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 현장]⑦ '지뢰밭'서 '평화마을'로 탈바꿈…베트남 전쟁 상흔 치유

베트남 중부 '아루오이' 불발탄 제거 현장…2030년까지 안전지대화 박차

코이카-UNDP, 스마트 농업·기후회복형 주택 연계…안전·생계·주거 융합

베트남 중부 '죽음의 땅'에서 불발탄 캐내는 'K-ODA'
(아루오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베트남 중부 아루오이 산악 지대에서 베트남 인민군 공병대원이 안전 장구를 착용한 채 조심스럽게 불발탄 탐지·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유엔개발계획(UNDP)은 지뢰 제거부터 농업, 주거까지 지원하는 융합형 ODA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6.10.14 raphael@yna.co.kr

(아루오이[베트남]=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섭씨 35도를 웃도는 덥고 습한 베트남 중부 아루오이(A Luoi) 지역 산악 지대, 푹푹 발이 빠지는 진흙밭 사이로 금속탐지기의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지자 현장에는 순식간에 팽팽한 정적이 감돌았다.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방탄조끼와 안전모로 무장한 베트남 공병대원이 조심스럽게 전용 굴착 수공구로 주변 흙을 밀어내자, 반세기 넘게 땅속에 묻혀 있던 성인 주먹만 한 철제 폭탄이 서서히 녹슨 겉면을 드러냈다.

50여년 전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대량 살상용으로 투하했던 자탄(子彈·새끼 폭탄) 방식의 'BLU-63' 집중탄 불발탄이다. 야구공처럼 둥글게 생겨 어느 방향에서 충격을 받든 쉽게 터지도록 만들어졌다.

반세기 만에 흙 밖으로 드러난 'BLU-63' 집중탄
(아루오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베트남 중부 아루오이 산악 지대 땅속에 묻혀 있다가 탐지제거팀에 의해 발견된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BLU-63' 집중탄 불발탄. 작은 마찰에도 폭발할 수 있어 주변에 접근 금지를 알리는 붉은 띠와 나무 말뚝이 설치돼 있다. 2026.10.14 raphael@yna.co.kr

수십 년 동안 땅속에서 녹슬고 부식되며 작은 충격에도 쉽게 터질 만큼 예민해진 탓에, 주민들이 밭을 갈다 농기구로 살짝만 건드려도 곧바로 치명적인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불발탄으로 꼽힌다.

베트남 인민군 제249공병여단 소속 지뢰·불발탄 탐지제거팀원 쩐 띠엔 아인(28) 씨는 "부식이 심해 작은 마찰에도 폭발할 수 있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며 작업복 소매로 땀을 닦아낸 뒤, 불발탄 주변에 나무 말뚝을 꽂아 위험 지역임을 표시했다.

지뢰·불발탄 탐지제거 작업 전 준비하는 공병대원들
(아루오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베트남 중부 아루오이 산악 지대에서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이 지원한 신형 금속탐지기와 방탄조끼, 안전모 등으로 무장한 베트남 지뢰·불발탄 탐지제거팀원들이 현장에 투입되기 전 대열을 갖추고 있다. 2026.10.14 raphael@yna.co.kr

◇ "2030년까지 완전한 평화지대로"…죽음의 땅에 심는 '안전'

이 지역은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군 물자 수송로였던 '호찌민 통로'가 지나던 국경 요충지다. 미군의 집중 포격과 고엽제 살포가 집중됐던 대표적인 전쟁 피해 지역으로, 숲과 농경지 곳곳에 숨겨진 불발탄은 여전히 주민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지뢰·불발탄 탐지제거 작업을 총괄하는 레 칵 선(38) 팀장은 "작업 현장은 60%에 달하는 가파른 경사면과 숲이 우거진 악조건이 겹쳐 있다"며 "현장 진입 전 기후와 지형 평가를 거쳐 대원들의 안전 수칙을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유엔개발계획(UNDP)이 추진하는 '베트남 지뢰·불발탄 제거를 통한 중부지역 평화마을 조성사업'(2022∼2028)은 이 죽음의 땅을 안전지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단순히 불발탄 제거에 그치지 않고, 안전이 확보된 땅에 기후변화 대응 농업 기술을 이식하고 취약계층의 주거 환경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융합형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모델이다.

선 팀장은 "한국 정부가 지원한 지하 30cm 깊이까지 정밀 탐지가 가능한 신형 금속탐지기와 개인 보호 장구 덕분에 작업의 정확도와 대원들의 안전성이 향상됐다"며 "팀원 18명이 하루에 0.25∼0.337헥타르(ha)를 정밀 탐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속도로 작업을 이어 나간다면 2030년경에는 아루오이 전역이 불발탄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평화지대가 될 것"이라며 "전쟁의 상흔을 완전히 씻어내고, 깨끗한 땅을 온전히 돌려주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직접 토양 살피며 배우는 친환경 농법
(아루오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벼 수확을 마친 현지 농민들과 현장 지도사들이 논바닥에 웅크려 앉아 벼 뿌리와 흙의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맞춤형 농업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 2026.10.14 raphael@yna.co.kr

◇ 종자·비료 줄이고 소득 늘린다…'기후 스마트 농업'의 기적

지뢰·불발탄 탐지제거팀이 위험을 무릅쓰고 안전을 확보해 주민들에게 반환한 땅은 곧바로 삶을 바꿀 기후 스마트 농지로 재탄생하고 있다. 인근 지역의 한 논에서는 기후 회복형 농업 프로젝트의 일환인 4차 현장농업학교(FFS) 수업이 한창이었다.

최근 벼 수확을 모두 마친 농민 30여명과 현장 지도사들은 논바닥에 웅크려 앉아, 벼를 베고 남은 그루터기와 흙 속에 박힌 뿌리를 살피며 토양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했다.

불발탄 위험에서 해방된 토지가 어떻게 건강한 농경지로 되살아나는지, 그리고 수확 후 논에 남은 볏짚을 태우는 대신 미생물 발효를 거쳐 자연 친화적인 거름으로 어떻게 되돌리는지 배우는 맞춤형 실습에 농민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죽음의 땅'서 '생명의 땅'으로…스마트 교육 듣는 베트남 농민들
(아루오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베트남 아루오이 지역 농민들이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불발탄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난 안전한 부지에 모여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유엔개발계획(UNDP)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4차 현장농업학교(FFS) 수업을 듣고 있다. 2026.10.14 raphael@yna.co.kr

농민 호 반 브어(42) 씨는 "예전에는 무조건 종자와 화학 비료, 농약을 많이 뿌려야 수확량이 늘어나는 줄 알았다"며 "FFS를 통해 배운 '3감 3증(종자·비료·농약을 줄이고, 수확량·품질·소득 늘리기) 농법' 덕분에 소득이 개선됐다"고 말했다.

또 "과거 1헥타르당 벼 수확량이 5톤(t)에 불과했지만, 기후 스마트 농법 도입 후 6∼6.3t으로 수확량이 20% 이상 늘었다. 친환경 고품질 벼가 생산되면서 시장에서도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홍수 공포 지워낸 '기후 회복형 주택'
(아루오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유엔개발계획(UNDP) 지원으로 건립된 '기후 회복형 주택'의 앞마당을 청소하고 있는 응오 토이 도안 씨. 상습 침수에 대비해 평소 홍수 수위보다 바닥을 높게 띄운 콘크리트 기둥 위에 집을 지었다. 2026.10.14 raphael@yna.co.kr

◇ 홍수 공포 지운 복층 대피 주택…생업 집중 가능한 '안도감'

취재진은 이날 장대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 사업의 또 다른 핵심 축인 '기후 회복형 주택' 수혜 가구를 찾았다.

매년 한두 차례 반복되는 태풍과 폭우로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던 노후 흙집은 사라지고, 평소 홍수 수위보다 바닥을 높게 돋운 콘크리트 기둥 위에 바닥을 땅에서 높이 띄운 튼튼한 집이 들어서 있었다.

예기치 않은 홍수가 닥쳤을 때 가재도구를 위로 올려 침수 피해를 막고, 가족들이 즉시 몸을 피할 수 있도록 내부 복층 공간을 갖춰 특수 설계된 주택이다.

언어 장애를 겪는 딸과 뇌 질환을 앓는 손주 등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뿐인 7식구의 가장 응오 토이 도안(89) 씨는 새집이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로 '생계 활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된 안도감'을 꼽았다.

도안 씨는 "예전엔 비나 태풍이 오면 집이 잠기고 무너질까 봐 조마조마했다"며 "지금은 강한 바람이 불어도 지붕이 날아가지 않고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아 앞마당 경작이나 이웃집 일손 돕기 같은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제 안심하고 생업에 집중합니다"
(아루오이=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태풍과 폭우에도 안전한 새집을 얻게 된 응오 토이 도안(왼쪽) 씨와 그의 딸이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10.14 raphael@yna.co.kr

코이카와 UNDP가 함께하는 이 사업은 지뢰·불발탄 제거라는 안전 확보를 출발점으로, 기후 스마트 농업을 통한 경제적 자립, 기후 회복형 주택 건립을 통한 사회적 포용까지 일석삼조의 효과를 내고 있다.

전쟁의 상흔과 불발탄의 공포로 얼룩졌던 베트남 중부의 비옥한 산악지대가 한국의 따뜻한 개발협력의 손길을 거쳐, 안전과 풍요가 넘쳐나는 '기후 스마트 평화마을'로 도약하고 있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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