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보연 | 기획·영상부국장
지난 주말 산책길, 등산복 차림의 두 중년 남성이 “주는 게 마땅하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며 티격태격한다.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갈등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 사람은 성과급 상한(연봉의 50%)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15%를 달라는 노조 쪽 편을, 또 다른 사람은 무리한 요구라는 기업 편을 든다. 술자리에서 있음 직한 갑론을박이 한참 이어졌다.
반도체 기업들의 성과급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난 1분기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300조원을 웃돈다. 지난해보다 7배 많다. 노조 주장대로라면 최대 45조원가량을 성과급 재원으로 써야 한다. 1인당 5억원 안팎 성과급을 챙길 것이란 언론 보도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직장인들의 탄식이 늘어간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하닉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고, 반도체 계약학과들의 인기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모두가 반도체 대기업 직원을 부러워하는 사회적 현상으로 번진 것이다.
부러움의 한편에선 노조 요구의 정당성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실적에 걸맞은 보상’을 바라는 노동자 요구가 잘못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노조 요구가 마뜩잖아 보이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가 차원의 인프라·연구개발·세제 지원이 총동원된 반도체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해당 기업 정규직만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수많은 협력사 직원들조차도 ‘남의 집 잔치’로 여길 뿐이다. 이 때문에 반도체 산업 전반에 초과이익이 골고루 흘러들어 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더 큰 틀의 성과 배분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이를 논의할 주체도 통로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삼성전자 노사의 선의에 기대긴 어려워 보인다. 노조는 인재 유출을 막으려면 정당한 보상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성과급 상한을 없앤 하이닉스에 인재를 빼앗기고 있다고 호소한다. 관심은 “최고의 이공계 인재들”이 삼성전자로 오도록 해야 한다는 데 있다. 회사 쪽도 재투자와 주주 환원, 직원 보상 등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으려고 고심한다지만, 그 시선이 기업 울타리 바깥으로 확장돼 있진 않다.
근본적으로 산업별 대신 기업별 교섭이 주축을 이루고 사회적 대화가 원활하지 않은 구조에서, 기업 울타리를 넘어선 논의는 쉽지 않다.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정부는 어떤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27일 “삼성전자의 결실에는 수많은 인프라, 수많은 협력 기업, 400만명이 넘는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이 연결돼 있다. 현재 발생한 이익을 회사 내부 구성원들끼리만 나눠도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시의적절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발언이 노조의 ‘5월 파업’을 막기 위한 용도에 그쳐선 안 될 것이다.
논의를 시작할 단초가 없지 않다. 대기업의 이익을 공유하기 위한 제도 도입은 여러차례 추진된 바 있다.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동반성장을 화두로 초과이익공유제와 협력이익배분제 등이 검토됐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협력이익공유제 도입이 논의됐다. 이름은 달라도 취지는 엇비슷하다.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사전 약정에 따라 중소기업과 나누는 것을, 협력이익공유제는 대·중소기업이 협력사업 등을 통해 공동으로 달성한 이익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논의가 본격화될 때마다 반시장적이라는 재계 반발이 거셌고 결실을 보지 못했다. 2011년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를 두고,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로 규정했다. 대신 원가 절감 등에 따른 성과를 나누는 성과공유제가 도입돼 있지만 중소기업 체감도는 높지 않다.
기업과 산업을 넘어 더 큰 틀의 논의도 가능하다. 최근 오픈에이아이(AI)는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한 정책으로 로봇세 도입 등을 제안했다. 인공지능 발달이 몰고 올 양극화 심화 등을 고려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에선 반도체가 끌고 가는 케이(K)자형 성장의 그늘도 고려해야 한다. 양극화 해소와 불황기에 대비하는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있다. 정부가 공론장을 연다면 지금이 최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