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색소 4.0 숨가쁜 노인, 2주째 피 못구해…요양병원 '수혈병목'

정상치 3분의 1도 안 되는데 혈액 신청해도 "기다려라" 감감무소식

자체 보관시설 없는 중소·요양병원, 거점병원 경유·소량 수요에 후순위로 밀려

복지부 "전체 혈액 부족하진 않아…일선 공급 지연 원인 파악할 것"

요양병원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수도권의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A씨는 최근 회진을 돌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입원 중인 80대 고령 환자의 혈색소(헤모글로빈) 수치가 4.0g/dL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상 성인의 혈색소 수치는 13∼14g/dL 수준으로, 일반인은 이 수치가 4.0g/dL까지 내려가면 산소 공급이 안 돼 그 자리에서 실신하거나 생명이 위독해진다.

숨쉬기조차 버거워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병원은 즉시 혈액을 신청했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피 한 팩조차 구할 수 없었다. 심지어 혈액형에 따라서는 신청 후 2주가 지나도록 수혈하지 못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A씨는 보호자에게 "이곳에 있으면 언제 수혈받을지 기약이 없으니 큰 대학병원으로 옮기셔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갈 곳도 마땅치 않고 비용 부담이 큰 보호자는 전원을 포기했다.

자체 혈액 보관 시설이 없는 요양병원 등 중소 의료기관의 중증 환자들이 혈액 공급망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요양병원은 과거의 단순 돌봄 기능에서 벗어나 폐렴 등 합병증이나 만성 출혈, 골수 기능 저하 등으로 지속적인 수혈이 필요한 중증 고령 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다. 80∼90대 초고령 환자들은 신체 노화로 미세 출혈이나 조혈 기능 장애가 생겨도 대학병원에서 내시경이나 골수검사 등 정밀검사를 버텨내기 어렵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산소 공급과 생명 유지를 위한 가장 필수적이고 현실적인 치료로 수혈을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일선 요양병원이 혈액을 공급받는 전달 체계다.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은 원내에 자체 혈액은행(보관시설)을 두고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이나 한마음혈액원 등으로부터 직접 혈액을 대량 공급받아 비축한다. 반면 자체 보관 시설을 갖추기 어렵고 평소 혈액 수요가 많지 않은 대다수 중소·요양병원은 혈액이 필요할 때마다 직접 수령해 오거나, 지역 내 거점 역할을 하는 특정 병원(혈액공급소)을 통해 혈액을 배분받는다.

실제 인천 서해구(구 서구)의 경우 관내 병원들이 혈액을 공급받을 수 있는 거점 창구가 단 한 곳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응급 수술을 다루지 않는 요양병원은 배분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임상적 위급도'가 아니라 '병원의 간판(종별 규모)'에 따라 혈액이 배분되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이유로 혈색소 수치가 8.0g/dL 수준인 비교적 여유 있는 만성 환자에게는 혈액이 곧바로 공급되는 반면, 요양병원에서는 당장 숨이 넘어가는 혈색소 4.0∼5.0g/dL 환자가 2주 동안 피를 구하지 못해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전체 혈액 수급량 자체는 부족하지 않다며 현장의 공급 지연 실태를 파악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혈액장기정책과 관계자는 "현재 국가 전체적으로 혈액이 모자란 상황은 아니며, 통상 의료기관이 혈액관리본부 등에 요청하면 공급이 이뤄진다"면서 "다만 규모가 작은 중소·요양병원은 평소 혈액 수요가 많지 않고 자체 보관 여건 등의 차이가 있어 필요할 때마다 소량씩 수령하거나 공급받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일선 요양병원에서 거점 병원 등을 통한 혈액 공급이 왜 그렇게 지연되고 있는지 구체적인 경위를 한번 점검해 보겠다"고 밝혔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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