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식 | 작가
‘언젠가 야구가 사라진다면 보복구 때문일 것’이라는 말이 있다. 타자의 머리나 몸을 향해 고의로 던지는 보복구는 스포츠에서 가장 위험한 행위다. 시속 150㎞를 넘나드는 공에 투수의 분노가 실리면, 뼈를 부수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런 보복구가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보복구의 명분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에 대한 응징인데, 상대를 자극하거나 조롱하는 행동의 위험이 극대화되는 곳이 야구장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승패를 극적으로 가르는 스포츠다. 마지막 공 하나로 나뉘는 짜릿한 승리의 쾌감과 패배의 비참함이 밥만 먹고 잠만 자며 던지고 휘두르는 근육을 키운 수십 명에게 집단으로 공유되고 부딪친다. 그래서 승리에 도취한 누군가가 패자를 조롱하고 그것이 패자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순간 야구장은 곧장 전쟁터가 될 수 있다. 야구장에서는 누구나 공과 방망이를 쥐고 있고, 그것은 오래 전 전쟁에서 무기로 쓰이던 것들이다.
그래서 야구에는 규정집에 없는 불문율이 많다. 큰 점수 차에서 도루나 번트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거나 홈런을 친 뒤 지나치게 자축하지 말라는 것이 대표적이며, 그런 불문율을 어길 때 종종 보복구가 날아든다. 정확히 어디까지가 큰 점수 차고 어떤 것부터가 지나친 행동인지는 늘 논쟁되지만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는 공감 속에서 보복구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경기 중에 앞서던 배재고 선수들이 광주일고 선수들을 조롱하며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외쳤다. 상대를 조롱함으로써 주체하기 어려운 승리의 기쁨을 드러냈고, 그러기 위해 상대가 당했던 역사적 아픔을 끄집어냈다. 학교 야구팀이, 81년째 치러지는 국내 최고 권위의 학생대회 본선에서. 응원석도 아닌 더그아웃에서 말이다.
광주 이야기는 따로 하기로 하고, 우선 야구와 교육 이야기를 해보자. 야구가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승리의 희열을 누리기 전에 거기에 묻어있는 오만한 감정을 이겨내는 법이다. 그것을 배워야 때로는 패배의 좌절감도 이겨가며 늘 이길 수만은 없는 자신의 한계와 기나긴 싸움을 이어갈 수 있고 상대에게도 배우며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래야 흔히 그런 우여곡절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가는 자산으로 삼을 수 있고, 당장은 패자의 분노를 피해 안전하게 경기장을 떠날 수도 있다. 그런데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그것을 배우지 못한 채 야구장에 나왔다. 그들이 우선 고마워해야 할 대상이 보복구를 던지거나 배트를 휘두르지 않은 성숙한 광주일고 야구부 선수들이라는 점을 우선 짚어두자.
선수들이 배우지 못했다면 제대로 가르칠 방법을 생각해야겠지만, 그 전에 그것이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한 이유부터 짚어봐야 한다. 지도자는, 선생들은, 그리고 심판과 협회 임원과 학부모 등등 그 일탈의 현장에 있던 모든 어른들. 그들은 힘껏 가르쳤음에도 실패했을까, 가르쳐야 할 줄은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을까, 아니면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조차 몰랐을까. 이토록 한심하고 참담한 것은 마지막의 경우가 아니라고 봐줄 길이 없어서다.
성인의 문턱에 이르도록 그 기본조차 배우지 못한 선수들에게 충분한 나머지 공부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더 급한 것은,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어른만이 가르치는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하는 일이다. 배재고든, 다른 어느 곳이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