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우주 시장에서 주요 기업 중심의 공급망 통합과 대형화 추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미국 발 인수합병(M&A) 소식이 향후 국내 우주·방산 업계의 전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국의 우주 인프라 기업 보이저 테크놀로지스(Voyager Technologies)가 달 착륙선 및 로봇 전문 기업 애스트로보틱(Astrobotic Technology)을 3억달러(약 4700억원) 규모로 인수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일각에서는 국내 우주 산업의 주요 축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중장기적인 협력 및 통합 논의 시나리오가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8일 관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보이저 테크놀로지스는 지난 2일(현지시각) 애스트로보틱 인수를 공식 발표한 이후, 양사의 달 탐사선 및 우주 인프라 자산을 결합해 미국 NASA의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젝트 물량을 선점하기 위한 공급망 다각화 및 실무 재편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를 뉴스페이스 시장의 주요 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지구 저궤도 위주로 형성되던 민간 우주 비즈니스의 영역이 달 표면까지 구조적으로 확장되는 상징적 계기이자, 부품 단위로 파편화돼 있던 시장이 대형 인프라 통합 체제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미국 NASA가 주도하고 전 세계 주요 우방국들이 참여를 추진 중인 국제 달 탐사 및 개척 사업이다.
달에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왔던 과거 아폴로 계획과 달리 인류를 달에 보내 장기 상주가 가능한 표면 기지와 궤도 우주정거장(루나 게이트웨이)을 건설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나아가 달 표면의 자원을 활용하는 지속 가능한 우주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최종적으로는 화성 탐사를 위한 전초기지를 만드는 사업이다.
미국은 당장 내년 지구 저궤도에서 리허설을 거쳐 오는 2028년 유인 달 착륙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역시 아르테미스 협정에 서명하며 협력 의지를 밝혔으나, 이는 선언적 파트너십의 성격이 강해 실제 국내 기업들의 실질적인 비즈니스 공급망 참여 여부는 불확실한 과제로 남아있다.
보이저의 이번 실무 재편은 자사가 추진 중인 민간 우주정거장 스타랩(Starlab) 인프라에 애스트로보틱이 확보하고 있는 NASA의 달 수송 계약과 달 표면 전력망 기술을 결합해, 오는 2028년부터 본격화될 아르테미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로 풀이된다.
이처럼 발사체부터 위성, 우주정거장, 달 표면 인프라까지 우주 비즈니스의 전 과정을 한 기업이 통제하는 풀스택(Full-Stack) 구조가 구체화되면서 과거 중소 벤처들이 각자 영역에서 경쟁하던 뉴스페이스 시장은 거대 플랫폼 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글로벌 대형 기업 중심의 우주 공급망 재편으로 인해 발사체와 위성 제조 영역이 나뉜 국내 우주 산업이 장기적인 해외 파트너십 확보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이 글로벌 거대화·독점화 흐름에 밀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핵심 공급망 진입에 실패할 경우 국내 우주 산업은 고립 시나리오에 직면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지난 4월2일(한국시각) 유인 달 궤도 비행 임무를 위해 성공적으로 발사된 NASA의 아르테미스 2호에 합승했던 한국천문연구원의 우주방사선 측정 큐브위성 K-라드큐브(K-RadCube)가 4월4일 정상 교신에 최종 실패하며 기술적 신뢰도 검증이 과제로 남은 점은 부담이다.

오는 2028년 유인 달 착륙을 목표로 속도를 내는 미국의 일정과 오는 2032년으로 계획된 한국 정부의 달 착륙 타임라인 격차 역시 해외 파트너십 확보의 주요 변수로 꼽힌다.
우주 산업은 기술의 완성 시점에 맞춰 공급망을 먼저 선점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미국이 달 인프라를 완공하는 2028년까지 한국의 독자 기술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정작 2032년 달에 가더라도 미국 거대 기업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가 아닌 ‘단순 이용자’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독자적인 우주 영토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미국 기업이 구축한 전력망과 통신 인프라를 비싼 이용료를 내고 빌려 써야 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의 역학 변화 속에서 국내 우주·방산 투톱의 셈법은 한층 정교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국내 우주 산업 구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체질 개선 요구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그룹의 최근 KAI 지분 매입 행보 역시 이러한 역학 관계 속 통합론 및 협력 시나리오와 맞물려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화는 지난해 10월부터 KAI 주식을 매입해 지난 3월 누적 지분율을 4.99%까지 끌어올린 데 이어, 지난달에는 이를 5.09%로 확대하며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이후에도 장내 매집을 지속한 한화는 지분율을 7.22%까지 추가로 늘리며 기존 3대 주주였던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매니지먼트(7.06%)를 제치고 3위 자리에 올라섰다.
한화는 올해 말까지 총 5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지분율을 8%대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같은 자금 흐름과 미국의 뉴스페이스 독과점 움직임이 맞물리면서, 국내 우주 산업 통합론이 다시금 주목받는 분위기다.
지난 5일 기준 KAI의 지분 구조는 최대 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26.41%)과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8.12%)이 공공 지배구조의 양대 축을 이루는 형태다.
3대 주주로 도약한 한화 측(7.22%)과 글로벌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매니지먼트(7.06%)가 뒤를 쫓고 있다.
지분 구조 변화를 맞이한 KAI는 독자적인 기업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방어 전략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다.
한화의 공격적인 지분 매집이 향후 정부(한국수출입은행)의 보유 지분 매각 결단 시 유력한 인수 후보로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KAI로서는 성장성과 독자적 기업가치를 시장에 확고히 입증해야만 향후 전개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 및 통합 논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전망이다.
미국발 뉴스페이스 독과점 추세가 국내 지배구조 개편을 자극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거대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시장에서 개별 기업의 파편화된 경쟁력으로는 독자 생존이 어렵다는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국내 우주 산업은 한화가 발사체 중심의 ‘하드웨어’를, KAI가 완제기 및 위성 제조 중심의 ‘플랫폼’을 나누어 맡는 구조적 단절을 겪고 있다.
미국 보이저처럼 발사체부터 우주정거장 인프라까지 전 과정을 통제하며 시장을 독식할 경우, 제조 영역이 쪼개진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진입 자체가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반면 한화가 KAI까지 흡수하면 국내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반을 사실상 하나의 거대 그룹이 독점하게 된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이는 건강한 내부 경쟁을 실종시켜 기술 혁신의 속도를 늦추고, 국방부 등 정부를 상대로 한 가격 협상력에서 과도한 비대칭을 낳을 것이란 지적이 있다.
우주 항공은 사람의 전문성이 곧 경쟁력인 특수 분야인 만큼 무리한 합병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이탈하고 조직이 흔들린다면, 오히려 대한민국 우주 개발의 맥이 끊기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로 꼽힌다.
국내 항공우주업계 한 관계자는 “국가 차원의 대표 기업을 키워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만 거대 우주 방산국들과의 수주전에서 체급을 맞출 수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한화의 KAI 지분 확보를 두고 양사가 소모적인 주도권 싸움을 전개하기보다, 글로벌 공급망에 공동 진입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술 연대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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