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미란 | 디자이너·아트 워크샵 리더
“고양이, 새, 식물, 사람 모두 죽으면 분해돼서 흙에 남잖아요. 작업할 땐 내 손 안에 있는 이 흙이 한때 살아 있던 생명체였다는 걸 느껴요.” 이화여대 학보에 실린 김혜정 작가의 인터뷰에서 이 대목에 강렬하게 끌렸다. 흙을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한때 살아 있던 생명체로 감각하는 도예가를 만나기 위해 북한산 계곡 작업실을 찾았다. 땅이 쩍쩍 갈라지던 가뭄 끝에 내린 단비로 계곡 물소리는 싱그러웠다. 후덥지근한 더위에도 작업실 안은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빌라 반지하를 개조한 작업실엔 물레와 작업 건조대, 흙을 치대는 토련기와 가마, 갖가지 색의 유약들이 빼곡했다. 그는 자신을 ‘흙 집사’라 불렀다. 도예도 농사처럼 절기가 중요한데, 일조량과 바람의 변화에 따라 흙 작업의 상태를 예민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흙과의 인연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너살 무렵부터 숲속을 뛰어다니며 놀이기구 없이도 놀이를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아직도 몸 안에 생생하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며 물레와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중심이 잘 잡힌 그릇 하나를 온전히 만들어 보고 싶었다. 10년 넘게 물레를 돌리고 박사학위까지 마쳤지만, 여전히 쉽지 않았다. 그는 소와 양밖에 없는 영국 웨일스 시골 작업실에서 다시 3년간의 수련 끝에 비로소 자신의 ‘중심’을 찾게 된다. 물레 위에 한줌의 흙을 얇게 펴 올리면 꽃이 만개하듯 유연한 그릇이 펼쳐졌다. 그제야 물레의 중심도 달리 보였다. “중심은 고정된 한 점이 아니었어요. 중심은 물레의 회전, 그리고 흙과 몸 사이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생겨납니다.” 이후 춤을 배우며 몸의 중심과 자유로운 움직임을 익혔다. 물레 작업은 더 이상 기술이 아니라 ‘나와 흙이 함께 추는 춤’이 되었다.

그런데 2011년 3월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쓰나미의 충격은 그가 추구해 온 평온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문명의 오만과 자연의 파괴력 앞에 마을이 무너지고, 휩쓸려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회의와 무기력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간을 보내다 겨우 작업대 앞에 다시 서던 날, 완성을 앞둔 도자기들이 늘어선 풍경 위로, 쓰나미가 휩쓸고 간 마을의 잔상과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파도가 삼켜 버린 자리. 널브러진 아이들의 모자와 세간살이. 분노와 슬픔으로 살풀이하듯 쓰나미 춤을 췄다. 그릇들은 사방으로 굴러떨어져 깨지고 찌그러졌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작업실에 다시 고요가 찾아오고 그는 흩어진 파편들을 하나씩 거둬들였다. 어떤 것은 흙으로 돌려보내야 했고, 어떤 것은 깨진 자리를 어루만져 다독였다. 그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매끈했던 그릇들이 저마다의 흔적을 품고 있더라는 것을. 깨짐과 일그러짐은 더 이상 지워야 할 결함이 아니었다. 거친 삶의 흔적을 안고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쓰나미 이후 그의 작업은 그렇게 달라졌다. 한때 나뭇잎이고 새였으며 사람의 일부였던 흙은, 작가의 손길과 불길을 거쳐 다시 생명을 얻는다. 저마다의 상처와 기억, 그리고 고유한 중심을 품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