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테크노 대전…새 승부수일까, 장르 쏠림의 덫일까

에스파.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제공

뜨거운 여름을 앞두고 케이(K)팝 걸그룹 시장에 테크노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까지 하우스 장르를 앞세운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노래가 대세처럼 번지더니, 이제는 더 빠르고 거친 전자음악이 전면에 섰다. 유행을 빠르게 흡수하는 케이팝신의 장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특정 장르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출발에는 블랙핑크가 있었다. 블랙핑크는 지난 2월 미니앨범(EP) ‘데드라인’을 내고 3년여 만에 완전체로 복귀했다. 더블 타이틀곡 ‘점프’와 ‘고’는 클럽에서 들을 법한 강력한 하드 테크노 곡이었다. ‘점프’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28위, ‘글로벌 200’ 1위 등 성과를 내자 이른바 걸그룹 테크노 대전이 시작됐다.

블랙핑크. 와이지(YG)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이브 계열 걸그룹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하이브와 게펜레코드(게펀레코드)가 함께 선보인 캣츠아이는 지난 4월 발표한 ‘핑키 업’으로 테크노팝 흐름에 올라탔다. 과장된 에너지와 키치한 비주얼, 글로벌 팝 문법을 결합한 이 곡은 빌보드 ‘핫 100’에서 최고 28위까지 오르며 6주간 머물렀고,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에서도 7주간 머물렀다. 캣츠아이는 최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신인’ 등 3관왕에 오르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아일릿은 지난 5월 발표한 미니 4집 ‘마밀라피나타파이’의 타이틀곡 ‘이츠 미’로 처음 테크노에 도전했다. 1990년대 가요계에 유행했던 복고풍 테크노를 연상시키는 이 노래는 쇼트폼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음원 차트 상위권에 안착했다. 앨범도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 26위로 자체 최고 기록을 세웠다. 최근 정규 2집 ‘퓨어플로’로 컴백한 르세라핌도 지난 4월 선공개곡 ‘셀러브레이션’으로 테크노 흐름에 합류했다.

캣츠아이. 하이브·게펜레코드 제공

여기에 ‘원조 쇠맛’ 에스파가 지난달 29일 정규 2집 ‘레모네이드’를 발표하며 대전은 한층 거세지는 양상이다. ‘레모네이드’는 국내 앨범 차트 1위, 아이튠스 톱 앨범 차트 19개 지역 1위에 올랐다. 국내 음원 차트에서도 더블 타이틀곡 ‘레모네이드’와 ‘더블유디에이’(WDA)가 상위권에 들며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최근 최초로 발표한 멜론·텐센트뮤직·라인뮤직 공동 집계 ‘글로벌 케이 차트’에서도 일간·주간·5월 월간 차트 1위를 모두 차지하며 한·중·일 팬덤의 고른 지지를 입증했다.

아일릿. 빌리프랩 제공

전문가들은 테크노가 애초부터 케이팝과 잘 맞는 장르라고 본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테크노는 전자음악신에서 주류의 위치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며 “빠르게 침투할 수 있는 효능감이 높은 장르다. 아이돌 음악의 대중 침투력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렬한 비트가 여름 시즌과도 잘 맞고, 복고적이면서 생명력이 강해 활용 여지가 크다”고 덧붙였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도 “과거 귀여움을 앞세웠던 걸그룹이 걸크러시를 넘어 주체성과 강한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는 흐름이 커지면서, 테크노 같은 압도적인 사운드가 핵심 팬덤의 눈길을 붙드는 무기가 됐다”고 짚었다.

다만 장르 쏠림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유사한 전자음악의 질감이 반복되면서 신선함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임희윤 평론가는 “테크노는 강렬한 만큼 압도되면 쉽게 질릴 수 있다. 안무, 가사, 중독성 강한 훅(후크)과 결합하면 대중적 파급력을 갖지만, 지나치게 마니악하면 반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강렬한 사운드를 차용하되 케이팝 팬들이 좋아할 만한 친근한 훅 포인트와 안무, 멜로디, 키워드를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르세라핌. 쏘스뮤직 제공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조회 296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