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가 쓴 연극…수학으로 시·문학·인생을 탐구하다

연극 ‘113’ 장면. 리멘워커 제공

수학과 예술의 연결을 시도하고, 수학으로 예술을 해석하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3~12일 공연하는 ‘113’이다. 113, 간첩신고 전화번호로 기억할 이들이 더 많겠지만, 수학에선 1과 자신만으로 나뉘는 소수다. 각 숫자를 이리저리 뒤집은 311, 131도 마찬가지다. 앞뒤를 바꿔도 그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극 중에서 “어느 방향으로 뒤집어도 성질이 변하지 않는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순원)은 세상만사를 수학으로 설명하는 수학자(서혁)와 등반하던 중 그런 시 ‘113’을 쓴다. 그러나 산장에 도착해 시가 적힌 노트를 분실한 걸 안 시인은 “기억으로 쓴 시와 직접 쓴 시는 다르고, 쓴 순간의 온도가 있다”며 시를 찾기 위해 눈보라를 헤치고 나아간다. “기억을 더듬어 다시 쓰면 되지, 그게 목숨을 걸 만한 일인지” 물으며 말리지도, 함께 찾으러 가지도 못한 수학자는 시인의 주검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사라진 시 ‘113’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게 핵심 줄거리다.

연극 ‘113’에 출연한 최재경(오른쪽). 리멘워커 제공

‘113’은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제8대 고등과학원장을 지낸 최재경이 쓴 첫 희곡 작품이다. 그는 직접 무대에 올라 연극을 열고 끝을 맺는다. “황순원 소설을 모두 읽었다. (…) 천재였다. (…) 나는 수학자가 되었다.” 고교 시절 문학을 좋아했던 최재경이 소설가가 아닌 수학자가 된 사연으로 시작하지만, 작품은 심오하고 다소 난해하게 전개된다. 핵심 무대는 구름 카페다. 그곳에선 재능 없는 시인도 명작을 쓰고, 수학자는 골머리 앓던 난해한 문제도 풀어낸다. 그런데 건물 밖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쓴 시, 증명한 공식은 백지로 변한다.

구름 카페라는 환상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험한 도넛’을 만들려는 여인, 부모의 강요로 법대에 갔지만 자퇴하고 화가의 길을 걷는 미대생, 모든 걸 수학으로 해석하는 수학자, 모든 수에 시를 담으려는 시인, 짝사랑한 여인에 대한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진가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얽히고설키며 시, 문학, 예술, 인생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묻는다.

연극 ‘113’ 장면. 리멘워커 제공

작품은 수학을 활용한 철학적 판타지에 가깝다. 최재경은 위상수학의 ‘연결합’ 개념을 적용해 이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만나고 엮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도넛 구멍을 통해 매듭을 만들고 그 끝과 끝을 이어 3차원 공간으로 이어붙여 구름 카페를 만드는 식이다. 또 황진이의 ‘동짓날’, 이상의 ‘날개’, 황순원의 ‘링반데룽’ 같은 문학 작품을 소환하고, 수학적 개념으로 작품을 설명한다.

최재경은 “한국 사회에서 수학은 공포의 대상이다. 수학을 평가의 대상으로만 삼아 ‘수포자’라는 말까지 생겼다. 수학을 평가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도구, 특히 문학을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수학자는 내 시도를 억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어내어 님 오신 날 밤 구비구비 펴리라’고 한 황진이의 시는 수학적 개념으로 보면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황순원의 ‘링반데룽’ 속 주인공의 헛도는 연애 얘기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113’ 희곡을 쓴 최재경(오른쪽) 전 고등과학원장과 김제민 연출가. 리멘워커 제공

정답을 찾아야 하는 수학으로 정답이 없는 예술 작품을 빚어낸 최재경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할 듯하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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