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물질은 외부의 자극에 반응해 자신의 구조를 바꾸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똑똑한 재료로 활용될 수 있다. 빛에 반응하는 ‘아조벤젠’은 대표적인 ‘분자 스위치’로 꼽히는데, 그간 수수께끼였던 아조벤젠의 작동 방식을 최근 우리나라 연구진이 풀어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화학과 이효철 교수 연구팀이 기초과학연구원(IBS) 첨단반응동역학연구단과 함께 아조벤젠의 구조 변화 과정을 규명한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으로 1일 게재했다고 밝혔다. 아조벤젠은 질소 원자 두 개로 이뤄진 연결부(아조기) 양쪽에 벤젠 고리 두 개가 결합해 있는 화합물이다. 빛을 받으면, 두 개의 벤젠 고리가 서로 반대쪽에 놓인 ‘트랜스’ 형태와 서로 같은 쪽에 놓인 ‘시스’ 형태 사이를 오갈 수 있다. 이 성질을 이용해 약물의 활성을 빛으로 조절하거나, 빛에 반응하는 소재와 분자 기계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돼 왔다.
다만 두 고리가 크게 돌아가는 건지, 가운데 있는 연결부가 펴지는 건지, 여러 부분이 함께 비틀리는건지 등 구조 변화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거운 원자 없이 탄소·질소·수소로만 이뤄진 탓에 주변 용매에 가려져 관찰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 연구팀은 메탄올 용액에 녹인 아조벤젠에 레이저를 쏘아 반응을 일으킨 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엑스선 자유전자레이저를 이용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를 측정하고, 용매의 신호를 수학적으로 제거해 측정 결과를 재구성했다.

그 결과, 트랜스 아조벤젠이 빛을 흡수하면 탄소와 질소가 이어진 부분이 먼저 비틀어지고, 이어 질소와 질소가 연결된 연결부가 자전거 페달처럼 맞물려 움직인 뒤, 마지막 단계에서 한쪽 벤젠 고리가 반전하여 시스 아조벤젠 형태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쪽의 큰 벤젠 고리가 거의 제자리에 머무는 동안 가운데 있는 질소 연결부가 회전을 주도해, 전체적인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는 용매 속에서 반응하면서도, 그 속도가 용매의 점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이번 연구는 아조벤젠 같은 분자 스위치를 활용하는 광응답 소재, 광약리학, 분자 기계 등 여러 분야에서 소재와 관련해 유용한 기초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빛을 받았을 때 분자가 어떤 구조를 거쳐 움직이는지 이해하면, 원하는 반응 속도와 효율을 얻기 위한 분자 설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 대해 “무거운 원자가 없는 용액 속 유기분자의 초고속 구조 변화를 엑스선으로 포착함으로써, 다양한 유기반응의 메커니즘을 ‘분자 동영상’으로 밝히는 길을 열었다”고 자평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