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남하" 21살 北공군 소위, 김포공항서 손수건 흔든 이유[뉴스속오늘]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53년 9월 21일 김포공항에 착륙한 미그-15기. /사진=위키피디아1953년 9월 21일, 6·25 전쟁 휴전 협정이 체결된 지 두 달 만에 북한군 공군 소위가 귀순했다.

훈련 비행을 가장해 북한에서 미그-15기에 탑승한 그는 철저하게 탈출을 계획해 이륙한지 불과 13분 만에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흔들며 귀순 의사를 밝혔다.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을까.

이륙하자마자 전격 선회…김포공항서 손수건 흔들어

당시 노금석의 모습. /사진=위키피디아노금석은 1932년 함경남도 신흥 지역에서 태어났다. 북한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지만 소련의 지원을 받아 항공훈련을 받게 되면서 공군 조종사로 성장했다. 한국전쟁에서는 소련제 제트전투기 미그-15기를 타고 미군과 교전했다.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항상 남한으로 탈출하는 꿈을 꿨다. 그러던 중 정전협정이 체결됐고 두 달 후 결정적인 기회가 생겼다. 북한의 순안비행장에서 비행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그는 사건 당일 오전 9시 이전, 평양 북쪽에 위치한 순안비행장에서 훈련 비행을 가장해 미그-15기 탑승을 준비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탈출을 계획했던 그는 레이더망을 피하고 의심을 최소화 하기 위해 단독 비행 형식을 취했다.

오전 9시 10분께 순한비행장을 이륙한 노금석은 상공에 도달하자마자 북한의 감시와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기수를 남쪽(대한민국 방향)으로 전격 선회했다. 이상을 감지한 북한군은 급히 무전을 통해 "너 지금 어디있느냐. 돌아오라"며 호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금석은 무전을 무시하고 계속 남하했다. 시속 1000㎞에 달하는 미그-15기는 군사분계선(MDL)을 빠르게 통과했고, 대한민국 영공에 진입하자마자 미 공군 및 한국 공군 레이더망에 미확인 고속 기체로 포착됐다. 김포공항에는 미 공군 제5공군 소속부대가 주둔 중이었다. 김포공항의 미 공군 레이더와 방공망은 즉시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오전 9시 24분, 노금석이 조종하는 미그-15기는 김포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공산권 최신예 전투기가 경보 없이 갑자기 착륙하자 미군 조종사와 병사들은 깜짝 놀라 총을 겨누며 긴급 출동했다. 이에 노금석은 비행기에서 내리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흔들고 귀순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 당시 노금석의 나이는 고작 21세였다.

공산권 전략 자산 '미그기' 미군 손에…미국서 대학교수로 은퇴

당시 공산권의 최고 전략 자산이었던 미그-15기. /사진=위키피디아노금석이 남한으로 탈출했을 때 북한 지도부와 군부 내부는 극도의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 소련이 지원한 공산권 최고의 전략 자산인 미그-15기가 온전한 상태로 미국 손에 넘어간 것은 북한 입장에서 엄청난 안보 타격이었기 때문이다.

또 엘리트 공군 장교가 사회주의 체제를 버리고 자발적으로 남하했다는 사실은 내부 기강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수뇌부는 이 사건에 대해 극도로 진노했다. 결국 순안비행장을 비롯해 북한 공군 지휘부와 동료 조종사, 정비병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줄줄이 체포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 등 숙청 작업이 벌어졌다.

한편, 미그-15기를 확보한 미군은 극비리에 비행기를 분해한 후 수송기에 싣고 오키나와로 이송했다. 이후 세계적인 테스트 파일럿인 첫 예거가 직접 시험 비행을 하며 미군 주력기였던 F-86 세이버와의 성능을 비교·분석해 귀중한 항공 기술 정보를 얻었다.

미국 정부는 당시 '미그기'에 현상금을 건 상태였다. '주요 군사 장비를 온전하게 귀순해 오는 자에게 10만 달러를 지급하겠다'던 마크 클라크 장군의 성명에 따라 노금석에게는 10만 달러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당시 10만 달러에 미국 물가 상승률 등을 반영해 원화(현재 기준) 가치로 환산하면 약 16억~17억원에 달한다. 다만 노금석이 포상금을 받기 위해 귀순한 것은 아니었다. 노금석은 북한에서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으며 한국에 도착한 뒤에야 '10만 달러 포상금'에 대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던 노금석은 이 돈으로 미국에 정착한 후 경제적 어려움 없이 미국 항공대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미국 시민권까지 얻은 그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항공 관련 교수로도 활동하다 2000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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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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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R189XU9#TOAV
    2026.09.2107:00
    엘리트였구나 미국에서 교수까지 하다니 영화같은 인생이네
  • (홀씨) 고니#NAgC
    2026.09.2107:00
    가족들은 뭔가? 가족에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천륜도 다 져버리고 모든 가족이 죽는날까지 고통속에서 신음하다 죽어갈때 혼자만 미국에서 경제적 어려움없이 자유를 누리며 살면 그게 참된인생인가! 아무리 자유가 그리워도 가족과 동료 주변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어가면서 까지 혼자만의 자유를 찿는건 철저한 이기주의다 의리와 사랑에 목숨을 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의리와 사랑을 버리고 목숨을 구걸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죽어서 영원한 자유를 찿는게 인간의 도리다.
    • Jollyroger#3Mim
      2026.09.2110:01
      그래 그렇게 살아 ㅎㅎ 존재감도 없으니까 알아주는 사람도 없어 ㅎㅎ
    • KRLNQNQ#Iu8e
      2026.09.2122:07
      솔직히 안그래도 북한엔 뭐 없어서 가족들 이미 거의 아깝게 되고 있었을거같음
  • 쩡이#37IF
    2026.09.2106:44
    혼자만 잘먹고 잘살았네..주변지인들이 뭔죄..가족들도 숙청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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