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경의 에이징북
“인간이 영어로 뭐야? 휴먼(Human) 뒤에 하나 더 붙잖아. 빙(Being). 휴먼 두잉(Doing) 아니고 휴먼 빙. 그냥 존재하라고, 가만히. 내가 뭘 했네 어쨌네, 정신없이 오락가락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두잉’ 하지 말고, ‘빙’. 그냥 가만히.”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에서 황진만(박해준)이 드디어 영화 만든다고 들뜬 동생 동만(구교환)에게 실시한 ‘밥상머리 교육’의 내용이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에스엔에스(SNS)에서 화제가 됐던 대사다.
“두잉하지 말고 빙” 하라니. 뭘 하려 들지 말고 그저 존재하라니. 에스엔에스에선 감동했다는 소감이 넘실댔으나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사람을 존재 그 자체로 대하지 못하고 역할, 성과, 지위처럼 업적으로 평가하는 사회에 대한 촌철살인이라면 그럴싸하다. 생산성을 발휘해 결과를 내야만 하고 그렇지 못하면 탈락하는 무한 경쟁 사회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 태도가 얼마나 만연한지는 중년을 넘어 프리랜서가 되거나 은퇴를 하면 더 실감하게 된다. 소속과 역할이 사라져도 자기 나름의 일로 분주한 사람에게 주변에서는 “놀아서 좋겠다” “그만 놀고 일해야지” 같은 말들로 신경을 긁어댄다.
역할과 성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의 공기는 은연중 사람이 자기 자신을 대할 때도 스며든다. 압박감에 쫓기고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면 “두잉 하지 말고 빙 하라”는 말, 즉 ‘하기’ 대신 ‘있기’를 선택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모자무싸’에서 고분고분할 리 없는 동생 동만은 “가만히 있어 보지, 그럼!” 하면서 밥을 먹다 말고 나가버린다. 내가 동만이어도 그랬을 것 같다.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일본 임상 심리학자 도하타 가이토가 쓴 책 ‘있기 힘든 사람들’을 읽으면서도 절감했던 바다. 저자의 첫 직장은 만성 조현병 등 다양한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오는 주간 돌봄 시설이었는데, 저자는 임상심리사로서 치료를 하러 왔지만 무슨 맹렬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라서 ‘그저 있을 뿐’이었다. 그냥 ‘있기’가 힘들어 저자는 몇달간 몸부림을 쳤다. 취업 규칙에 괜히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할 일을 찾아 몸부림치다 결국 나무 책상 상판의 나이테가 몇줄인지 헤아려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대목에선 웃음이 터졌다. 낯선 조직에 들어갔을 때 할 일이 변변치 않으면 ‘있기’가 면구스러웠던 경험은 모든 신참자에게 있을 것이다.

저자가 ‘있기’를 탐구하게 된 두드러진 계기는 조현병으로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뒤 사회 복귀를 위해 시설에 온 준코씨와의 사연이다. 하루빨리 재활에 성공하고 싶었던 준코씨는 매일 바쁘게 움직이며 할 일을 만들다가, 뭐라도 할 게 필요했던 초보 상담사인 저자와 만난다. 그러나 상담 후 준코씨의 상태는 악화됐다. 그에게 필요한 건 치료가 아니라 돌봄이었다. 저자는 상담 흉내를 낼 게 아니라 둘이서 함께 지루하게 있어야 했다고 자책한다. 마음을 파헤치는 ‘하기’ 대신 마음 주변을 단단히 다져 안정시키는 ‘있기’가 필요했다고 깨닫는다.
그런 ‘있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사람이 무방비한 상태로 전혀 무리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으려면, 무언가에 내 몸을 전부 맡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기가 엄마의 돌봄을 받을 때처럼 누군가에게 온전히 의존할 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며 ‘있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놀이에 몰입할 때도 마찬가지다. 긴장해서 잔뜩 굳어 있다가도 다른 사람과의 놀이에 휘말리면 어느새 몸이 풀리고 즐기게 될 수 있지 않던가.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몸을 맡겨야 비로소 놀 수 있다. 놀이터에서 모래를 파며 노는 아이들도 뒤돌아봤을 때 자신을 바라봐주는 보호자가 있어야 마음 놓고 논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있기’가 가능해진다는 신선한 주장을 읽다가 이는 저자가 설명한 정신장애인이나 아이뿐 아니라 노인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성별이나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일과 관계의 반경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있기’가 과제로 떠오르는 시기가 노년이다.
많은 노인이 끊임없이 뭔가를 하면서 하루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하기’가 없으면 ‘있기’가 괴로우니까. 기쁨을 주는 행동과 재미있는 놀이와 같은 ‘하기’는 ‘있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만약 옆에 아무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 ‘있기’가 가능할까? 아무리 ‘하기’로 시간을 채운들 불안에 시달리고 고립으로 이어져 ‘있기’에 균열이 생길 것이다. 누군가가 옆에 있음으로써, 서로 의존함으로써 ‘있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깨닫지 못할 뿐 늘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있다. ‘있기’의 가치를 설파한 ‘모자무싸’의 황진만도, 형이 왜 잠을 못 자는지 걱정하고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집을 비워도 친구들에게 형을 들여다봐달라고 부탁하는 동생 동만이 없었더라면, ‘있기’가 불가능했다.
영어 ‘휴먼 빙’보다 한자로 풀어야 인간(人間)은 본뜻이 드러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가 의존과 돌봄, 시시한 잡담, 별 뜻 없는 웃음, 작은 기쁨으로 들어차야 ‘있기’가 비로소 가능해진다.
김희경 작가, 전 여성가족부 차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