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신복위 채무조정 땐 강제집행 불가⋯금융권 채권 회수 룰 바뀐다 [빚 탕감의 경제학]

대법원 “신용회복위 채무조정 약정, 법적 효력 있는 합의”
확정 판결 있어도 약정 이행 중이라면 압류·경매 제한
채권회수 실무 변화 불가피⋯성실상환자 형평 논란 숙제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절차를 밟고 있는 채무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대폭 강화된다. 대법원이 채무조정 약정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기존 확정판결이 있더라도 채권자가 강제집행에 나설 수 없다고 처음으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장기 연체채권 정리와 채권관리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그동안 소송과 강제집행을 남발해 온 금융회사들의 기존 채권 회수 관행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20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지난달 24일 A씨가 서울신용보증재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재단이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에서 2023년 11월 승소 판결을 확정받으면서 불거졌다. A씨는 이듬해 8월 신복위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재단은 신복위 협약에 따라 전체 채무 1억5000만원 가운데 약 3400만원을 매달 35만원씩 96개월에 걸쳐 분할 상환하는 채무조정안에 동의했다.

A씨는 약정대로 채무를 성실히 상환해왔다. 그러나 재단은 기존 확정판결을 근거로 강제집행 절차에 나섰다. 이에 A씨는 “채무조정 약정이 유효하게 유지되는 동안에는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확정판결의 집행력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신복위 협약에 따른 채무조정 약정의 효력이 유지되는 이상, 재단은 채무조정 신청 통보를 받은 시점부터 강제집행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과 같다고 판시했다.

신복위 채무조정은 금융회사와 채무자가 상환기간 연장, 이자율 인하, 채무 감면 등에 합의하는 제도다. 대법원은 협약상 강제집행 제한 규정 역시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법적 효력을 갖는 합의로 해석했다. 채권자가 확정판결을 확보했더라도 채무자가 약정을 성실히 이행하는 동안에는 압류나 경매 등 강제집행에 나설 수 없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2022년에도 채무조정 신청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부제소 합의’ 법리를 인정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해당 법리를 확장해 확정판결을 받아둔 채권자의 강제집행 권한까지 최초로 제한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장기 연체채권 정리 정책과 맞물려 파급력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달 중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20년 이상 장기연체채권은 일괄 소각할 것"이라며 "상환능력이 없는 차주는 5년간 시효가 완성되면 채무를 종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과 제도 개편이 맞물리면서 채무조정 채권을 일반 연체채권처럼 취급해 소송과 강제집행을 남발하던 기존 실무도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신복위 협약에 가입한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보증기관들은 앞으로 채권 추심에 앞서 채무조정 약정의 존속 및 이행 상태를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신복위 관계자는 "협약 가입 채권 금융회사가 채무조정 이행 중인 채무자에 대해 불필요하거나 부당한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되지 않도록 이번 대법원 판결의 주요 내용과 취지를 공유하며 협약 준수를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역시 장기연체채권 정리와 채무자의 재기 지원에 힘을 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빚을 졌는데 장기간 갚을 능력이 없으면 파산·면책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도 이날 온라인 정책홍보 프로그램에 출연해 “20년간 이어진 제도의 공백을 메우고 문턱을 낮춰 금융시스템을 선진화하는 작업”이라며 “소수를 외면해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는 것이 더 큰 사회적 비용”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치권과 시장 일각에서는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채무 감면 확대의 경제적 효과와 사회적 수용성 확보는 향후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권 부위원장은 "일부의 악의적인 행태 때문에 나머지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숨겨놓은 재산이 발각되면 채무조정 자체를 취소하는 등 제도를 악용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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