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이면 쌀 동나”…자선단체, 고물가에 개인 후원↓ 운영비↑

25일 낮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이용자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서울시 영등포역 인근에서 30년 넘게 노숙인과 노인 등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제공해온 ‘토마스의 집’ 박경옥(66) 총무는 지난 22일 썰렁한 곳간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곳간에 남은 쌀은 20㎏들이 14포대, “나흘이면 동날 양”이었다. 하루 평균 400명에게 주 5일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하고 있지만, 당장 일주일 뒤 운영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보조금 없이 민간 후원으로만 운영해온 토마스의 집은 결국 최근 “수년 만에 처음”으로 영등포구청에 정부미 10㎏들이 150포대를 신청했다.

26일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최근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이 수년간 이어져온 물가 상승세에 기름을 부으면서 민간 후원에 의존하는 무료급식소 등 자선단체들이 운영난을 겪고 있다. 단체 운영비가 상승하는 와중에 팍팍해진 살림에 개인 기부금마저 줄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탓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온 자선단체들의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취약계층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낮 서울 영등포역 인근의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 들머리에 점심을 먹으려는 이들이 건너편 골목까지 길게 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국가데이터처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쌀·라면 등 일반 소비자가 자주 구매하는 144개 품목 물가 움직임을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 상승세다. 특히 지난 1월 121.10(2020년 100 기준)이던 생활물가지수는 중동 분쟁이 본격화한 3월에는 122.24로 올랐다. 대구 달서구에서 매주 두차례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사랑해밥차’ 최영진(68) 대표는 “식사 준비하는 데 한끼에 200만원 정도 들던 비용이 최근 물가가 오르면서 30% 정도 더 드는 것 같다”고 했다.

25일 낮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이용자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개인들의 소액 후원에 의존도가 높은 단체일수록 타격이 더 컸다. 뛰는 물가에 지갑이 얇아진 개인 후원자들이 ‘경제적 이유’를 들어 소액 후원부터 중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 번식장 등에서 구조한 고양이 200여마리를 보호 중인 사단법인 ‘나비야사랑해’ 유주연(53) 대표는 “저희 같은 작은 보호소는 개인 후원에 많이 의존하는데, 요새 정기후원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이 유독 많이 들어온다”며 “개인 후원금 액수도 지난해 1∼3월에 비해 20% 정도 줄었고, 사료나 모래 같은 물품 후원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대구 수성구에서 매주 토요일 저소득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사회복지회 ‘행복한동행’은 올해 적자를 예상했다. 민간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이곳에 지난해 모인 개인기부금은 약 2천만원으로 전년보다 200만원가량 줄었는데, 올해 1∼3월은 지난해보다도 20%가량 기부금이 줄었다. 이시우 대표는 “그나마 들어오는 물품 후원도 유통기한이 다 지난 것들뿐이라 여기저기 후원을 부탁하러 발품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기초생활수급자·독거노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관·지자체의 무료급식 사업과 달리, 민간 자선단체는 이런 요건에 맞지 않는 취약계층을 보듬으며 복지 사각지대를 채우는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물가 상승으로 민간단체가 운영난을 겪는 상황에서, 자선단체 이용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이다. 최영진 사랑해밥차 대표는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이용자가 오히려 늘었다”며 “어제만 해도 1천명 넘게 밥 드시러 왔다”고 전했다.

남지현 기자 southjh@hani.co.kr

조회 292 스크랩 0 공유 0
댓글 0
댓글 정렬 옵션 선택
댓글이 없습니다.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