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8일 반도체 호황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올해와 내년에 걷힐 세수가 역대급일 가능성이 큰 만큼 좀더 유연하고 넓은 시야로 재정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 실장은 이날 밤늦게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스피 7500, 그리고 1만의 문턱 앞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한편 올렸다. 이 글에서 김 실장은 “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는 최근 내게 매우 공격적인 2027년 시나리오를 보내왔다”며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이 700조원을 상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고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극단적인 낙관 시나리오에 가깝다”면서도 “적어도 지금 시장은, 기존 경기순환의 눈금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최소한 내년까지 메모리 중심의 특수가 이어질 가능성에 시장도 업계도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대한민국의 재정과 거시 전망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기초로 움직이는데, 이번 반도체 호황은 기존 지디피 체계가 포착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며 “반도체처럼 품질 개선 속도가 가격 변화를 압도하는 사업에서는 기존 통계 체계가 현실 변화를 너무 느리게 반영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반도체 단일 산업이 수출과 기업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에서는 역사적 호황이 펼쳐지는데 지디피 성장률 전망은 보수적으로 나오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김 실장은 설명했다.
이에 그는 “지금 국면에서 현실을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건 무역수지, 수출 데이터, 그리고 기업 영업이익”이라며 “시장은 이미 그 숫자를 보고 움직이는데 정책은 확인된 지디피와 확정 통계를 기다리며 뒤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규정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반도체 초호황기에 정부와 중앙은행이 모두 후행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진짜 중요한 대목은 재정”이라며 “2027년까지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면 올해와 내년 세수는 역사적 규모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1분기 실적이 공개된 뒤, 올해 전체 법인세 세수가 100조원을 훨씬 웃돌 것이란 관측이 나온 바 있다. 법인세뿐 아니라 고소득 반도체 인력의 소득세와 무역흑자 확대에 따른 연쇄 효과까지 감안하면 “역대급 초과세수가 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올해 하반기에 나올 2026년 수정 경제전망이 첫번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그 전망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느냐에 따라 내년 세입 추계와 예산 총량의 방향이 달라진다”며 “기존 프레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규모의 산업 변화를 정책 시스템이 얼마나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앞서 2021년과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반도체 호황으로 역대급 초과세수가 발생했지만 세입 전망과 예산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사례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이번 사이클의 규모는 그때보다 훨씬 클 수 있고 기존 방식으로는 대응 오차가 더 커질 것”이라며 “반도체 중심 구조 변화가 진행 중이라면 재정 역시 과거 평균값에 묶인 사고에서 벗어나 좀더 유연하고 넓은 시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 평범한 경기순환의 연장선만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한 만큼, 낡은 감각과 기준으로 구태의연한 정책 대응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앞으로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를 좀더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대목이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