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빅테크 메타(Meta)의 초대형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대규모 전력망 수주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전력의 미세한 흔들림도 허용하지 않는 만큼 돌발 정전을 막고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줄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인프라가 필수적인데, 전기차 캐즘(수요 정체)으로 활로를 모색하던 배터리 업계에 이같은 빅테크발 전력 인프라 투자가 새로운 돌파구로 부상한 모습이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글로벌 ESS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해 온 CATL, BYD 등 중국계 거대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의 규제 장벽으로 인해 사실상 배제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독무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정부가 올해 중국산 비전기차용 ESS 배터리 관세를 25%로 대폭 인상하면서 메타가 중국산 직수입을 고집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북미 현지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미국 정부의 세액공제(AMPC)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글로벌 수준의 배터리 셀 공급사는 사실상 국내 3사가 유일한 상황이다.
이는 완제품 형태의 팩 조립 라인만 갖추고 핵심 부품인 배터리 셀은 외부에서 조달해야 하는 북미 현지 기업들에게 한국산 셀이 필수 대안이 됐음을 의미하며, 그만큼 국내 업계의 수주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21일 산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메타는 지난 2일(현지시각) 캐나다 앨버타주 스터전 카운티에 건설될 그린라이트 일렉트리시티 센터(Greenlight Electricity Centre) 가스 복합화력 발전소의 건설 승인을 획득한 데 이어, 8일 이와 연계된 1GW 규모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부지 기공식을 개최하며 프로젝트의 첫 삽을 떴다.
총 130억 캐나다 달러(약 13조원) 규모에 달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전력 공급의 공백을 최소화하는 고안정성 전력 인프라 구축이 핵심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Bernstein Research)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AI 데이터센터 구축 비용 분석(The True Cost of AI: 1GW Data Center CapEx Analysis)’에 따르면, 1GW급 인프라 기준 ESS를 포함한 전력 안정화 및 비상 백업 배터리 설비 비용은 약 14억달러(약 1조9000억원) 수준이다.
이같은 시장 단가와 프로젝트 규모를 감안할 때, 업계에서는 이번 메타 프로젝트에서 국내외 배터리 업계가 확보할 수 있는 관련 인프라 발주 규모만 최소 수천억 원에서 최대 조 단위에 이를 것이란 추산이 나온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캐즘 장기화로 가동률 저하와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국내 배터리 3사에게 이번 사업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전기차에 편중됐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일부 유휴 공장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가 공세를 펼치던 중국 기업들이 규제로 묶이면서 국내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전용 전력망 시장을 선점하고 메타와의 장기 파트너십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존재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액공제(AMPC) 혜택을 받으면서, 대형 프로젝트 물량을 적기에 대량 공급할 수 있는 비(非)중국계 기업은 사실상 국내 배터리 3사뿐이라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국내 3사는 핵심 부품인 셀 생산부터 완제품 조립까지 전 과정을 통합 소화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
여기에 메타가 단일 공급처에 의존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배터리를 용도별, 구역별로 분할해 발주하는 멀티 소싱(Multi-sourcing) 기법을 선호한다는 점도 국내 업계의 수주 확률을 높이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메타와의 직접 계약 외에도 테슬라 등의 ESS 완제품(배터리 시스템)에 국내산 셀을 탑재해 납품하는 우회 공급망이 있어, 국내 3사는 각사의 전략에 맞춰 수주 채널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다.
이미 테슬라와 대규모 ESS용 셀 공급 계약을 체결한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에게 테슬라는 메타와의 까다로운 직접 협상 없이도 북미에서 막대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우회 통로다.
현재 테슬라 공급용 LFP 배터리 라인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미시간 기지에 직접 구축 중이다.
이에 따라 향후 테슬라가 메타 프로젝트를 수주하면 현지 라인을 가동 중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직접적인 낙수효과를, 별도의 공급 채널을 갖춘 삼성SDI 역시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테슬라 공급망과 별개로 움직이는 SK온의 경우 향후 이번 메타 프로젝트의 직접 발주가 가시화되면 보유 중인 북미 현지 인프라를 무기로 입찰 참여를 타진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메타의 이번 캐나다 데이터센터가 오는 2028~2029년 가동 예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관련 배터리 입찰은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 사이에 집중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빅테크 프로젝트 특성상 철저한 비밀유지계약(NDA)이 필수적인 만큼, 국내 배터리 3사 역시 철저한 보안 속에서 각자 물밑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국내 ESS업계 한 관계자는 “메타의 이번 사업은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AI 데이터센터 전용 전력망에서 ESS가 정전 없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본격적인 대규모 검증이 이뤄지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데이터센터 배터리 시장은 처음에 진입한 파트너가 후속 물량까지 독점하는 특성이 있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면 향후 확대될 대형 전력망 생태계에서 소외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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