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판의 마법' 한 달 넘게 걸린 KBO 첫 승, 베니지아노가 달라졌다 "시즌은 길다, 계속 보탬 되고파"

SSG 랜더스 앤서니 베니지아노가 8일 두산 베어스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사진=SSG 랜더스 제공

발의 위치를 조금 바꿨을 뿐이지만 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다. 앤서니 베니지아노(29·SSG 랜더스)가 개막 후 한 달을 훌쩍 넘기고서야 KBO리그 첫 승의 감격을 누렸다.

베니지아오는 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2026 신한 SOL KBO리그 방문경기에 선발 등판해 5⅔이닝 91구 6피안타 3사사구 7탈삼진 1실점 호투를 펼친 뒤 팀이 4-1로 이겨 승리를 챙겼다.

데뷔전에서 5⅓이닝 2실점으로 준수한 피칭을 하고도 승리와 연을 맺지 못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첫 승이 오래 걸릴 줄은 생각지 못했다. 6차례 경기에서 2패만 떠안았던 베니지아노는 경기력을 크게 향상시키며 드디어 첫 승을 완성했다.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베니지아노는 지난달까지 5차례 선발 등판한 경기에서 단 한 번도 6이닝 이상을 소화한 적이 없었고 매 경기 실점했다. 왼손 투수임에도 좌타자에게 더 약했다.

투구판 위치에서 해법을 찾았다. 베니지아노는 60㎝ 가량의 투구판에서도 3루 쪽 방향에서 투구를 시작하는데 그러다보니 좌타자들에게도 상대적으로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다다랐고 조금 더 1루 쪽으로 위치를 옮겨 던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SSG 랜더스 앤서니 베니지아노가 8일 두산 베어스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투구를 펼치고 있다. /사진=SSG 랜더스 제공지난 2일 롯데 자이언츠전부터 시도를 했는데 6회 무사 1루에서 헤드샷 퇴장을 당하기 전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며 몰라보게 달라진 투구를 펼치고 있었다. 투구수도 73구에 불과해 첫 무실점, 퀄리티스타트, 나아가 첫 승까지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으나 불운에 일찍 강판됐다.

아쉬움은 남았지만 확실한 힌트를 얻었다. 이숭용 감독은 8일 경기를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류택현 코치 등 왼손 투수들에게 물어보니까 왼손 투수들이 공간 활용하기가 좋아 3루 쪽을 밟고 던진다고 하더라. 타자들 입장에서는 좌완이 1루 쪽 끝을 밟고 던지면 타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렵다"며 "트렌드가 바뀐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리 (현역) 때는 1루 쪽을 밟고 던지는 투수들이 많아서 왼손 타자들이 힘들어 했던 기억이 있다. 그걸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렵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성과가 워낙 좋지 않아서인지 베니지아노도 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완전히 1루 쪽까지 이동하진 않았지만 3루 쪽에서 한 발 가운데로 이동해 던지기 시작했다. 이 감독은 "제 욕심 같아선 조금 더 1루 쪽으로 와서 던지면 키도 크고 왼손 투수라 아무래도 (타자들이) 대미지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래야 변화구, 슬라이더 같은 게 실투가 들어와도 못 칠 확률이 많아진다"며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 슬라이더가 오는 길에서 칠 수 있는 확률이 많아진다. 타자와 투수의 생각 차이가 있긴 한데 그런 위압감이 조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날 최고 구속은 시속 152㎞를 찍었는데 36구에 불과했다. 궤적이 다른 슬라이더(16구)와 스위퍼(16구)가 위력을 발휘했다. 체인지업(19구)과 싱커(4구)도 섞으며 두산 타선을 제압했다.

SSG 랜더스 앤서니 베니지아노가 8일 두산 베어스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투구를 한 뒤 포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1회 박찬호에게 내야 안타를 허용한 뒤 도루까지 내줬지만 다즈 카메론과 양의지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스스로 불을 껐다. 슬라이더가 결정구였는데 카메론에겐 바깥쪽 존으로 들어오는 백도어성, 양의지에겐 몸쪽 낮은 코스로 파고드는 과감한 승부로 위기를 지웠다.

2회를 삼자범퇴로 마친 베니지아노는 3회 첫 타자 박지훈에게 우전 안타를 맞은 뒤에도 조수행을 상대로 바깥쪽 보더라인에 걸치는 직구로 헛스윙 삼진, 박찬호에겐 존 상단으로 향하는 시속 151㎞ 포심 패스트볼로 병살타를 유도해 이닝을 끝냈다.

4회에는 카메론에게 다시 한 번 내야 안타 이후 도루까지 내줬으나 1사에서 양의지와 안재석을 차례로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우타자 양의지에겐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좌타자 안재석에겐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스위퍼로 KK를 장식했다.

수비의 도움도 있었다. 5회 돌연 볼넷과 연속 안타로 1실점했고 조수행의 희생번트 이후 박찬호에게 몸에 맞는 공까지 허용하며 1사 만루 위기에 놓였다.

SSG 벤치는 베니지아노를 믿었고 카메론에게 좌익수 뜬공을 유도했다. 3루 주자의 득점을 허용하더라도 의미 있는 아웃카운트였으나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타구를 잡은 좌익수 기예르모 에레디아가 강력한 원바운드 송구를 뿌렸고 포수 조형우가 김기연을 깔끔하게 태그하며 1실점으로 이날 최대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베니지아노는 껑충 뛰어오르며 기쁨을 표했고

6회에도 등판한 베니지아노는 박준순을 2루수 땅볼로 돌려세운 뒤 양의지를 1회와 4회에 이어 다시 한 번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번엔 바깥쪽 백도어 슬라이더로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이후 안재석에게 중전 안타, 김민석에게 볼넷을 허용했고 투구수가 91구에 달하자 SSG는 노경은을 투입했고 김기연을 3루수 땅볼로 막아내며 다시 한 번 실점 위기를 삭제했다.

SSG 랜더스 앤서니 베니지아노(가운데)가 8일 두산 베어스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6회말 2사에서 경헌호 투수코치(왼쪽 끝)가 마운드에 오르자 공을 넘기고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경기 후 이 감독은 "선발 베니지아노가 올 시즌 가장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며 "첫 승을 축하한다. 이어 등판한 필승조도 상대를 잘 막아주면서 자신감을 얻는 모습"이라고 기뻐했다.

베니지아노로서도 잊지 못할 하루였다. "모두가 축하해줬다.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첫 승 공도 잘 챙겼다. 잘 던져서 기분 좋다. 이제 다시 다음 경기를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발의 위치를 조금 바꾼 게 이리도 큰 변화를 불러올 줄은 몰랐다. "계속 열심히 하려 했다. 루틴을 유지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이숭용 감독님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말을 잘 따르면서 노력했다"는 베니지아노는 "투구 자세도 조금 수정했다. 사실 한 차례 시도를 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는데, 다시 한 번 더 자세를 바꿔봤다. 일단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이제야 적응해가며 결과도 뒤따라왔다. "사실 처음에는 나의 투구 스타일을 한국에서도 선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간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 스타일에 맞게 피칭을 하려 노력했다. 그랬더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제야 해법을 찾았다. 더 많은 승리로 보답하겠다는 생각이다. 베니지아노는 "계속 믿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시즌은 길다. 꾸준히 좋은 피칭을 해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SSG 랜더스 앤서니 베니지아노(오른쪽)가 8일 두산 베어스와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첫 승을 챙긴 뒤 이숭용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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