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나시나요? 지난번 ‘두런두런 AI’ 24화에선 AI가 만들어낸 ‘가상의 응답자’를 인터뷰하는 신세틱 서베이(Synthetic Survey·합성조사)를 소개했습니다. 지난여름 530여 명의 ‘진짜’ 사람에게 ‘실제로’ 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합성 페르소나 20개를 만들어서 ‘AI를 왜 공부하고 싶습니까?’ 같은 질문을 했던 거죠. 이주현 기자는 이 신세틱 서베이 기사를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페친 한분이 이런 댓글을 달았더군요. “살아야 하니까 에이아이를 배우려 한다는 답을 에이아이에게 들으니 기분 묘하구만 ^^”
며칠 전, 이주현 기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일생의 멘토로 여기는 한 여당 정치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속으로 “대통령님과 5~10분간 대화를 나눈다”고 하더군요. “지금 당에서 시끄럽게 싸우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여쭈니 대통령이 이렇게 답하셨다네요. “이재명 정부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도와라~! 실패하면 윤어게인이 정권 잡는다. 당 안에서 말고 밖에서 싸워라~!”
사람들이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지금 ○○○님이 살아계시다면 뭐라고 하실까?” “지금이야말로 ○○○님이 필요한 때인데…”
그렇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AI로 ‘합성’해보면 어떨까요? ‘데이터’가 엄청나잖아요. 대통령이 직접 쓰신 저작물들을 비롯해 관련 서적, 사진, 동영상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죠. 이주현 기자는 예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독재정권 시절 껌 은박지에 못으로 쓴 옥중편지를 본 적이 있는데요, 정세판단과 투쟁지침(‘추곡수매가 투쟁이 필요하다’)이 적혀 있는 걸 보고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상상해봤습니다. AI에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자료, 2009년 돌아가신 이후 벌어진 일들의 기록과 뉴스를 몽땅 학습시켜 ‘DJ-AI’를 만들면 어떨까….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에 앞장서 정보화사회 기반을 다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 3대 메가프로젝트에 대해 뭐라고 조언할까? 청년들의 보수화에 어떤 대책을 내놓을까? 외교 문제가 특히 궁금합니다. 트럼프의 막가파 일방주의에 대해 뭐라고 할까? 적대적 두 국가론을 주창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미중 패권 다툼에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등등.
이런 공상을 하던 참에, ‘러브 머신’(제임스 멀둔 지음, 송이루 옮김·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이란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AI가 만들어낸 캐릭터, 즉 합성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은이는 이 합성 인간을 ‘AI 동반자’라고 표현하지요. AI 동반자를 이용하는 사람들, 관련 산업 종사자들, 그리고 AI 동반자까지 두루 인터뷰해 이 현상의 원인과 배경, 전망과 대책 등을 짚습니다. 연인을 잃고 상실감에 젖은 청년이 ‘AI 친구’에 푹 빠져 히키코모리처럼 사는 것은 ‘가벼운 사례’에 속합니다. 어떤 이들은 AI와 결혼하고, 아이를 입양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아예 AI로 가족을 만들어 살기도 합니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자신의 취약한 모습을 타인에게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지지와 공감을 표하는 AI는 더없이 친밀하고 소중한 존재이겠죠. 이해가 갑니다. 어떤 이는 인간관계를 잘 맺기 위해 AI 동반자와 교감을 ‘연습’할 수 있다고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 어쩔 수 없습니다. 갈등이나 불편함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매끈한 관계. 거기에 너무 익숙해지면 어쩌죠?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미래가 온다면? “인간이 갈망하는 유대감을 상품화해 되파는 외로움 경제(loneliness economy)”라는 비판도 온당하고요. 책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고립감이 깊어질수록 캐릭터 AI 앱 이용자가 늘어나고, 참여도가 높아질수록 기업의 이익이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인간이 그리움이나 못다 한 말 때문에 만들어내는 ‘데스봇’ 사례도 흥미롭습니다. 책에 소개된 한 작가는 유년기에 엄마가 계속 자기를 남들과 비교하며 몰아붙였던 트라우마가 있었는데요, 제대로 화해하지 못한 채 어머니를 떠나보냈죠. 그는 ‘엄마 AI’를 이렇게 설정해요. “처음엔 매우 비판적이고 엄격한 양육 방식을 고수하지만 훗날 이를 뼈저리게 후회하는 인물”로요. 엄마 AI는 사람 딸과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변화해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주현 기자가 상상했던 ‘DJ AI’ 같은 사례도 나와요. 마인드뱅크닷AI라는 회사의 창업자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디지털 트윈을 만들었지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던 문제들이 현대인의 고민과 너무도 닮아 깜짝 놀랐어요. 200, 300년 전 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대단히 인간적이고 풍요로운 경험이에요.”
산 자와 죽은 자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의 오랜 염원이었습니다. 이제, AI 기술은 인간을 디지털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AI 환생 작업엔 수많은 문제가 따릅니다. 죽은 사람의 동의를 받지 않고 데스봇을 만들어도 되는지? 고인이 생전에 알리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 은밀한 개인정보(가령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같은 것)가 노출돼도 괜찮은지? 무엇보다도 슬픔에 빠진 사람의 취약한 마음을 AI가 파고들어 조종하는 것, 그리고 그 뒤엔 이들의 감정을 활용하여 돈을 버는 그리프 테크(grief tech)가 있다는 것. 이거 오싹한 일 아닌가요?
DJ-AI로 되돌아가보죠. 다시 생각해보니 혼란스러울 거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이 DJ의 적자라고 여기겠지만, 결국 특정인이 만든 DJ-AI는 그 사람의 사고 패턴에 물들 수밖에 없으니까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상인적 현실감각과 서생적 문제의식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하셨죠. ‘상인’에 가까운 이들은 DJ-AI에게서 실용주의적 조언을 받을 것이며, ‘서생’에 가까운 이들은 이상과 가치에 뿌리를 둔 말씀을 들을 것 같네요.
음, DJ만의 문제가 아니죠. ‘노무현 대통령 AI’를 만든다면 어떨까요?
악~ 안돼! 너무 시끄러워질 것 같아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을 놓고,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한(또는 저열한) 적자 논쟁, 해석 다툼의 판이 벌어질 것 같네요.
♣️H6s이주현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