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 스며드는 ‘몸의 회화’구축 윤정원 작가

 moon.door.moon
 moon.door.moon

윤정원의 회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동양화의 전통 기법인 배채법(背彩法)이다. 비단이나 한지의 뒷면에서 색을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화면 표면 위에 색을 얹는 서양 회화의 방식과는 다른 감각 구조를 만든다. 색은 재료 내부를 통과하며 은은하게 떠오른다. 비단 뒷면에 먹이난 금박을 올리고 앞면에 석청으로 그림을 그린다. 색이 물질의 안쪽에서부터 발광하듯 솟아오르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의 푸른 꽃이 현실의 꽃보다 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이유도 바로 이 ‘안쪽에서 스며 나오는 빛’의 감각 때문이다.

금박 위에 피어난 푸른 꽃은 단순한 정물의 형상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층위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의 숨결이며, 보이는 세계 너머를 감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통로다. 화려하게 만개한 꽃과 동시에 스러져가는 꽃의 형상을 한 화면 안에 병치하는 윤정원의 회화는 삶과 소멸, 생성과 흔적이 동시에 공존하는 시간의 구조를 시각화한다. 특히 불에 탄 듯 비워진 흔적 사이로 드러나는 또 다른 형상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현실의 표면 아래,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중첩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화익갤러리는 7일부터 27일까지 윤정원 개인전 ‘파랑의 공간/들’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2년 금호미술관 전시 이후 약 4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자, 이화익갤러리와 처음 함께하는 전시이다.

그해 늦여름 새벽
그해 늦여름 새벽

메를로 퐁티는 인간의 지각을 단순히 눈으로 대상을 ‘보는’ 행위가 아니라, 몸 전체가 세계와 얽혀 들어가는 경험으로 이해했다. 세계를 ‘눈앞의 사물’이 아니라 몸과 감각이 서로 침투하는 장(場)으로 보았다. 특히 회화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드는 작업’이라 설명했다.

보다시피 내몸은 하나
보다시피 내몸은 하나

윤정원의 배채법 역시 이러한 메를로퐁티적 지각 구조와 닮아 있다. 그의 화면에서 푸른색은 표면 위에 칠해진 물감이라기보다 비단 내부에서 서서히 배어나오는 감각으로 경험된다. 관객은 꽃의 형태를 단순히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금박과 비단, 안료와 빛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깊이의 층위를 몸으로 감각하게 된다. 즉 화면은 하나의 평면이 아니라 ‘지각의 깊이’를 발생시키는 공간이 된다.

우리들의 시간
우리들의 시간

특히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flesh)’의 개념은 윤정원의 작업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메를로퐁티에게 세계는 인간과 분리된 외부 대상이 아니라, 서로 스며들고 교차하는 감각의 조직이다. 윤정원의 푸른 꽃 또한 단순한 정물의 재현이 아니다. 피어남과 시듦, 생성과 소멸의 시간이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겹쳐지며, 존재는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불에 탄 흔적처럼 남겨진 공백 사이로 또 다른 형상이 드러나는 장면 역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서로 침투하는 메를로퐁티적 세계관을 시각화한다.

靑-夢中
靑-夢中

결국 윤정원의 배채법은 단순한 전통기법의 계승이 아니라, 색과 물질, 빛과 감각이 서로 스며드는 ‘몸의 회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푸른 꽃은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객의 감각 깊숙이 스며들어 세계의 또 다른 층위를 체험하게 만드는 현상학적 공간이 된다.

우리들의 시간
우리들의 시간

이번 전시에서 주목되는 지점은 ‘틈’의 감각이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검게 그을린 듯한 흔적과 공백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또 다른 이미지와 세계가 스며 나오는 균열의 장소다. 그 틈 사이로 식물의 줄기나 새의 날개 같은 형상이 언뜻 모습을 드러내며,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의 감각들이 중첩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현대 동양화가 단순히 전통적 재료를 계승하는 차원을 넘어, 현실과 비가시적 세계 사이의 감각적 구조를 탐색하는 매체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란 방울
파란 방울

윤정원의 작업은 최근 동시대 미술이 주목하는 ‘보이지 않는 감각의 층위’와도 맞닿아 있다. 그의 푸른색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기억과 감정, 시간과 존재를 응축하는 심리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푸른 꽃은 개별 존재의 초상을 넘어, 현대인이 잃어버린 내면의 감각과 침묵의 시간을 환기시키는 기호처럼 읽힌다. 이는 재현 중심의 회화를 넘어 감각과 존재의 흐름 자체를 경험하게 만드는 동시대 회화의 한 흐름과도 연결된다.

푸른 콩
푸른 콩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의 대표 연작인 ‘푸른 꽃’뿐 아니라 보다 추상적인 조형 언어로 확장된 신작들도 함께 소개된다. 무한한 가능성과 응축된 에너지를 푸른 콩의 형상으로 표현한 ‘푸른콩’ 시리즈, 변형된 캔버스 구조가 특징적인 ‘문문문’ 시리즈, 그리고 몽환적인 푸른 색면으로 화면 전체를 채운 ‘청-몽중(靑-夢中} 시리즈는 윤정원이 구축해온 푸른 세계가 보다 확장된 차원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많은 기사를 뉴스프리존에서 직접 확인 하세요.

해당언론사로 이동

조회 48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