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약기금도 대상 한정적…전문가 "탕감 대상 늘리고 선제적 정리 장치 강화해야"

장기연체 채무자를 구제할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다. 개인회생과 개인파산·면책,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채무조정 등이다. 그런데도 상환 능력을 잃은 채무자가 빚을 장기간 짊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채무자가 직접 구제를 요청해야 하는 신청주의와 복잡한 절차가 경제활동 복귀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존 제도는 채무자가 스스로 신청해야 절차가 시작된다. 소득·재산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법원이나 신복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장기연체자 중에는 경제활동이 중단됐거나 고령·질병 등으로 절차를 밟을 여력이 없는 경우도 많다.
신청주의의 한계는 금융회사 자체 채무조정에서도 나타난다. 2024년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으로 3000만원 미만 연체채권의 채무자는 금융회사에 직접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5월 발간한 '포용적 금융 실현을 위한 정책서민금융 및 채무조정제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전체 개인 연체채권 319만2926건 중 요청은 18만9109건으로 요청률이 5.92%에 그쳤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6.90%로 가장 높았고 대부업권은 0.72%에 불과했다.
제도에 진입해도 빚을 정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같은 보고서에 따르면 신복위 개인워크아웃 평균 상환기간은 2018년 78.8개월에서 2025년 90.4개월로 늘었다. 신속채무조정과 사전채무조정은 각각 115개월, 116.2개월에 달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원금 감면율이 정체된 가운데 상환기간이 길어져 취약채무자의 신속한 신용회복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계 관계자는 "채무자가 직접 신청해야만 구제가 시작되는 구조에서는 정보와 대응 능력이 부족한 취약층이 오히려 제도 밖에 남게 된다"며 "연체 초기 금융회사의 의무 안내와 신복위 자동 연계를 강화하고, 조정 이후에는 소득·부양 여건을 반영해 원금 감면과 상환기간을 함께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청주의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새도약기금을 도입했다. 채무자의 신청 없이 금융회사가 보유한 장기연체채권을 기금이 매입해, 상환능력을 심사한 뒤 소각하거나 채무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현재 새도약기금 매각 대상은 7년 이상 연체하고 원금 5000만원 이하인 무담보채권으로 한정된다. 이 요건에 들지 않는 장기연체자는 여전히 신청주의 제도에 기댈 수밖에 없다. 상반기 업무보고에 따르면 누적 매입 규모는 10조4000억원(88만5000명)이며, 이 중 26만9000명(2조2583억원)의 채권이 소각됐다. 나머지는 8월 신용정보법 개정 시행 이후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4분기 중 추가로 소각될 예정이다.
문제는 매입·소각 이후다. 탕감 자체보다 채무자가 실제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복귀했는지가 정책의 성패를 가른다. 재연체율과 재취업률, 소득 회복, 정상 금융권 복귀 여부를 함께 추적해야 하는 이유다. 한 서민금융 전문가는 "법적 면책 범위를 단기간에 확대하기 어렵다면 금융회사가 자발적인 채무조정을 넓히고, 채무자가 제도를 신청하지 못하더라도 상환불능 채권을 선제적으로 정리하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