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석 작은 극장의 돌풍…성수동 무비랜드는 어떻게 ‘영화 놀이터’가 됐나

레트로한 느낌의 무비랜드 간판. 무비랜드 제공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 성수동 한복판 연무장길, 30석짜리 작은 극장이 관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2024년 2월 문을 연 무비랜드다. 멀티플렉스도, 독립예술영화관도 아니다. 매달 한명의 큐레이터가 영화를 고르고, 관객은 영화를 본 뒤 감상평을 적어 남기고 작은 굿즈를 챙긴다. 어찌 보면 취향을 나누는 놀이터에 가깝다.

공동 극장주는 모춘과 소호 부부다. 두 사람은 대형 아이티(IT) 기업에서 일하다 퇴사한 뒤 크리에이티브 전문 브랜드 모베러웍스를 창업했다. 팝업과 굿즈, 기업 협업 상품 개발 등으로 주목받던 이들이 느닷없이 극장 사업에 도전했다. 극장 설립과 운영 과정을 담은 책 ‘무비랜드 메이킹북: 매일의 일을 만드는 여정’도 지난 5월 냈다.

서울 성수동 무비랜드 공동 극장주 소호(왼쪽)와 모춘. 무비랜드 제공

“극장주라는 말을 써보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뛰어든 것 같아요.” 지난 24일 무비랜드에서 만난 소호가 웃으며 말했다. 명함에 ‘극장주’라는 직함이 선명했다. 모춘은 “모베러웍스를 하면서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느낌이 왔다”고 도전의 계기를 설명했다. 모베러웍스가 유머와 메시지를 기발한 아이디어로 풀어냈다면, 무비랜드는 이들의 이야기 자체를 오래 굴릴 새 판이었다. “우리도, 보는 사람도 재밌는 이야기를 계속할 방법을 찾다 나온 아이디어가 극장이었죠.”

인기의 핵심은 큐레이션 시스템이다. 매달 다른 큐레이터가 자신의 기준으로 ‘인생 영화’를 고른다. 코미디언 크루 빠더너스(문상훈∙김진혁), 배우 박정민∙이제훈, 가수 자이언티,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 등 다양한 인물이 큐레이터를 거쳐갔다. 큐레이터가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본 뒤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GV) 행사는 대부분 매진된다. 모춘은 “우리 이야기만 계속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봤다”며 “큐레이터들의 이야기가 곧 무비랜드의 세계가 된다”고 했다.

지난 20일 서울 성수동 무비랜드에서 공동 극장주 모춘(왼쪽) 사회로 열린 코미디언 크루 ‘빠더너스’의 문상훈(가운데)과 김진혁의 관객과의 대화(GV) 행사. 무비랜드 제공

지난 5월 무비랜드에서 열린 민희진 오케이레코즈 대표(오른쪽)의 관객과의 대화(GV) 행사. 무비랜드 제공

30석은 약점이자 전략이다. 화면은 작고, 편의시설도 멀티플렉스와는 거리가 있다. 대신 상영작과 연결된 티셔츠, 모자, 문제집 같은 굿즈 등 부가 콘텐츠를 만들어 관객 참여도와 충성도를 높였다. 모춘은 “친구와 맥주 한잔 하며 ‘그 장면 좋지 않았냐’고 말하는 것까지 영화 감상이라고 생각했다”며 “기본 조건에서 부족한 부분을 그런 장치들로 채우려 했다”고 말했다. 소호는 이를 “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극장을 여는 일보다 어려운 건 계속 유지하는 일이다. 개관 전 운영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한번 보고 다시 보지 않게 됐다”고 한다. 영사기가 갑자기 꺼지고, 옆 건물에 작은 불이 나고, 화장실 문고리가 고장나는 등 끊임없는 사고의 연속이었다. 손님을 대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소호는 “작은 공간 하나를 운영하기 위해 정말 많은 규칙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고 털어놨다.

무비랜드 입구. 무비랜드 제공

무비랜드의 매점. 무비랜드 제공

무비랜드는 다양한 굿즈도 판매한다. 무비랜드 제공

소호가 글을 쓰고 모춘이 디자인한 책 ‘무비랜드 메이킹북’은 그런 시행착오를 감추지 않은 기록이다. 처음에는 개관 준비 과정만 담으려 했지만 준비 2년, 운영 2년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갔다. 결심부터 부지 선정, 대출, 인력 운용까지 좌충우돌 극장 설립기가 깨알같이 담겼다. 소호는 “주변에서 다들 망할 거라고 했다. 그래도 큰돈과 시간을 들여 했으니 정리해두고 싶었다”고 했다.

무비랜드 창업기를 담은 ‘무비랜드 메이킹북’. 무비랜드 제공

관객들은 이들을 버티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무비랜드에 오며 영화 관람이라는 새 취미가 생겼다는 관객, 명절에 떡을 사다 주는 단골, 직접 만든 술을 건네는 관객…. 큐레이터에 따라 관객층도 달라진다. 음악인이 큐레이터일 땐 음악 팬이, 디자이너가 큐레이터일 땐 디자인 종사자들이 찾아온다.

물론 극장은 낭만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둘은 가장 큰 숙제로 “자생력”을 꼽았다.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만들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은 즐겁지만, 극장이 오래가려면 돈도 돌아야 한다. 소호는 “버티고 있다”고 했고, 모춘은 “건강하게 (극장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 고문도 있다”고 했다.

무비랜드 좌석. 무비랜드 제공

누군가 “나도 영화관을 해볼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까. 부부는 잠시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뜯어말리고 싶죠. 그래도 하겠다면, 정말 많이 고민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고백에서 오히려 무비랜드의 지속 가능성이 엿보였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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