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천체에 우리가 아는 형태의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으려면 최소한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생명체의 터전이자 물질이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표면이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하고, 생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촉매이자 용매인 액체 물이 유지될 수 있을 만큼 온도가 적절히 유지돼야 하며, 물과 온도를 보존하고 우주방사선을 막아 생명체를 보호해주는 대기가 있어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가 중심이 된 국제 공동 연구진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춘 행성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지구에서 49광년 떨어져 있는 암석형 행성 ‘LHS 1140b’의 상층 대기에서 우주 공간으로 흘러나오는 헬륨 가스를 감지했다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그동안 천문학자들은 다른 별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을 6000개 넘게 발견했지만, 지구처럼 단단한 표면의 암석형 행성에서 대기를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2의 지구’를 찾아 나선 천문학계의 외계 탐색 경로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셈이다.
2017년 처음 발견된 LHS 1140b는 생명체가 살기에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골디락스 영역에서 중심별을 공전하고 있다. 지구보다 온도는 낮지만 크기와 질량은 더 크다. 질량은 지구의 5.6배, 반지름은 1.73배로 물질 밀도가 지구보다 조금 높다.
제2의 지구를 추적해온 과학자들은 그동안 태양보다 작고 표면온도가 낮은 ‘적색왜성’(M형 왜성) 주변을 주목해 왔다. 이 별들은 우주에서 가장 흔하고 암석형 행성을 거느리고 있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LHS 1140b의 중심별도 적색왜성이다. 크기는 황색왜성(G형 왜성)인 태양의 5분의 1로 표면 온도가 2천~3천도다. 연구를 주도한 콜린 체루빔 박사(행성과학)는 “이 행성이 중심별에서 받는 에너지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의 42%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적색왜성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적색왜성은 핵융합 활동이 왕성한 기간 동안 주변 행성의 대기를 벗겨낼 정도로 강력한 복사 에너지를 뿜어낸다. 실제로 지구와 비슷한 암석형 행성으로 기대를 모았던 41광년 거리의 ‘트라피스트-1’(TRAPPIST-1) 행성계의 행성들은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기 흔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LHS 1140b’는 달랐다. 하버드대 연구진이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추론한 행성의 대기 진화 과정에 따르면, 가벼운 수소와 헬륨은 위로 떠올라 서서히 우주로 방출되고, 질소나 산소 같은 무거운 기체들은 행성의 중력에 강하게 붙잡혀 대기 하층에 쌓이는 경향이 있다.
연구진이 이 모델을 LHS 1140b에 적용한 결과, 이 천체는 대기와 물이나 얼음, 아니면 이 세가지가 혼합된 물질로 덮여 있을 가능성이 크며 가장 바깥쪽 대기는 헬륨으로 이뤄져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대기 온실효과로 액체 바다 존재할 수도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연구진은 2024년 칠레 라스캄파나스천문대에 있는 지름 6.5m 마젤란망원경에 새로 설치된 초고해상도 분광기로 행성 ‘LHS 1140b’가 중심별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려, 이때 흘러나오는 파장을 분석했다. 그 결과, 대기 중의 헬륨이 별빛을 흡수하면서 생기는 독특한 선이 뚜렷하게 관측됐다. 헬륨은 초당 수백톤씩 빠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반면 이 천체보다 중심별에 더 가까이 있는 행성 ‘LHS 1140c’가 통과할 때는 이 신호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2025년 관측에서는 ‘LHS 1140b’에서도 헬륨 방출이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는 대기 방출량에 변동성 있다는 걸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번 발견이 주목되는 이유는 ‘LHS 1140b’가 가진 독보적인 조건 때문이다. 이 행성은 지구보다는 밀도가 약간 높지만 동일한 질량의 순수한 암석형 행성보다는 살짝 낮다. 이는 행성 표면이 단단한 암석뿐 아니라 물이나 얼음, 그리고 이를 둘러싼 두터운 대기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가벼운 헬륨이 우주로 탈출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만큼, 그 아래층에는 지구와 유사하게 질소, 이산화탄소 같은 무거운 기체들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 기체들이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있다면 행성 표면에 액체 상태의 바다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와 크게 다른 점도 있다. 우선 공전주기가 25일이 채 안된다. 또 항상 같은 면을 별 쪽으로 향하고 있어 낮과 밤의 주기가 따로 없다.
연구진의 일원인 카네기천문대의 행성과학자 슈레야스 비사프라가다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지구와 같은 행성이 어떤 모습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며 “LHS 1140b에서 대기를 발견한 것은 지구와 진짜 비슷한 외계행성의 특성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발견은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구와 유사한 행성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매사추세츠공대(MIT) 사라 시거 교수(천체물리학)는 “하나가 있다면 외계 행성계에는 더 많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발견이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중심별의 자전 주기로 추산한 항성계의 나이와 헬륨의 유출 속도를 종합해 계산한 결과, 행성의 대기는 30억년 이상 유지돼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논문 정보
Helium escaping from the atmosphere of a nearby rocky exoplanet orbiting in a habitable zone.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