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6월6일, 제헌의원 강욱중의 가장 위험한 순간 [금자㉒]

1948년 5월10일 총선거로 구성된 헌정사상 최초의 의회인 제헌국회의 5월31일 개원 모습. 제헌의사당인 중앙청 회의실에서 첫 회의를 진행했다. 국회 제공

편집자 주 : 국가권력에 의해 ‘프락치’로 몰려 구원받지 못한 채 북으로 간 국회의원들. ‘금자’는 소녀 금자의 시선을 따라 70년이 훌쩍 넘은 그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한민국 친위쿠데타와 내란의 기원을 마주한다. 월화수목금 연재.

“이 수일 내에 여러 가지 불상사 끝에 온 백일하에 일어난 오늘 아침 사태에 대해서 우리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법치국가는 지금 가장 위험하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당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1949년 6월6일이었다.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세종로 중앙청 제헌의사당에서는 제3회 임시국회 13차 본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중앙청 국회의사당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로 쓰던 건물이다. 이날 회의 단상에 올라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를 꺼낸 이는 금자의 아버지 강욱중 의원이었다. “대한민국 법치국가는 지금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순간에 있다”고 했는데, 이날 정말로 위험하고 중요한 순간에 처한 사람은 강욱중 바로 자신이었다. 운명의 날이었다.

“6일 상오 8시경 중부서원 약 50여명은 돌연 시내 남대문로 2가에 있는 반민특위 본부를 수색하였다. 그런데 출근하는 직원들을 위시하여 특별재판관에 이르기까지 각기 신체를 엄밀히 조사하는 한편 특위 내의 특경대원 수명을 즉시 구인하였다. 그리고 (권승렬) 특별검찰부장은 권총을 압수당하였다는데 일설에 의하면 상부의 명령으로 무기를 회수함이었다는 말도 있다.”(동아일보, 1949년 6월7일)

동아일보 기사는 그 유명한 ‘반민특위 습격 사건’을 전하고 있다. 이날 오전 8시 서울 중부경찰서 소속 사복경찰 40여명이 남대문로 84번지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을 습격했다. ‘특경대’라 불리는 반민특위 특별경찰대원 30여명이 무장해제된 채 중부경찰서로 연행됐다. 현장에 있던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장이자 현직 검찰총장 권승렬은 권총을 압수당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처벌이라는 깃발 아래 1948년 10월 국회 내에 설립된 반민특위는 이날 동력을 잃고 사실상 와해 수순을 밟는다. 대한민국에 휘몰아칠 가공할 폭풍의 서막이었다.

특경대는 반민특위가 반민족행위자를 조사할 때 신변 보호와 구속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산하 독립기구였다. 총경 1명, 경감 5명, 경위 14명, 경사 20명 등 40명으로 구성됐다. 국회 내 법률 통과를 거쳐 조직됐으나, 대통령 이승만은 자신의 통제를 받지 않는 특경대를 위협으로 여겼다. 반민특위는 특경대 이외에도 각각 기소와 재판을 담당하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까지 두었다. 반민특위는 친일파 조사를 넘어 처벌까지 할 권한을 지닌 과거사위원회였다. 이승만은 그 점이 못마땅했다. “불법조직”이라며 특경대 해산을 요구했던 이유다. 이날의 반민특위 습격도 특경대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삼았다. 강욱중은 이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욱중 의원 : 일국의 검찰총장이 1명의 순경을 움직이지 못하고 헌법에 근거한 가장 성스러운 기관이 경찰대로부터 유린당할 때 우리 법치국가의 장래가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만한 사태에 임해서 우리가 대통령 각하와 무릎을 맞대고 일어나지 못한다 할 것 같으면 어떻겠습니까? 하므로 본 위원은 내일 대통령을 임석케 해서 우리가 난상토의해서 이 중대한 시국을 잘 수습하지 못한다 할 것 같으면 앞으로 어떠한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본 의원은 동의를 내려고 합니다. 내일 대통령 각하께 임석을 요청해서 이 문제 해결에 있어 선후책(善後策)을 강구하자는 것을 동의합니다.

이진수 의원 : 제청합니다.

김수선 의원 : 3청합니다.

(중략)

노일환 의원 : 현재 반민특위 내에서 상당한 인원이 불법으로 체포를 당해서 구금당해 있습니다. (중략) 반민사업은 경찰의 쿠데타로 인해서 일시 중지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할 것입니다. (중략) 이러한 긴급한 사태를 앞에 놔두고 24시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없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태는 오늘 시간을 연장시켜서 밤을 새우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을 국회에서 강구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안심하고 이 문전을 나갈 수 없으며, 민주 발전의 한 개의 개척의 길이 열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의장 김약수 : 이 동의를 표결에 부칩니다.(거수 표결) 재석 인원 145, 가에 110, 부에 한 표, 그 동의는 가결된 것을 선포합니다.

국회 누리집으로 들어가면 제헌국회부터 회차별로 모든 회의 속기록을 내려받아 볼 수 있다. 반민특위에 관해서는 1948년 8월 반민법안 제출 때부터 숱한 논의가 오갔는데, 가장 뜨겁고 격정적인 토론이 반민특위 습격 당일 회의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을 속기록을 보고서야 처음 알았다. 이날 중부경찰서 형사들에게 반민특위 습격을 지시한 장경근 내무부 차관과 이범석 국무총리가 출석했다. 강욱중 의원은 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 의원의 특경대 해산사건 보고를 받은 뒤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와 뜻을 같이하는 노일환 의원 등과는 호흡이 척척 맞았다. 강욱중 의원은 대통령 이승만을 국회로 부르라는 동의(動議, 안건 제안)를 했고, 여기에 다른 의원들이 제청과 3청을 하면서 절대다수 의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국무총리 이범석 : “반민특위를 정부에서 구속하거나 탄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각하의 담화 가운데 누차 언명하시기를 특경대의 계속 존재가 필요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지만 반민특위 조사위원회의 존재라는 것은 언제든지 정부에서 인정하는 바이며 또 협조할 뜻이 있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인이 감히 책임지고 말씀하는 것은 반민특위에 대해서 만일 불행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본의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며 정부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언명하고 싶습니다.

내무차관 장경근 : 아무리 내무장관과 특위 위원장과의 사이에 이력서를 교환하고 나중에 임명하겠다는 신사협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대통령령으로 발령이 나거나 또 내무장관의 발령이 나거나 그 권한자가 정식으로 발령 수속을 함으로써 그 신분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해 두는 바입니다.

또 정부가 그러한 사람을 전부 임명하겠다는 확약이 없었던 것은 정부로서 과거에 누차에 긍해서(이어져서) 그 해산을 종용한 데 비추어서 그것을 아실 것입니다. (중략) 그러니까 사실상 법적 근거는 없지만 사실상 존재한 것이 있으니까 사실상 존재한 것을 없앤다는 뜻입니다. 법적 근거로는 성립된 것을 해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실력을 행사함에 있어서 이번 이것을 행사하는 데에 당해서 부득이 권총 발사 등 제재하기 위해서 실력 행사하는 데에 부득이 거수를 시키고 포켓트를 만져보는 것은 이것은 부득이한 조치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실력 행사하는 데에 그런 것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요?”하고 흥분되어서 기립하는 이 많음, “내려와요. 무엇이요”하는 이 많음)

청산리대첩의 영웅이라는 광복군 장군 출신 국무총리 이범석은 “특경대는 문제가 있지만, 반민특위 존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로 의원들을 달래려 했다. 내무부 차관 장경근은 “특경대는 대통령이 정식 발령을 내지 않았으므로 해산은 정당한 조처였다”는 식의 논리를 댔다. 대통령 이승만은 “요새 몸이 불편해서 행동이 자유로웁지 못한 관계로 출석을 하기가 어려웁다”는 뜻을 전해왔다.

속기록을 보면서 어떤 확신이 들었다. 강욱중은 이날 확실히 이승만에게 찍혔다. 그는 범이승만 계열의 조선민족청년단 소속으로 5·10선거에서 당선했다. 조선민족청년단 단장을 지낸 사람이 바로 국회에 나온 국무총리 이범석이었다. 이제 그런 인연은 중요하지 않았다. 강욱중의 입은 더욱 거침없어졌다. 선을 넘은 듯한 아슬아슬한 발언이 그다음에 나왔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 권승렬은 당시 검찰총장이었지만, 국회 선출로 친일파 기소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다.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추적한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과 유해발굴을 통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드러낸 ‘본헌터’를 썼다. 그밖의 지은책으로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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