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상승 불가에 빗나간 대체 수단으로 삼는 것 아닌지
가정·학교·정부, 근본적인 대책 실천에 나서야 할 때
(서울=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 14일 서울 뚝섬한강공원에서 열린 청소년 도박문제 예방주간 기념행사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 최교진 교육부 장관, 최병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5.14 pdj6635@yna.co.kr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선임기자 = #1. 돈을 잃고 초조해진 또래에게 일주일에 50% 안팎의 이자율로 소액을 빌려준 뒤 점점 불어난 빚을 갚지 못하면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대신 갚을 것을 강요했다.
#2. 도박 빚 400만원을 갚아주지 않는다며 자신의 엄마를 폭행하고 목숨을 끊으려 한 15세 남학생이 자진신고를 통해 도박 중독 치유과정을 밟고 있다.
지금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어른들의 세계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 안팎이다. 예전 같으면 성인 카지노나 오프라인 도박장을 남몰래 찾아가야만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면 언제 어디서나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됐다.
도박을 시작하기 위해 마련해야 할 자금도 수십만원에서 만원대나 수천원으로 줄어 도박장으로 들어가는 문턱이 낮아졌다. 많은 청소년들이 익숙한 게임처럼 시작한 도박은 어느새 일상이 되고, 생각보다 빠르게 중독이라는 수렁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를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자주 찾는 청소년들이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의 '하루에 수백만원', '한방에 인생역전' 등 확인되지 않는 성공담을 비판 없이 받아들면서 도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울=연합뉴스) 대규모 범죄 단체를 조직해 해외에서 수 조원대의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총책이 정부 합동 수사로 검거돼 송환됐다. 범정부 합동 초국가범죄 특별 대응 태스크포스(TF)는 도박사이트 운영 총책급 사범 두 명을 아랍에미리트(UAE) 당국과 공조를 통해 검거했다. 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경찰들이 총책을 압송하고 있다. 2026.7.4 [연합뉴스TV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경찰청이 지난 5월 중순부터 청소년 사이버 도박 자진신고를 받고 있는데, 최근 한 달 새 도박 사실을 고백한 학생이 급증했다. 어른들이 잘 몰랐던 청소년 도박의 심각성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나마 잘못을 뉘우치는 신고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의 범죄에 대한 경계심이 낮은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청소년들이 접하는 도박 사이트 못지않게 주식이나 코인 등 도박장처럼 변해가고 있는 부모들의 '한탕주의 투자 문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주식·가상자산 시장의 과도한 단기 투기 문화 속에서 하루 종일 시세창을 들여다보며 희비를 표출하는 어른들, 빚을 내면서 커다란 수익을 좇는 빚투 열풍이 청소년들에게 '위험을 감수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메시지로 전달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어쩌면, 노력해도 계층 상승이 쉽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성공의 지름길로 여기며 빗나간 대체 수단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욱이 자기 통제력이 약해 성인보다 훨씬 빠르게 중독될 수 있는 청소년들을 유혹하는 도박 사이트는 계속 늘고 있다. 보안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메신저인 텔레그램이나 게이밍에 특화된 음성 채팅 프로그램인 디스코드 등을 통해 운영되는 경우도 많아 당국의 단속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스마트폰 본인 인증 단계에서 도박 사이트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기술 적용이나, 학교 교육과정에 도박 중독 예방교육을 의무화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성실하게 키우는 자산 형성의 가치를 중시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도 힘을 써야 한다.
청소년은 성인이 이끌어 가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미 발을 담근 행위를 단속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정과 학교, 정부가 함께 청소년 도박 예방과 근절을 위해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을 실천하는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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