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내부통제뿐 아니라 수익성, 시장 지위, 고객 기반, 조직문화, AX(AI를 업무와 조직 운영 전반에 이식) 등 모든 역량이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아치형 구조물의 돌들이 서로를 지탱하듯 각 요소가 균형을 이루며 조직 전체를 받쳐줘야 합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1일 신한지주 창립 25주년 기념 강연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아치는 돌 하나하나가 옆 돌에 기대어 서는 구조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나머지가 아무리 단단해도 무너진다. 진 회장이 지목한 여섯 개 돌을 하나씩 짚어보면 신한금융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가 드러난다.
강연에서 진 회장은 반성해야 할 선택과 실패를 짚어보도록 주문했다. 이는 올해 신한금융이 경영진 회의에서 '나만의 가짜 혁신 보고서'나 '메타인지 노트'를 통해 성과 부진과 실패 사례를 복기했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첫 번째 돌, 내부통제 "스캔들 제로와 영업은 충돌하지 않는다"
진 회장이 아치의 첫머리에 놓은 것은 내부통제였다. 그는 "스캔들 제로와 적극적인 영업은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내부통제는 영업을 위축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신한금융은 내부통제를 시스템 안으로 철저히 들여오고 있다. 진 회장 본인의 경영성과 평가에서 내부통제 비중은 25%로 올랐고, 6월부터는 그룹 공동 내부통제 플랫폼 'SCoRE'에 생성형 AI를 결합한 'SCoRE AI'를 정식 가동 중이다. 임원별 책무 점검과 증빙 자동 검증 기능 등을 갖춰 특허 출원도 마쳤다.
통제가 수익을 따라가지 못했을 때의 경각심은 명확하다. 2024년 신한투자증권 ETF LP 부서에서 발생한 1300억원대 손실 사고는 파생상품 업무 전반의 통제 부실을 드러낸 대표적 사례였다. 신한투자증권은 준법지원 및 운영리스크 조직을 강화한 뒤 업무를 재개했다. 다만 2027년 ROE 10% 달성을 위한 수익성 드라이브 속에서 진 회장의 '충돌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입증될지는 과제로 남아있다.
과오에 대한 외부 시선은 교차한다. 국민연금은 라임 사태 이력을 들어 진 회장의 이사 선임에 반대해온 반면,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올해 초 찬성으로 돌아섰다. 진 회장은 지난 3월 주총에서 87.99%의 찬성률로 연임에 성공했다. 최근 신한금융은 이사회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금융업 경험을 갖춘 이사 확충 등 지배구조 개선 의지를 밝히며 기관 투자자들에 기업가치를 피력했다.
두 번째 돌, 수익성: 격차는 비은행에서 갈렸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신한금융지주의 2026년 3월말 연결 총자산은 816조7190억원, 자기자본은 61조4740억원이다. 1분기 순이익은 1조6230억원(ROE 8.8%)으로 KB금융지주(순이익 1조8920억원, ROE 10.2%)에 근소하게 뒤진 2위다.
격차는 비은행에서 벌어졌다. 비은행 순이익 의존도는 29%로 올랐으나 KB금융(38.5%)과 차이가 있다. 신한카드 순이익이 3년 연속 감소하고 신한EZ손해보험이 적자를 지속한 영향이다. 반면 자본과 주주환원은 견고하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13.3%를 기록했고, 2025년 주주환원율은 50.2%(총 2조5000억원)로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50%를 넘겼다. 주가 역시 크게 상승했다.
다만 고정이하여신비율 상승(0.83%)과 지주 조달구조 내 높은 선순위채권 비중(29.0%)은 계열사 실적에 따른 자금관리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에 진 회장은 자회사 CEO 인사 평가에서 타 그룹과의 상대평가와 '전투력'을 강조하고 있다.
세 번째 돌, 시장 지위: "2030년 신한이 사라진다면"
신한금융은 하반기 경영포럼에서 2030년 신한이 시장에서 소멸하는 시나리오를 담은 오프닝 영상을 상영하며 경영진에 강렬한 위기의식을 주입했다. 한신평에 따르면 현재 신한은 카드 1위, 은행 2위라는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으나, 증권(9위)과 손해보험(21위) 등 비은행 핵심 축의 시장 지위는 여전히 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정 계열사에 편중된 이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체급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신한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반면 해외 사업 부문은 체질 개선의 성과를 내며 차세대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2025년 기준 해외 종속기업의 순이익 비중은 12.2%로 5대 금융지주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1위다.
최근 세계 최대 액티브 자산운용사인 캐피털그룹은 신한지주 지분 5.02%를 전격 매수하며 국민연금·블랙록에 이어 3대 주주로 등용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이 신한의 펀더멘털과 장기 성장성에 보낸 시장지위에 대한 긍정적 평가로 풀이된다.
네 번째 돌, 고객 기반: 은행·카드 고객을 그룹 전체로
신한금융은 계열사별로 쪼개져 있던 고객 저변을 그룹 전체로 연결해 유기적 시너지를 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은행과 카드가 보유한 국내 최고 수준의 고객 인프라가 증권·보험으로 전이되지 못하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룹 통합 앱 '신한 슈퍼SOL'과 원스톱 증권 연결 서비스인 'SOL LINK'를 전면에 내세웠다. 단일 플랫폼 안에서 그룹의 모든 금융 서비스를 유기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리테일 앱 통합을 넘어 고자산가 시장(Rich Market)에서도 집단군 형태의 자산관리(WM) 모델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 8월 개최한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포럼은 은행·증권·카드·라이프·자산운용 등 핵심 계열사가 전격 결합한 첫 공동 자산관리 행사로,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고자산가 1000여 명을 대거 끌어모았다. 계열사 간 장벽을 허문 전담 조직을 통해 고객 기반의 깊이와 스펙트럼을 동시에 확장하겠다는 포석이다.
다섯 번째 돌, 조직문화: '압도적 몰입'으로 목표 이루자
진옥동 회장은 리더들을 향해 자기 부서의 울타리에 갇힌 관리자에 머물지 말고, 그룹 전체를 오가며 이익을 조율하는 '대내외적 코디네이터'로 거듭날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탁월한 개인의 역량을 조직 전체의 체화된 습관으로 안착시켜야 하며, 관성을 깨부수는 '압도적 몰입'과 강력한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고강도 목표 드라이브에 따른 피로감과 불만의 목소리도 분출하고 있다. 슈퍼SOL 신규 가입 360만좌 목표 달성을 두고 계열사 노동조합들이 상급 단체를 넘어 연대 성명을 내고 "전 직원을 영업 압박으로 몰아넣고 있다"며 반발했다. 현장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조직문화 정합성 확보가 시급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인력 감축 기조 속에서 조직 내실을 다지고 1인당 생산성을 제고해야 한다. 신한금융 임직원 수는 2022년말 3만705명에서 2026년3월말 2만9291명으로 줄었다. 직원 1인당 수익성은 0.67%로 임직원을 최근 1년간 약 10% 줄인 KB금융지주(0.78%)에 못 미친다.
여섯 번째 돌, AX: AI에이전트를 실전 배치 중
진 회장은 금융소비자들이 신뢰하는 대상이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이동했다면 이제는 AI까지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금융권 최초로 설립했던 AI 전문 자회사(신한AI)를 청산하고 인력을 내부로 흡수한 바 있다. 신한금융은 이 자산을 토대로 한층 정교하고 실무 직결적인 AI 에이전트 체제로 빠르게 전환했다.
지난 7월 'Shinhan AX Agent Summit 2026'을 열어 계열사별로 구축한 21종의 맞춤형 AI 에이전트를 실전에 배치해 검증하는 한편, 경영진 전략 회의의 '레드팀' 역할까지 AI에 맡기는 등 조직 전반에 AI를 이식하고 있다. 단순 업무 자동화나 기술 도입 차원을 넘어, 핵심 수익 창출 프로세스 자체를 AI 중심으로 판을 다시 짜는 '질적 고도화'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마지막 돌은 신뢰
진 회장은 강연 말미에 위대한 조직의 조건으로 '단 한 번도 쓰러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뼈아픈 교훈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제시했다. 과거의 뼈아픈 과오를 가리지 않고 성찰할 때 비로소 구조적 진화가 일어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치형 구조에서 모든 돌을 완벽하게 맞물리게 하는 '쐐기돌'로 진 회장이 찍은 가치는 '신뢰'였다.
금융사에게 신뢰는 여러 경영 목표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의사결정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관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신뢰받는 개인과 시스템, 그리고 금융그룹을 구축하는 것만이 신한금융이 지난 25년의 역사를 넘어 다음 시대로 도약하는 본질적인 동력임"을 명확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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