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취향 다른 가족 요구 반영해 동선·예산 최적화
개인정보·오류 책임 공백 여전…"최종 결정은 인간 몫"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4 내나라 여행박람회'에서 참관객이 'AI가 추천하는 여행지' 설명을 듣고 있다. 2024.3.28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기자 = 휴일이 많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 여행 일정을 짜는 과정은 여전히 고역에 가깝다.
한정된 예산 내에서 서로 다른 취향을 맞추고 이동 동선까지 설계해야 하는 만큼 출발 전부터 갈등이 불거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최근 여행업계에서 주목받는 기술이 '에이전틱 AI'다.
단순 검색이나 답변을 넘어 이용자의 요구를 해석하고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 실제 예약·결제 도구까지 제어하는 '행동형 AI'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OTA)들은 이 기능을 자사 플랫폼에 접목해 서비스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주도권 경쟁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조건 10개 넘겨도 바로 일정"…초개인화 설계 현실화
기존 여행 서비스는 '도쿄 가족 여행 코스'처럼 키워드를 입력하면 블로그 후기나 패키지 상품을 일방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최근 도입되는 AI 기반 여행 플래너는 여러 조건을 동시에 반영하는 '다중 변수 최적화' 방식으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가족 구성원이 ▲운동 시설이 있는 숙소를 원하는 경우 ▲카페·쇼핑을 선호하는 경우 ▲서점·문화공간을 찾는 경우 등 서로 다른 요구를 입력하면 AI는 숙소 위치·시설 평가·주변 상권 데이터를 결합해 최적의 일정 후보를 구성한다.

(AFP=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숙소 반경 내 이동 시간, 리뷰 평점, 실시간 영업시간 등 방대한 실사용 데이터가 즉각 반영된다.
또 총예산을 입력하면 항공·숙박·식비 비중을 자동으로 배분하고, 환율 변동이나 현지 일정 변경 시 예상 비용을 실시간으로 다시 계산해 보여주는 기능도 적용되고 있다.
트립어드바이저는 10억 건 이상의 리뷰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플래너를 운영 중이다.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AI 기능을 사용해 일정을 만든 회원이 일반 회원보다 플랫폼 수익 기여도가 약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추천'에서 '예약'으로…에이전트 경쟁 본격화
AI 여행 서비스의 가장 큰 변화는 '추천'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익스피디아, 부킹홀딩스 등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들은 대형언어모델(LLM) 기반의 에이전틱 AI를 자사 핵심 서비스에 연동하고 있다.
이들은 식당 예약 가능 여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렌터카·숙박 요금을 비교하는 것을 넘어 이용자가 최종 승인만 하면 결제까지 곧바로 이어지는 '원스톱 예약' 기능 구현에 진입한 상황이다.

(EPA=연합뉴스)
익스피디아는 자체 개발한 AI 에이전트 '로미(Romie)'를 통해 왓츠앱 등 외부 메신저 그룹 채팅에 참여해 친구들의 여행 계획을 돕고 예약까지 직접 처리하는 '에이전틱 커머스' 모델을 시험 중이다.
익스피디아의 AI 서비스 에이전트는 연간 1억4천300만 건 이상의 대화를 처리하며, 전체 이용자 요청의 50% 이상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AI로 문제를 해결한 이용자의 만족도가 기존 전화 상담 대비 2배 높게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 포커스라이트의 지난 3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여가 여행객의 56%가 최근 12개월 내 최소 한 번 이상 AI로 여행을 계획했다. 이는 2024년 24%에서 2년 만에 급증한 수치다. 또한 AI 플래닝 도구는 다중 조건 분석을 통해 일반 여행객의 평균 예약 소요 시간을 40%가량 단축한 것으로 분석됐다.
◇ 국내 업계도 속도전…'에이전틱 AI' 고도화는 과제
국내 주요 여행사와 스타트업들도 관련 서비스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복잡한 예약과 결제 전 과정을 스스로 통제하는 완전한 에이전틱 AI 상용화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하나투어[039130]는 지난해 상반기 업계 최초로 멀티 AI 에이전트 '하이(H-AI)'를 선보였으며, 정식 출시 이후 이용자 수가 급증하는 등 시장 반응을 이끌어냈다.

(영종도=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2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출국장 통로가 여행객으로 붐비고 있다. 2023.4.27 dwise@yna.co.kr
야놀자 역시 시스템 전반에 에이전틱 AI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생성형 AI를 활용해 인터페이스 구축 등 특정 자동화 공정의 개발 시간을 3일에서 단 10분으로 단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다만, 상당수 국내 온라인 여행사는 아직 클로드, 챗GPT 등 외부 AI 모델의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자사 예약 시스템과 연동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이용자의 모호한 의도를 파악해 기획부터 결제까지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의 독자적인 AI 생태계와 비교해 국내 기업들이 넘어야 할 기술적 기술 격차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개인정보·오류 책임 논쟁…제도는 아직 '공백'
문제는 플랫폼의 AI 기술 진화 속도에 비해 법적·제도적 안전망 구축은 뒤처져 있다는 점이다.
초개인화된 맞춤형 일정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소비 패턴, 위치 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 활용이 필수적이다. AI 여행 플래너가 국경을 넘나들며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처리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침해 및 유출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AI가 거짓 정보를 사실처럼 꾸며내는 '환각' 현상은 상거래 환경에서 치명적이다.
실제로 한 가족이 AI 여행 플래너에 '코스타리카 에코 로지' 추천을 요청하자, AI가 기존의 실제 호텔 리뷰 데이터를 임의로 혼합해 가상의 숙소 이미지와 존재하지 않는 예약 URL까지 생성하여 결제를 유도할 뻔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이처럼 AI가 통제망을 벗어나 잘못된 안내나 결제 오류를 일으켰을 때 책임 주체를 묻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쟁점이다.
지난 2022년 11월 캐나다의 에어캐나다 챗봇은 승객에게 규정에 없는 조문객 할인 요금 소급 적용을 잘못 안내하기도 했다.

[연합뉴스TV 제공]
사측은 "챗봇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별도 법인"이라는 논리로 책임을 회피하려 했으나, 2024년 2월 캐나다 법원은 에어캐나다 본사에 '과실 허위 진술'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령한 바 있다.
여행객들의 불안감도 여전하다.
익스피디아 자체 조사 결과, 설문에 참여한 여행객의 단 8%만이 AI가 예약을 전면 처리하는 과정을 완전히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에이전틱 AI의 산업적 효용성을 인정하면서도 최종 의사결정과 결제 승인 단계에서는 반드시 인간의 개입과 통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여행 상품은 취소와 환불, 결제가 수시로 반복되는 영역인 만큼 AI가 금융 결제망에 접근하는 과정에 시스템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며 "예약 확정 단계에서는 이용자의 최종 확인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IT 업계 전문가들도 당분간은 복잡한 탐색과 동선 설계는 AI가 전담하고 최종 판단과 금융 비용 승인은 사람이 내리는 '반자율 구조'가 여행 산업의 표준이 될 것이라면서 "알고리즘의 완전 자동화를 논하기 전에 책임 소재와 피해 구제에 대한 법적·제도적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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