험군
소방공무원의 일반 순직이 직무상 위험순직보다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유해 물질이나 참혹한 현장을 마주하는 직업적 특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정경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작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대한산업보건협회가 펴내는 'K-산업보건'(2025년 5월호)에 기고한 '보이지 않는 위험, 소방공무원의 직업병' 글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해 물질에 노출되고, 사고 현장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거나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많은' 직업적 특성을 언급했다.
또 교대 근무가 반복되면서 수면장애, 만성피로 등 건강에 부담을 주는 환경에 지속해서 노출되는 것도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22년 소방공무원의 발암성 등급을 최고 등급인 1군으로 상향 지정했다.
화재 진압과정에서 발생하는 연소 물질 등에 지속해서 노출된다는 점 등을 반영한 결정이다.
화재 현장에선 일산화탄소, 벤젠 등 유해가스는 물론 난연제, 미세먼지, 석면 등에도 노출될 수 있다. 이런 노출이 장기화하면 호흡기 질환이나 암 발생 위험이 커진다.
정부가 2023년 유해하거나 위험한 환경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공무원이 상당 기간 유해 요인에 노출돼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경우 이를 공무상 재해로 추정하는 제도인 '공상추정제'를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소방공무원의 경우 화재 진압 및 구조 업무를 5년 이상 하면 백혈병과 비호지킨림프종, 다발성골수종 발생 시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한다.

[대한산업보건협회 'K-산업보건' 2025년 5월호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야간 교대근무도 IARC가 지정한 2A군(발암 개연성이 높은 요인) 발암 요인에 해당한다.
화재·구조·구급 등은 24시간 상시 대응이 필요해 소방공무원은 시도 인력 상황 및 업무량에 따라 2·3·4조 교대제로 운영된다. 이러한 근무 여건은 생체 리듬을 교란하고 장기적으로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2022년 한국산업보건학회지에 수록된 '건강보험 청구 자료를 이용한 소방 및 경찰공무원의 암 종별 위험도 분석'(이우리·윤병윤·유기봉·윤진하) 연구에 따르면 2006~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청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 소방공무원의 대장암, 간 및 간내담관암, 방광암 발생률이 통계적으로 더 높게 나타났다.
울산에서 20여년간 근무한 한 소방관은 "아무리 얼굴에 밀착되는 마스크를 쓴다고 해도 나중에 마스크를 벗고 보면 얼굴이 시커멓다"면서 "이런 게 다 몸에 해롭다고 하지만 잔불을 정리할 때는 장비가 무거우니 벗고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공무원은 "유해 물질이 주변까지 퍼지기 때문에 운전이나 구급활동을 하는 다른 대원들도 흡입하게 된다"고 전했다.
근골격계 질환도 흔하게 발생한다. 20~30㎏ 무게의 장비를 착용한 채 화재를 진압하고, 구급 및 구조 활동 중 불편한 자세로 작업하거나 사람을 들어 올리면서 신체에 부담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사이렌 등 소음에도 노출되지만 긴급 출동 시 청력 보호구 착용이 쉽지 않다 보니 소음성 난청도 나타난다. 소음은 심혈관 질환이나 치매 같은 건강 문제와도 연관성이 있다.

8월 18일 전남광주 장성소방서 현장대원들이 지하층 화재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장성소방서는 짙은 연기 탓에 시야 확보가 어려운 지하층 화재와 동일한 현장을 구현해 잠금장치 개방과 연기차단커튼 설치, 화재진압 및 인명검색 등 단계별 전술을 연습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소방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참혹한 현장에 정신건강 문제도 만연…2024년 조사서 자살 위험 5.2%
심리적 고통도 크다.
사망자나 중상자를 마주하는 참혹한 현장이나 구조에 실패했다는 심리적 부담, 반복되는 긴장 상태 등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증이 만연하다.
2024년 소방청이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PTSD 위험군이 7.2%였으며 자살 위험이 5.2%를 기록했다.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공무원 2명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사망했다. 이들은 참사 당시 현장 구조 활동과 시신 이송 업무를 수행했으며 이들 중 한 명은 PTSD와 불면증으로 공무상 요양을 신청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한명도 참사 이후 대인기피와 우울, 불안 등의 증상을 겪으며 정신과 진료와 약물 치료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일선 소방관들은 이런 심리적 고통을 다들 한 번씩은 겪는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한 최영재 소방통합노조위원장은 "1990년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현장에서 초등학생을 구조해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나중에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동안 힘들었다"고 말했다.
동료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소방공무원에게 큰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
2019년 8월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정희국 소방관은 태풍 '차바'로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러 후배 소방관과 함께 출동했다가 불어난 물살에 후배를 잃었으며 이후 3년간 PTSD로 고통받았다.
소방청은 2021년 국립소방병원법 시행령 시행을 발표하면서 낸 보도자료에서 전체 소방공무원의 25.8%가 수면장애를, 28.3%가 알코올 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울산에서 근무하는 한 소방관은 "고 정희국 소방관의 주변인들도 그가 그 정도로 힘든지는 잘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PTSD는 옆에 있는 사람도 알아채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취재에 응한 소방공무원들은 현재는 과거와 달리 상담 등 치료 지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이뤄지지만 상담 횟수가 제한적이고, 상담사가 계속 바뀌는 등의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로 구급대원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민원인 폭언·폭행도 증가세…작년에만 구급대원 폭행 피해 197건
구급 및 구조 활동을 위해 출동한 소방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폭언이나 폭행도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키운다.
119구급대원이 폭언 및 폭행 피해를 본 사례는 지난해만 197건이었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249건, 269건을 기록했다.
최영재 위원장은 "구급대원의 판단에 따라 현장에서 조치하고 있는데도 왜 빨리 병원으로 가지 않느냐고 본인이나 보호자가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일이 종종 있다"면서 "만취자도 많다 보니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2026 소방청 통계연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각종 신체적·정신적 질환에도 소방공무원들이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소방공무원의 질병 공상 승인율은 매년 낮아지며 지난해는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고에 대한 공상 승인율 87.1%에 비하면 크게 저조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혁신처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소방공무원의 질병 공상 승인율은 지난해 46.0%, 2024년 45.3%였다.
복잡한 절차와 낮은 승인율 때문에 공상 신청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공상 승인을 위한 서류 준비부터 인과관계 입증까지 신청자 본인이 스스로 해야 하고 어렵게 신청한다고 해도 승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큰 병이 아니면 신청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20여년 경력의 한 소방관은 "공상추정제가 도입됐다고 하나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암도 많다. 한 동료는 공상추정제에 포함되지 않는 암으로 진단받았는데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외국 논문을 찾아 공부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10월 19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부천체육관에서 열린 고 김진석 소방위 영결식 뒤 운구 행렬이 이동을 위해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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