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거제 야호~!"…그 '야호'가 아니었네

한국어+일본어 '한본어' 유행…특히 日젊은층 적극 활용

K-컬처 위상 높아지며 '빨리'·'진짜' 등 일상 대화에

"한일 관계가 수평적·대등한 단계임을 보여주는 현상"

한본어 "거제 야호" 사용하는 걸그룹 리센느 멤버 미나미
[유튜브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거제, 야호~!"

여기서 '야호~'는 산 정상에서 외치는 소리가 아니다. 일본인들이 가볍게 건네는 인사말(やっほ-)이다. "거제, 안녕~"이라는 뜻이다.

지난 3월 걸그룹 리센느의 원이(22)가 자신의 고향인 거제도에 일본인 멤버 미나미(19)와 놀러 가 찍은 유튜브 영상에 등장한 이 표현이 '한본어'에 새삼 주목하게 했다.

한본어란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휘나 문법을 섞어 쓰는 표현법을 뜻한다. "거제, 야호~!"가 화제가 되자 국내 SNS에서는 온갖 "○○, 야호~!"가 유행 중이다.

"○○, 야호~!"처럼 한국에서 인기인 일본식 표현도 있지만, 한본어는 그보다 주로 일본에서 인기인 한국식 표현을 지칭한다.

과거 우리말 속에 스며든 일본어가 일제강점기의 아픈 잔재였던 것과 달리, 지금은 K-컬처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일본인들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한본어가 세를 불리고 있다.

'대박인데'를 뜻하는 한본어 '야바인-데'라 쓴 SNS 게시물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cana_you_me' 게시물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한본어는 일본 소셜미디어(SNS)나 K팝 팬덤 문화 속에 활발히 등장한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순과 구조가 유사한 까닭에 일본 젊은 세대는 한국어 단어를 알 경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일본 K팝 팬들은 '사랑해'나 '오빠'는 물론이고, 팬이 직접 찍은 영상을 뜻하는 '직캠'(チッケム), 영상통화를 뜻하는 '영통'(ヨントン), K팝 그룹의 '막내'(マンネ)도 한국어 그대로 대화 속에 사용한다.

일본 최대 포털 사이트 야후재팬에는 "한국 아이돌에게 '사랑해'(サランヘ)라고 말하면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나요?"라는 고민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한국 아이돌이나 K팝 팬들이 쓰는 '한본어'를 나도 배우고 싶다"며 활용법을 묻는 게시물도 눈에 띈다.

'빨리', '진짜'도 많이 쓰인다.

'빨리 이쿠네(行くね)'는 '빨리 갈게', '빨리 다배테(食べて)'는 '빨리 먹어'라는 뜻이다.

'진짜'에 맞장구를 치는 일본어 '소레나'(それな·그니까, 내 말이)를 엮은 '진짜 소레나'(진짜 그래)도 인기다. 이는 일본 개그맨 하시모토 료가 K팝 팬 캐릭터 '료코짱'을 연기하며 퍼져나갔다.

'고마워/고마워요', '미안해/미안해요'에 일본어 강조 부사 '마지'(まじ·진짜로)를 붙여 '마지 고마워/고마워요', '마지 미안해/미안해요'라고도 흔히 말한다.

'최고'에 일본어의 강한 반문·감탄 표현인 '-카요'(かよ·~란 말인가)를 조립한 '최고카요'는 "최고인가요"라는 뜻이다.

'귀여워'나 '대박'에 일본어 형용사 어미 '이'(い)를 붙인 '귀요이', '대바이'도 있다. 반대로 일본어 감탄사 '야바이'(やばい·대박이다, 미쳤다)에 한국어 연결 어미 '-인데'를 붙인 '야바인-데'(대박인데!)는 그룹 르세라핌의 일본인 멤버 사쿠라가 사용해 화제를 모았다.

일본 포털 사이트 야후재팬에 올라온 게시물
[일본 야후재팬 사이트 이용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또 '다이스키'(大好き·정말 좋아해)에 '~입니다'를 붙여 '다이스키입니다'라고 하거나, 매운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쵸토(ちょっと·조금) 맵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SNS 댓글을 남길 때 쓰는 '초면나사이'도 있다. '초면'에 '실례합니다'·'미안합니다'라는 뜻의 일본어 '고멘나사이'(ごめんなさい)를 합친 말이다.

일본인들은 '괜찮아'(ケンチャナ)도 외친다.

지난해 2월 일본 청소년 전문 조사기관 시부야 트렌드 리서치가 고교생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한국어 '괜찮아'가 유행어 부문 공동 3위에 올랐고, 최근에는 일본 산토리 맥주 광고에서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의 일본인 멤버 아사가 한국어로 '괜찮아!'를 외쳤다.

앞서 2023년에는 일본의 한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개성 아카데미 한국어 학교'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일본인이 사용하는 한본어'를 소개했다.

음식을 앞에 두고 '맛있어 보인다'라고 할 때는 한국어 '맛있어'(マシッソ)에 일본어 추측형 어미 '~소-'(~そう·~해 보인다)를 더하고, "그것밖에 안 돼?"라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줄 때는 일본어 대명사 '소레'(それ·그것)와 한국어 조사 '밖에'(バケ)를 조립한다고 설명했다.

또 '잠시 기다려 주세요'는 '기다려' 앞뒤로 일본어 '쵸토'(ちょっと·조금)와 '구다사이'(ください·~해 주세요)를 붙여 '쵸토 기다려 구다사이'라 하고, '알았어'에 일본어 경어 어미 '데스'(です)를 붙여 '알았습니다'라는 의미로 활용한다고 했다.

걸그룹 베이비몬스터의 일본인 멤버 아사가 출연한 일본의 음료 광고
[일본 산토리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본어의 유행은 한일 간 인적 왕래와 교류가 크게 늘어난 결과이자, 양국 관계가 보다 수평적이고 대등한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이 사회·경제적으로 비슷한 환경에 놓이면서 젊은 세대는 상대국의 언어와 문화를 더 이상 낯선 '외국의 것'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며 "이전 세대보다 국경을 덜 의식한 채 서로의 문화를 일상적으로 소비하고 섞어 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본어'에 대해 소개하는 일본 웹사이트
[일본 '개성 아카데미 한국어 학교' 사이트 이용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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