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심판론-트럼프 색깔론, 미국 유권자 어느쪽 택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지난달 24일 워싱턴 의회의사당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회동한 뒤 언론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마이크 리 상원의원, 릭 스콧 상원의원, 존 바라소 상원의원, 존 튠 상원 원내대표. 워싱턴/AFP 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가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정권 심판을 넘어, 생활비와 의료비, 선거구 지도와 투표 규칙, 그리고 민주당 내부에서 강해진 민주사회주의자들의 도전이 한꺼번에 충돌하는 선거다.

현재 판세는 민주당에 유리하다. 11일 기준 리얼클리어폴링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48.4%, 공화당은 42.5%로 민주당이 5.9%포인트 앞선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는 지지가 40.5%, 불만이 56.9%다. 더구나 5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보다 4.2% 올라 2023년 봄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 중간선거는 대통령 소속 정당에게 무덤이라 일컬어지지만 올해는 물가 불만까지 겹쳐 있다.

민주당의 기본 전략은 ‘생활비의 고통’을 ‘트럼프에 대한 분노’로 바꾸는 데 있다. 추상적인 ‘민주주의 수호’보다 보험료, 병원비, 식료품값과 주거비의 고통을 전면에 내세우고, 공화당의 감세 법안이 메디케이드와 식료품 지원에 남긴 부담을 경합 지역의 화제로 만들려 한다. 공화당의 전략은 반대다. 선거의 구도를 트럼프의 ‘경제 성적표’가 아니라 국경·치안·문화 전쟁과 ‘사회주의로 기우는 민주당’에 대한 반대로 바꾸려 한다.

하원과 상원의 전망은 갈린다. 하원은 전국적 바람으로 몇 석만 움직여도 다수당이 바뀌는 구조라 민주당 우세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반면 상원에서 민주당은 현직을 사수하고 4석이 더 필요하다. 조지아, 미시건, 뉴햄프셔를 지켜야 하고 메인,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알래스카 네 곳의 접전지를 다 이겨야 한다. 공화당은 그중 한 곳만 지켜도 부통령의 캐스팅보트를 포함해 상원 통제권을 유지할 수 있다. 전국적 바람은 민주당을 향해 불지만, 상원은 공화당의 방파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불리한 정세 속에서도 무조건 선거를 이기려는 트럼프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략들이다. 트럼프가 선거를 위해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것은 정책의 가시화다. 백악관은 팁과 초과근무수당, 미국산 자동차 대출이자에 대한 한시적 소득공제와 고령자 추가공제를 ‘근로가정 감세’로 홍보하고 있다. 이달부터 아동 명의로 납입할 수 있게 된 ‘트럼프 계좌’도 같은 맥락이다. 혜택은 선거 전에 체감시키고, 메디케이드 같은 더 큰 제도 변화는 대부분 선거 뒤에 시행되는 일정으로 정치적 부담을 낮췄다.

문제는 감세 메시지를 물가가 삼키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와 휘발유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고, 관세가 수입품 가격과 기업 비용을 높인다는 비판도 계속된다. 트럼프는 월마트를 비롯한 대기업에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자신이 가격을 낮췄다고 주장한다. 직접 개입형 포퓰리즘에 가깝다. 공화당의 승패는 유권자가 감세액을 먼저 보느냐, 아니면 생활비와 주유소의 가격표를 먼저 보느냐에 달렸다.

두 번째 조치는 선거구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트럼프는 텍사스 등 공화당 주정부에 중간선거 전 선거구획 조정을 압박했고, 민주당 주들도 맞대응에 나섰다. 올해 연방하원 지역구 지도를 새로 그린 10개 주는 하원 의석의 약 40%를 차지한다.

하지만 버지니아대 선거분석팀은 공화당이 선거구 재조정을 통해 최대 10석가량의 구조적 이점을 얻더라도, 민주당이 전국 의회투표 의향에서 약 6%포인트 앞선다면 이를 상쇄하고 하원 의석을 20석 이상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거구 재조정만으로 전국적인 민주당 우세 흐름을 뒤집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세 번째는 투표 규칙과 선거 행정을 공화당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움직임이다. 트럼프는 유권자 등록 때 시민권을 증명해야 하고, 투표 때 사진 부착 신분증을 의무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우편투표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세이브 아메리카 법(Save America Act)’ 통과를 압박하고 있다. 행정명령과 법무부를 통해 주정부의 유권자 명부를 검증하고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의 집계를 막으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요하게 취하고 있는 이 조치들에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가 있다. 11월 중간선거의 질문을 ‘트럼프 집권 2년 동안 살림살이가 나아졌는가’가 아닌, ‘누가 국경과 선거, 전통적 미국을 지킬 것인가’로 바꾸는 것이다. 감세는 성과를 만들고, 선거구 재조정은 패배의 폭을 줄이며, 투표 규칙 논쟁은 지지층의 위기감을 높인다. 여기에 이민 단속과 법질서, 그리고 민주당을 공산주의와 연결하려는 ‘반공의 언어’가 결합한다. 트럼프는 정책 홍보와 규칙 바꾸기, 적대적 동원을 뒤섞은 대단히 노골적인 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미 백악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의 선거 전략에 뜻밖의 ‘연료’를 공급한 것이 최근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약진이다. 콜로라도 제1선거구에서 멜라트 키로스가 15선 현역 다이애나 디게트를 꺾었고, 뉴욕에서는 브래드 랜더, 다리알리사 아빌라 셰발리에, 클레어 발데즈 등 진보 후보들이 현역 또는 당 주류 후보를 눌렀다. 이들의 공통된 언어는 ‘모든 이들에게 메디케어를’, ‘주거비와 생활비를 낮추라’, ‘기업 돈을 거부한다’, 그리고 ‘세대 교체’다.

이들의 승리가 말하는 핵심 메시지는 ‘미국 전체가 사회주의로 전환했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 승리가 확실한 ‘안전한’ 지역구의 유권자들이 무기력한 기성정치보다 싸우는 후보를 선택했다는 데 있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에 자산인 동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젊은 활동가와 소액 후원자를 끌어들이고, 의료비와 임대료 같은 생활비 문제를 미룰 수 없는 정치적 과제로 부각한다. 중도파가 말하는 ‘점진적 개선’보다 유권자의 불만을 정확하게 읽고 그 온도를 끌어올렸다.

공화당은 민주사회주의자가 민주당 전체를 좌우하는 것처럼 강조하려 한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하는 미국인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8%에 그쳤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전략이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이민단속국 폐지, 경찰·교도소 개혁, 이스라엘 지원 중단, 대규모 정부 지출 같은 의제는 보수적인 교외 지역과 경합주에서 공화당이 공격하기 좋은 소재다. 미국 독립 250주년 기념연설에서 트럼프가 “이번 중간선거는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미국을 구하는 선거”라고 연설한 것은 민주사회주의자들이 약진하는 민주당을 공산주의로 몰아붙이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모든 진보 후보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일수록 과도하다는 반작용이 강해지고, 선거의 초점이 다시 물가와 의료비로 돌아갈 수도 있다. 민주당의 과제는 승리가 비교적 확실한 지역에서는 변화의 에너지를 살리고, 경합지역에서는 후보가 지역 유권자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독립적인 브랜드를 갖게 하는 것이다. 또한, 트럼프의 ‘반 공산주의’ 공세가 유권자들의 경제에 대한 불만을 가리지 않도록 실제 생활비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설득력 있는 전망은 ‘하원 민주당 우세, 상원 공화당 우세’다. 하지만 승부를 가를 더 큰 질문은 의석 수보다 선거의 성격이다. 중간선거가 트럼프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이 되면 민주당의 파도가 커진다. 반대로 국경, 사회주의, 선거 신뢰를 둘러싼 정체성 대결이 되면 공화당은 손실을 줄이고 상원을 지킬 가능성이 높다.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약진은 민주당이 어떤 언어로 유권자들의 경제적 분노를 조직할지를 보여준다. 트럼프는 이에 맞서 그 분노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이번 중간선거는 정치 생명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가르는 선거다. 상원을 수성해도 하원을 잃으면 내년 의회 회기가 시작되자마자 레임덕 상황을 맞게 된다.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하원은 지난 2년간 트럼프 권력의 불법과 부패 혐의에 대한 청문회를 이어갈 것이고, 미국 사회와 언론이 여기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 트럼프는 ‘지는 선거라면 아예 선거를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정선거이기 때문이다’라는 발언을 자주 한다고 한다. 트럼프는 지지층을 결집하고 확대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의 성과를 홍보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대규모 집회를 9월 9~10일 텍사스의 댈러스에서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공화당위원회(RNC)는 대통령 선거가 없는 해에도 특별전당대회를 열 수 있도록 당규를 급하게 바꿨다. 전국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불러모아 트럼프 중심의 초대형 정치집회를 열겠다는 것이다. 이 전당대회는 트럼프가 출마하지 않는 선거에 사실상 트럼프를 출마시키는 행사다. 투표용지에 트럼프란 이름이 없는 선거엔 마가의 절반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구호는 ‘마가들이 일어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미국을 구하자’이다. 수만 명의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이 때마침 9.11테러 25주년을 앞두고 ‘적으로부터 공격받는’ 미국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최고조의 흥분에 도달할 것이다. 선거 때마다 마가의 흥분은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겼다. 트럼프는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그 비장의 무기를 또다시 꺼내, 미국을 더욱 위험하게 갈라놓으려 하고 있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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