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3월10일 '근로자의 날'로 시작→1994년 5월1일로→올해 다시 '노동절'로
사업주에 노무제공하는 '근로' vs 주체적으로 일하는 '노동'…일괄 변경은 어려워
법정공휴일 됐지만…일용직·이주노동자 등 사각지대 한계도

3월 18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연 공무원 노동절 휴무 쟁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5월 1일 우리나라는 63년 만에 법정공휴일로 지정된 첫 노동절을 맞이한다.
1963년 법 제정으로 시작된 '근로자의 날'은 작년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올해부터 '노동절'로 명칭이 바뀌었다.
의미가 비슷한 것 같은데 굳이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근로자의 날'과 '노동절'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근로'와 '노동'이라는 표현에 숨은 의미를 살펴봤다.

[연합뉴스TV 제공]
◇ 파란만장했던 노동절…'근로자의 날'에서 63년 만에 다시 '노동절'로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 벌어진 미국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국제노동계가 1890년 '만국 노동자 단결의 날'(메이데이·MAY DAY)로 기리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치하인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총연맹 주도로 첫 노동절 기념행사가 열렸다가 1958년 이승만 정부 시기 대한노동조합총연맹 창립일인 3월 10일로 날짜가 변경됐다.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63년 법을 제정하면서 처음 사용됐다. '노동'이라는 용어를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표현으로 보고, 반공 이데올로기와 국가 주도 산업화 기조 속에서 '근로'라는 명칭으로 대체한 것이다.
이때부터 31년간 노동절은 '근로자의 날'로 불리며 3월 10일에 기념됐다.
5월 1일로 날짜가 바뀐 것은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국제관례를 적용하는 차원에서 날짜를 바꿨지만, 이름은 여전히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유지됐다.
아울러 '근로자의 날'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만을 대상으로 적용돼 공무원 및 교사, 플랫폼·특수고용노동자들은 배제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반쪽짜리 기념일'이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노동계와 진보 정당에선 명칭 변경과 함께 '근로자의 날'의 전면 공휴일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사회적 논의가 무르익지 못해 수십년간 답보 상태였다.
이런 상황은 이재명 정부 들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노동 존중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국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이어졌다.
그 결과 '근로자의 날'은 지난해 '노동절'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았고, 올해는 법정공휴일로 변경됐다.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31일 국회에서 열린 3월 임시국회 제3차 본회의에서 공휴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2026.3.31 nowwego@yna.co.kr
◇ 수동적 근로 vs 능동적 노동…근로→노동 일괄 치환은 어려워
기념일 명칭 속 근로와 노동은 얼핏 비슷한 단어인 것 같지만, 뜻을 풀이해보면 노동자를 보는 관점의 차이가 크다.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의 '근로'(勤勞)는 국가나 사업주가 관리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서의 노무를 제공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반면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의미의 '노동'(勞動)은 특정한 고용 형태에 묶이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주체가 된다는 능동적인 측면을 반영한다.
이런 측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오늘날의 '일'을 충분히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는 '근로'보다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과 그 가치를 보다 넓게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인 '노동'이 낫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에 노동계 등에서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 각종 제도에 들어 있는 '근로'라는 단어를 '노동'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현대사에서 제도 속 '노동'이라는 단어는 '노동절'이 '근로자의 날'이 됐다가 다시 '노동절'이 됐던 것처럼 부침을 겪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는 고용정책 총괄 기능을 강조하며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개편하고, 약칭을 '고용부'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공약에서부터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근로 대신 노동이라는 단어 사용에 나섰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1월 14일 서울 서초구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현장 감독관과의 대화에서 참석자들과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고용노동부의 '고용부' 약칭은 '노동부'로 재차 변경했고, 1953년부터 써온 근로감독관 명칭 역시 대국민 공모 등을 통해 최종 선정된 '노동감독관'으로 73년 만에 바꿨다.
다만 헌법 제32조에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고, 여러 노동 관련 법 체계의 근간이 되는 근로기준법 등 10여개 법의 명칭에 근로라는 단어가 포함된 만큼 전면 개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예컨대 노사정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은 '실노동시간단축지원법'이 아닌 '실근로시간단축지원법'의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법령 체계와의 정합성을 고려해 용어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는 2017년 박광온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에는 같은 당 이수진 의원이 근로기준법을 포함해 10여개 법률의 '근로'라는 표현을 '노동'으로 일괄 변경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개정 시도가 이어졌으나, 비슷한 이유로 모두 무산됐다.
이런 가운데 서울, 경기, 인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조례나 행정 용어 속 '근로'를 '노동'으로 대대적으로 바꾸는 등의 시도가 이어졌다.
2024년 제정된 '산업재해근로자의날'을 올해 행사 때는 '산업재해노동자의날'로 공식 표현하는 등 개별 제도 속 명칭 전환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노동부는 이처럼 행사나 단체명 등 고유 명사의 경우 다양한 일하는 사람을 포괄하는 '노동'의 사용을 지향하지만, 제도적 차원에서 일괄 적용이나 단어 치환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사용자와의 경제적·실질적 종속성을 핵심 요건으로 삼아 보호 대상을 한정해 온 '근로'라는 법적 개념을 '노동'으로 단순 치환할 경우 노동이라는 포괄적 가치가 오히려 특정 법리적 요건에 묶여 협소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가 들어가는 법령들은 서로 연결돼 있어 일부만 '노동'으로 변경이 어렵다"면서 "결국 법 체계 전체의 용어를 변경해야 할 텐데 그럴 경우 헌법과의 정합성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4월 26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2026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가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노동정책, 경제효율성에서 노동가치 보호로…일용직·이주노동자 소외 한계
올해 노동절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더해 공무원 및 교사, 택배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 등 모든 일하는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날로 거듭났다.
이는 단순히 명칭이 변경되고 공휴일이 하루 늘어났다는 차원에 그치는 사안이 아니다.
노동 관련 정책이 근로 시간, 임금, 고용 형태 등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노동 가치를 전면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입법과 정책이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권리, 안전을 중심에 두고 검토돼야 한다는 지향점을 내포하는 것이다.
특히 노동절은 별도 법률인 '노동절 제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급휴일로 정하고 있는 만큼 다른 공휴일들처럼 다른 날로 대체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노동절에 평소처럼 출근하면 실제 일한 하루치 임금(100%)과 휴일가산수당(50%)에 유급휴일분(100%)까지 더해 최대 2.5배 임금을 받을 수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도 노동절은 유급휴일(휴일가산수당은 제외)로 보장해야 한다. 노동절에 일을 시키고도 법적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4월 24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택배사 노동절 휴업일 미지정 규탄 및 특수고용노동자 차별 철폐 기자회견'에서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만 현실이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이 올해 노동절을 앞두고 직장인 1천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5.2%가 노동절 유급휴무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일용직 종사자 60.0%, 프리랜서·특수고용직 59.3%, 파견용역직 40.0% 등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휴무를 보장받지 못했다. 또 대기업에서 보장받지 못한다는 응답은 16.5%지만 5인 미만 사업장에선 58.3%로 치솟았다.
이주노동자들 또한 노동절에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달 26일 '2026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를 개최하며 "노동절에 쉴 수 없어 미리 집회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첫 번째 노동절이 던지는 질문: 진정한 노동 존중을 바탕으로 한 입법 필요성' 보고서에서 "노동절로의 명칭 변화가 일회적인 상징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노동절의 의미가 실제 입법과 정책의 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차동욱 입법조사관은 "적정 근로시간, 심야 노동, 쉴 권리의 문제, 괴롭힘으로부터의 보호, 해고 또는 실직 시 보호와 재기 지원 등 다양한 사안에서 노동절의 의미인 '노동 존중'이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가치가 다양한 법 제도 속에서 제대로 구현되는 것이 이번 노동절 제정의 참된 의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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