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신안 앞바다 227m 터빈이 던지는 질문…해상풍력 ‘메가프로젝트’ 감당할까

지난 9일 전남 신안군 자은도 북서쪽 바다에서 바라본 전남해상풍력 1단지의 터빈 모습. 날개 끝이 가장 높이 올랐을 때 해수면에서 꼭대기까지 227m에 이른다. 터빈 근처를 지나는 어선이 작은 점처럼 보인다.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서 지난 9일 오후 1시40분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자 바람의 결이 금세 달라졌다. 육지에선 머리칼을 가볍게 흔들던 바람이, 배에 탄 지 5분도 채 안 돼 눈을 찡그리게 할 만큼 거세졌다. 15분쯤 지나자 멀리 옅은 흰색 바늘 같은 것이 하나둘 보였다. 전남해상풍력 1단지의 터빈이었다.

주변 어선과 크기가 엇비슷해 보였던 터빈은 배가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본모습을 드러냈다. 날개(블레이드) 끝이 가장 높이 올라갔을 때 해수면에서 꼭대기까지 높이는 227m다. 서울 63빌딩에서 위쪽 대여섯 개 층만 덜어낸 수준이다. 약 3시간 전 관제실 화면에서는 터빈 10기가 모두 멈춰 있었는데, 발전단지에 도착하자 터빈 6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돌고 있던 한 터빈은 1분 동안 6바퀴를 돌았다. 곧바로 다시 세어보니 5바퀴를 채 돌지 못했다. 김진철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이앤에스(E&S) 부사장 겸 전남해상풍력 대표이사는 “해상풍력의 평균 이용률은 30%대이고, 태양광·육상풍력보다 높다”며 “이날 새벽에는 66%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용률은 발전설비가 최대 출력으로 계속 돌아갔을 때와 견줘 실제 생산한 전기량의 비율을 뜻한다.

자은도에서 북서쪽으로 약 9.2㎞ 떨어진 바다 위에는 9.6MW급 터빈 10기가 두 줄로 서 있었다. 총 96MW 규모의 전남해상풍력 1단지(전남1)다. 전남1은 풍력 고정가격 경쟁입찰에서 선정된 민간 주도 사업이 인허가와 금융조달, 시공을 거쳐 실제 발전소로 완성된 첫 사례다.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이앤에스(E&S)는 유럽 등에서 해상풍력 투자·개발 경험을 축적한 덴마크계 코펜하겐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CIP)와 전남1을 공동 개발했다. 전남1은 지난해 5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전남 신안 앞바다에 들어선 전남해상풍력 1단지 해상풍력발전기 일부가 바다 위로 보인다.

이 96MW가 주목받는 것은 전력수요의 지도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처럼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이 커지면서, 재생에너지는 탄소중립 수단을 넘어 산업 기반시설의 하나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정부는 호남권 반도체 산단에 2029년부터 약 3GW 규모의 1단계 전력공급설비를 구축하고, 이후 누적 6GW 이상 전력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다. 같은 호남권의 신안 앞바다 해상풍력이 반도체·인공지능데이터센터(AIDC) 메가프로젝트의 전력원으로 거론되는 배경이다.

사업자와 지방정부도 이런 변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김 부사장은 “지방에서 발전을 많이 하는데 수요가 있는 서울까지 보내려다 보니 계통 문제가 발생한다”며 “전남 지역에 큰 전력수요가 생기면 서울까지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수 신안군 신재생에너지국장도 광주 군공항 부지에 추진되는 호남권 반도체 산단의 전력수요와 신안 해상풍력이 맞물릴 수 있다고 봤다.

전남1 뒤에는 더 큰 후속 사업이 줄지어 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이앤에스와 CIP는 각각 399MW 규모의 전남해상풍력 2·3단지를 추가로 개발해 2031년까지 전남해상풍력을 900MW급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신안군으로 범위를 넓히면 고정식 해상풍력 26개 단지, 총 8.2GW 규모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먼저 돌아가기 시작한 96MW가 신안 앞바다 전체의 시험대로 읽히는 이유다. 전남1이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이제 남은 질문은 이 경험을 수GW급 보급으로 키울 수 있느냐다.

첫 관문은 계통이다. 해상풍력이 호남권 메가프로젝트의 전력원이 되려면, 바다에서 만든 전기를 육지 전력망으로 보낼 길이 있어야 한다. 신안군은 신안 앞바다 해상풍력을 육지 계통에 연결하려면 임자도에서 신장성 변전소 쪽으로 이어지는 87㎞ 공동접속설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선로는 신안뿐 아니라 무안·함평·영광·장성 등 5개 시군을 지난다. 이 국장은 “접속 설비도 없는데 해상단지를 해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87㎞ 송전선로는 5개 시군의 주민수용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안군은 이 공동접속설비가 국가기간 전력망으로 지정돼야 선로가 지나는 지역에 지원금을 배분할 근거가 생긴다고 본다. 지정되지 않는다고 사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경과지 주민수용성을 확보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발전단지 주변 주민만이 아니라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까지 설득해야 해상풍력이 실제 전력원으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전남 신안 자은도 연안 해역에 소형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발전단지 주변 주민수용성도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전남1이 상업운전에 들어간 지 1년4개월이 지났고 ‘바람연금’이라는 이익공유제도도 시행되고 있지만, 주민들 사이의 우려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년 전 어업을 그만뒀다는 윤아무개(67)씨는 “이쪽 어족자원이 많이 줄었다. 올해는 기름값도 못 벌었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자은면에서 7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이아무개(47)씨도 “공사 뒤로 바다에 구멍을 자주 뚫으니 고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를 어민들에게서 자주 듣는다. 앞으로 해상풍력이 더 많이 생긴다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은 주변 해역 변화에 대한 검증과 주민 소통이 더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안군은 어획량 감소와 해상풍력의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주변 해역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해상풍력 산업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2030년 10.5GW 보급·착공, 2035년 25GW 보급을 목표로 제시했고, 지난 6월에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모두 55GW 규모의 해상풍력 입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하반기에도 추가 입찰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발전사업허가를 받거나 입찰에서 낙찰됐다고 곧바로 실제 보급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내 해상풍력 발전사업허가 물량은 지난 2월 기준 누적 34.3GW에 이르지만, 실제 보급 물량은 0.36GW로 허가량의 1% 수준에 그친다. 한 해상풍력 업계 관계자는 “낙찰 기준이 아니라 보급 기준으로 봐야 한다”며 “낙찰된 사업이 금융조달과 설계·조달·시공(EPC) 발주, 착공·준공으로 이어지는지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입찰을 통해 보급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고무적이지만, 실제로 지어질 수 있는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보급이 쌓여 시장의 신뢰가 생겨야 해상풍력 발전단가도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남 신안/글·사진 유하영 기자 y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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