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용병, 대학랭킹 그리고 교육의 실종 [시민편집인의 눈]

왼쪽부터 고려대, 연세대. 연합뉴스

서수민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근래 연합뉴스의 학술 용병 기사가 화제다. 여기서 ‘학술 용병’이란 국내 대학들이 국제 랭킹을 단시간에 올리기 위해 해외에서 논문을 많이 쓰는 학자들을 비전임 교수로 임용한 이들을 지칭한다.

이들의 생산성은 경이롭다. 연세대에 적을 건 중국 둥난대 소속의 한 교수는 논문 496건을 연세대 성과로 올려줬다. 그 결과 논문 수 등을 반영하는 큐에스(QS) 세계 순위에서 연세대는 2018년 100위권 밖에서 2023년 70위권으로 급상승했다.

고려대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 랭킹에서 논문 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피인용 수치인데, 고려대는 2023년부터 전략적으로 인용 지수가 높은 연구자 180여명을 영입했다. 이 중 한명인 세르비아의 한 교수는 2024년 이후 논문 181건을 학교 이름에 올려줬고, 논문들은 1500회가량 인용됐다. 그는 원 소속대와 고려대뿐만 아니라 대만, 헝가리, 리투아니아,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등 모두 7개 기관에 적을 두고 있다. 고려대의 티에이치이(THE) 세계 대학 순위는 2024년 201~250위 구간에서 올해는 156위로 급상승했다.

이들 대학은 한 교수가 복수의 대학에 적을 두면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될 때 해당 기관 모두의 실적으로 인정되는 지점을 노렸고, 영입된 외국인 ‘학술 용병’들은 논문을 쓴 대가로 많게는 1억원대의 인센티브를 받았다. 국내에 들어와 강의를 하거나, 해당 대학교수와 제대로 된 협업을 한 경우는 드물었다.

1년에 논문 100여건을 쓴다는 것은 한주에 논문 두편을 쓴다는 것인데, 논문을 써 본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수치인지 알 것이다. 비결은 공동저자 제도로, 이들 교수 대부분이 수많은 연구원을 고용한 ‘공장형’ 연구실을 돌리고, 이들과 함께 쓴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용병’ 교수들은 무시무시한 연구 실적과 피인용 지수로 점수를 올릴 뿐만 아니라, 평가의 주요 요소 중 하나인 국제화 지표에도 큰 기여를 한다. 외국인 교원 비율이 높아지고, 이들이 자국 학자와 진행한 연구도 국제 공동연구 실적으로 올라간다. 한국연구재단 내부 문서조차 이를 ‘최저비용 최대성과’라고 꼬집은 바 있다.

대학들이 이렇게까지 국제 랭킹을 올리려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인 이유는 외국인 유학생 유치다. 인구 절벽인 상황에서 유학생 유치는 생존의 문제다. 17년간 등록금 동결 정책이 이어지며 외국인 유학생 25만명은 상당수 대학의 재정을 지탱한다.

한국을 모르는 유학생들에게 국제 랭킹은 고3 대학배치표같이 정보 제공의 순기능도 수행한다. 문제는 정부 정책조차 랭킹에 연동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외국인이 점수제 구직·우수인재 비자를 신청할 때 소위 ‘명문대’ 졸업자에게 20점이라는 높은 가산점을 부여한다. ‘명문대’ 기준은 큐에스 상위 500위 혹은 티에이치이 200대 대학으로 명시돼 있다. 정부가 외국 영리기업이 정한 대학 순위에 의존하는 것도 기괴하다. 하지만 유학생 입장에서는 한국 취업에 유리한 학교에 몰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 물의를 빚은 학교들은 재정도 탄탄하고, 외국인 학생도 골라 받는 정상급 학교들이다. 지난해 설문조사 참여 대가 제공으로 2026년 큐에스 대학 평가에서 제외되는 징계를 받은 카이스트도 그렇다. 국내 최우수 인재를 보유한 학교들이 ‘불법은 아니지만 비윤리적인’ 행위의 유혹에 더 취약한 시스템은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까?

논란이 확산되자 교육부는 3조원이 투입되는 비케이(BK)21 사업 선정에서 국제 랭킹을 고려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하며, ‘학술 용병’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하는 등 진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교육부 역시 비케이21 사업 기본계획에 “큐에스 대학평가 100위권 대학을 2019년 5개에서 2027년 7개로 늘린다”는 목표를 명시한 바 있다.

결국 이번 보도를 통해 드러난 것은 ‘영어로 쓴 논문은 소중하고, 한국어로 쓴 논문은 덜 소중하며, 교육은 그다음의 문제’라는 대학들의 비뚤어진 경쟁,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점수를 올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대학의 경쟁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런 경쟁은 어떨까. 훌륭한 학술서 쓰기 경쟁. 토론식 수업을 위한 수업당 학생 수 줄이기 경쟁. 시간강사의 임금 경쟁. 랭킹에 민감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 이 역시 교육부에서 이런 지점을 강조한 새로운 대학 랭킹을 만들면 해결될까 상상해보는 ‘웃픈’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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