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메네이 유해 시아파 성지 ‘곰’으로 이동…신정체제 정통성 강조

7일(현지시각) 이란 곰(Qom) 잠카란 모스크에서 열린 이란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추모 기도회에 조문객들이 참석해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숨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장례식 나흘째인 7일(현지시각) 그의 유해가 시아파 종교 교육의 성지 ‘곰’(Qom)에 도착해 조문 기도회가 열렸다.

이날 이란 국영방송(IRIB) 등 보도를 보면, 장례식이 열리는 잠카란 모스크를 중심으로 전날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지난 사흘간 수도 테헤란에서 장례식을 진행한 뒤 하메네이와 함께 폭사한 그의 가족 4명의 유해가 곰으로 운구됐다. 곰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은 순교자의 피와 복수를 상징하는 이맘 후세인의 붉은 깃발과 이란 국기를 들고 “미국에 죽음을!”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테헤란에서 120㎞ 떨어진 곰은 이슬람교 시아파 최대 분파인 열두(12)이맘파의 대표 성지중 하나다. 8대 이맘 레자의 여동생 파티마의 영묘가 있는 곳으로 이란 내에선 마슈하드 다음으로 중요한 성지로 여겨진다.

곰에는 이란 초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를 비롯한 성직자들이 공부한 대규모 신학교가 밀집해 있다. 이곳에서 종교 율법에 대한 유권해석 권한을 가진 최고위 성직자(아야톨라)가 배출된다. 알리 하메네이도 1958년 곰에서 수학하며 호메이니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아들이자 현 최고지도자 모즈타바도 곰 신학교에서 시아파 신학을 가르쳤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곰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이란 군주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의 본거지였다. 팔레비 군주제에 대한 1960년대 반정부 운동의 시작도 곰에서 교육받은 시아파 고위 성직자들이었다. 1962년 알리 하메네이는 곰에서 공부하면서 당시 친미·반이슬람 정책에 반대하는 호메이니 혁명 운동에 합류한 바 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군주제가 무너진 뒤에는 곰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성직자들이 이란의 지배 엘리트로 군림했다.

팔레비 왕조 군주제에 맞선 핵심 세력이 시아파 성직자들과 종교 네트워크였던 탓에 곰은 신정체제 이란의 핵심 이데올로기 거점이자, 종교 권력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알리 하메네이는 최고지도자 재임 동안 곰의 주요 신학교와 종교 재단을 장악해 성직자층의 재정·조직 운영과 종교 교육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런 식으로 종교 권력의 심장부인 곰을 이란 최고지도자에 더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하메네이 유해가 곰에서 시민들의 조문을 받은 배경에는 그간의 이란 신정체제 정통성을 강조하고 전쟁으로 하메네이가 사망했음에도 여전히 체제는 굳건하다는 메시지를 통해 이란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슬람 공화국은 이번 하메네이 장례식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힘과 단결력을 과시하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하메네이 유해는 7일 밤 이라크 나자프로 이동해 8일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카르발라에서 장례 행사를 치른 뒤 하메네이 고향인 마슈하드의 이맘 레자 영묘로 옮겨져 9일 안장될 예정이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조회 20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